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때문에~
옛날 어느 부자가 자신의 하인 백 명을 한 곳에 불러 모았습니다. 하인들이 모인 자리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부자는 하인들에게 금화 한 닢과 작은 술 단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말했습니다.
"곧 큰 잔치를 여는데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특별한 포도주를 연회에서 내놓고 싶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가 준 금화로 각자 다른 포도주를 한 단지씩 사 와서 이 큰 항아리에 한데 섞어 두도록 해라. 여러 가지 포도주를 섞으면 어떤 맛이 날지 매우 궁금하구나."
하인들은 술 단지와 금화를 가지고 각자 포도주를 구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 하인은 주인에게 받은 금화를 자신이 챙기고 자신의 술 단지에는 물을 채워 슬그머니 큰 항아리에 부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큰 술 항아리에 물이 조금 섞인 걸 누가 알겠어. 이 금화는 내가 써야겠다.'
잔치가 열린 날 부자는 포도주를 사러 보낸 하인들을 따로 모아 두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잔치는 그동안 고생한 너희들을 위한 잔치다. 오늘 하루는 너희가 사온 술을 마음껏 마시며 즐기기 바란다."
그리고 큰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받은 하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술잔에 받은 것은 전부 맹물이었습니다. 백 명의 하인들은 모두 ‘나 하나쯤이야’ 하고 생각하고, 금화를 빼돌리고 물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결국, 하인들은 빼돌린 금화를 도로 빼앗기고 잔치 내내 맹물만 마시고 있어야 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그 행동은 당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인지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꾸리아에서 주관하는 연중행사로 교육, 피정, 야외행사, 자연보호 활동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사나 교육, 피정에 동참하는 참여율이 많이 저조합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바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행사에 내가 주관자라고 한 번 바꾸어 생각해보세요. 주관자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그 행사의 주관자를 자칫 꾸리아 4간부라고 단정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행사에 주관자는 우리 개개인 모두입니다. 나 자신이 그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는 행사는 사실 무의미한 것입니다. 꾸리아 행사는 우리 모두의 단원들을 위한 행사입니다. 소중하고 중요한 ‘나’를 위해 마련된 행사입니다.
4월과 5월, 6월엔 굵직한 꾸리아의 중요한 행사와 본당 행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4월 21일(토) 이찬우 요셉 전 가톨릭대 교수신부님을 모시고 “끝없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전단원 교육을 합니다. 5월 12일(토)은 꾸리아 야외행사를, 5월 20일(일)에는 자연보호 활동으로 성모동산 가꾸기가 예정되어 있고, 5월 26일(토)은 성모님의 밤 행사가, 6월 9일(토)에는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강화도 갑곶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필명 빠다킹 신부님)을 초빙하여 《부르심, 도전, 안아주심》이라는 주제로 전단원 피정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에 맛있는 포도주로 가득 차야 할 술 항아리에 맹물로 가득 채워지는 일이 없도록 각 쁘레시디움 간부님들과 단원님들께서는 주님께서 마련하신 이 초대에 적극 동참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