고해성사 -손희송 지음 일곱 성사에서 발췌-
《세례성사를 통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은 성체성사로써 영적으로 양육되고 성장합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우리를 죄로 이끄는 경향이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경향에 동조하여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영적으로 허약하게 하여 영적 건강에 해를 입힙니다. 영적인 병은 그것의 원인이 되는 죄를 용서 받아야 나을 수 있습니다. 죄의 용서를 위해 있는 것이 바로 고해 성사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 받으면 내적인 치유가 이루어져 영적 건강이 회복됩니다.
예수님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24참조)를 통해서 하느님이 인간의 죄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에게 미리 타낸 유산을 들고 떠나 흥청망청 다 쓰고 나서 알거지가 된 아들이 나옵니다. 이 아들은 알거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어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버지는 그런 못된 아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은 이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죄인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용서를 실제로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땅에서 죄를 용서 받는 권한”(마르 2,10)이 있다고 하시면서,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 2,5:루카7,48)라는 말씀으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또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죽음의 위험에서 구해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요한 8,10-11참조)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고 회개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생생하게 전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그때와 똑같은 자비와 용서를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에 베풀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자주 잘못을 범하고 삽니다.
사람들은 비록 행동으로 드러나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혹은 의식하지 못한 말로 잘못을 저지릅니다. 또한 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용서가 없다면 우리는 누적된 허물과 잘못의 짐을 지고 허덕이면서 힘겹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시어 우리가 이런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새 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이 죄를 용서해 주시는데, 왜 인간인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야 하느냐?” 이는 개신교 신자들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하느님께 죄를 직접 고백하고 용서를 받으면 되는데 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야 하는가?‘
천주교 신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스게로,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할 수 없을까?“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누구든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예수님께서는 성부께로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의 사죄권赦罪權을 당신 제자들에게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위임된 사제권은 다시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과 그의 협조자이신 사제들에게 계승합니다. 가톨릭교회는 바로 이 성경 구절을 근거해서 하느님과 교회의 이름을 통해 공적으로 죄를 사하는 권한이 교회를 이끌고 대표하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죄를 지으면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습니다.
죄의 용서는 사제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본당은 3월 15일)(목)부터 3월 16일(금) 20:00~21:00에 집중 판공성사를 실시합니다. 우리 모두 치유의 성사인 고해성사를 받도록 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