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춤의 환희(歡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양반(兩班)과 상민(常民)이 고기를 사러 푸줏간에 갔습니다. 주인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여봐라, 고기 한 근만 다오.”
“예, 그러지요.”
주인은 얼른 한 근을 잘라 건넸습니다. 이번에는 함께 온 상민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도 한 근 주게나.”
“예, 그러지요.”
그러더니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잘랐습니다. 먼저 말한 양반이 얼굴을 찡그리며 따졌습니다.
“이 사람아, 같은 근인데 어째서 내 것보다 크게 자른단 말인가?”
주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별 것 아닙니다. 손님 고기는 ‘여봐라’가 잘랐고 이분 고기는 ‘여보게’가 잘랐을 뿐입니다.”
자신을 낮추려면 덕을 닦는 심정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겸손은 마음먹는다고 가능해지는 처신이 아닙니다. 주위에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별스런 자리 아닌데도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낮춤의 신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주는 실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신은근 신부님 묵상 집에서 발췌-
조선시대 때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스님은 꼭 돼지 닮았구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가다가 무학대사가 응수를 합니다.
“임금님은 부처님을 닮으셨습니다, 그려.”
이 말을 들은 이성계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자신이 무학대사에게 돼지 같다고 했는데 왜 나에게는 부처님을 닮았다고 했을까 궁금해서 그냥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 나는 스님에게 돼지 닮았다고 했는데, 스님은 어째서 나더러 부처님 닮았다고 하십니까?”
무학대사 왈(曰)
“원래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이 들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어려워집니다. 자리가 올라가고 명성이 높아지면 더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내가 행복하려면 낮은 자세는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미워서 짜증을 내면 누구의 기분이 나빠지나요? 당연히 짜증을 낸 내 기분이 나빠지겠지요.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잘해주고 사랑을 주면 내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내가 겸손해지면 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것이 낮춤의 신비입니다.
푸줏간에서 고기를 많이 주고 적게 주는 것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푸줏간 주인 맘대로 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기분 좋게 말한 사람에게 더 많은 고기를 준 것입니다.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에서처럼 상대를 낮잡아보고 무시하다가 결국은 스님은 부처님이 되고 임금인 이성계는 돼지가 되고 말았듯이,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주고받는 말 한마디도 겸손을 생활화 했을 때 결국 나에겐 기쁨이 선물로 다가오게 된다는 것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