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잡고 있는 나무를 놓아라!

2010. 12. 27. 오후 9:4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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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잡고 있는 나무를 놓아라!


한 겨울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한 사나이가 산을 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수십 미터를 구르다가 간신히 나무 하나를 잡았습니다.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렸고 날은 점점 더 추워졌습니다. 살려달라고 목청껏 외쳐보았지만 어두운 산속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호소했습니다.

“하느님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기도를 끝내자 놀랍게도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살려줄 테니 걱정하지마라. 지금 네가 잡고 있는 나무를 손에서 놓도록 하여라.” 그가 화를 내며 대들었습니다.

“하느님도 참 너무 하십니다. 살려고 간신히 잡은 나무를 놓으라니요!”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나무를 더욱 움켜잡았습니다. 며칠 후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어떤 이가 소나무를 두 손으로 붙잡은 채 얼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한 점은 그의 발에서 땅까지는 불과 일 미터도 안 되는 높이였다는 것입니다.


사나이는 한 밤중이라 나무에 매달린 그곳의 높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나무를 놓았더라면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믿지 못해 끝까지 나무를 움켜잡았고 결국에는 그 형태 그대로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현대인들의 안타깝고도 애처로운 모습입니다. 밧줄로 제 마음을 꽁꽁 묶고서 자신만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양손에 무언가를 꼭꼭 움켜쥐고 하느님과 이웃 앞에 감히 손을 펼쳐 보이지 못합니다.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담장을 높이 쌓고 무덤과 같은 곳에서 가족끼리만 지냅니다.


동양의 ‘팡새(PENSEES)’로 비견되는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무 잎이 떨어져 뿌리만 남은 뒤에야 꽃과 가지와 잎의 영화(榮華)가 헛된 것임을 알 것이요, 사람은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자손과 재물이 쓸데없는 것임을 알게 되리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가진 바에 대한 애착’을 넘어서 ‘자신에 대한 애착’까지도 버려야 하는 일입니다. 본성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는 이기심, 자존심, 자애심 등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종이의 여백이 필요하고 물을 담으려면 빈 그릇이 필요합니다. 내 것을 버리면 버릴수록, 움켜쥔 손을 펼치면 펼칠수록 주님은 그만큼 당신 것으로 채워주시지 않을까요.


제가 후원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서울지체장애인협회 다솜재활원이란 곳에서 감사의 편지와 함께 아래와 같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 울퉁불퉁 하고 뾰족뾰족 엉망으로 생긴 바위를 보고

꾸부렁꾸부렁 모양새로 자란 나무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긴 모습이 다르다고..

한 쪽이 없거나 모자르다고..

같은 인간인 것을!

엉터리 말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유롭지 못한 이들을..

뒤틀어진 몸을 가진 이들을..

알아야 할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을..

멋지다고 할 사람이..

아름답다고 여길 사람이..

너무너무 귀엽다고 말해 줄 소중한 당신이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어떤 이는 아무런 불평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는 일을 하면서도 불평불만이 입에 걸려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맡은 일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훼방을 놓습니다.


두주 전, 군종 신부님(차동욱 시몬)께서  교중미사를 집전하시면서 한 겨울 나라를 지키느라고 수고하는 장병들에게 보낼 위문품을 접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난주일 사무실에 많은 분들이 위문품을 접수해 주셨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신앙은 믿음이며, 그것을 받드는 일입니다. 또한 절대자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굶주리고 헐벗고 고통 받는 이들을 자신의 몸처럼 도우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좀도 도둑도 없는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연말연시, 특히 이 추운 겨울 날 어렵게 지내는 고단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여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레지오 단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단, ‘레지오’라는 이름을 떠나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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