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때문에~

2018. 4. 8. 오후 7: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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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때문에~

  옛날 어느 부자가 자신의 하인 백 명을 한 곳에 불러 모았습니다. 하인들이 모인 자리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부자는 하인들에게 금화 한 닢과 작은 술 단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말했습니다. 

"곧 큰 잔치를 여는데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특별한 포도주를 연회에서 내놓고 싶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가 준 금화로 각자 다른 포도주를 한 단지씩 사 와서 이 큰 항아리에 한데 섞어 두도록 해라. 여러 가지 포도주를 섞으면 어떤 맛이 날지 매우 궁금하구나."

하인들은 술 단지와 금화를 가지고 각자 포도주를 구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 하인은 주인에게 받은 금화를 자신이 챙기고 자신의 술 단지에는 물을 채워 슬그머니 큰 항아리에 부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큰 술 항아리에 물이 조금 섞인 걸 누가 알겠어. 이 금화는 내가 써야겠다.'

잔치가 열린 날 부자는 포도주를 사러 보낸 하인들을 따로 모아 두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잔치는 그동안 고생한 너희들을 위한 잔치다. 오늘 하루는 너희가 사온 술을 마음껏 마시며 즐기기 바란다."

그리고 큰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받은 하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술잔에 받은 것은 전부 맹물이었습니다. 백 명의 하인들은 모두 나 하나쯤이야하고 생각하고, 금화를 빼돌리고 물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결국, 하인들은 빼돌린 금화를 도로 빼앗기고 잔치 내내 맹물만 마시고 있어야 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그 행동은 당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인지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꾸리아에서 주관하는 연중행사로 교육, 피정, 야외행사, 자연보호 활동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사나 교육, 피정에 동참하는 참여율이 많이 저조합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바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행사에 내가 주관자라고 한 번 바꾸어 생각해보세요. 주관자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그 행사의 주관자를 자칫 꾸리아 4간부라고 단정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행사에 주관자는 우리 개개인 모두입니다. 나 자신이 그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는 행사는 사실 무의미한 것입니다. 꾸리아 행사는 우리 모두의 단원들을 위한 행사입니다. 소중하고 중요한 를 위해 마련된 행사입니다.

4월과 5, 6월엔 굵직한 꾸리아의 중요한 행사와 본당 행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421() 이찬우 요셉 전 가톨릭대 교수신부님을 모시고 끝없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전단원 교육을 합니다. 512()은 꾸리아 야외행사를, 520()에는 자연보호 활동으로 성모동산 가꾸기가 예정되어 있고, 526()은 성모님의 밤 행사가, 69()에는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강화도 갑곶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필명 빠다킹 신부님)을 초빙하여 부르심, 도전, 안아주심이라는 주제로 전단원 피정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에 맛있는 포도주로 가득 차야 할 술 항아리에 맹물로 가득 채워지는 일이 없도록 각 쁘레시디움 간부님들과 단원님들께서는 주님께서 마련하신 이 초대에 적극 동참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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