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집을 벗는 일

2013. 4. 23. 오전 1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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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을 벗는 일
 
벽창호란 말이 있습니다. 고집 센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원래는 벽창우였다고 합니다.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크고 억센 소입니다. 이 지방 소는 유난히 크고 힘이 셌기에 벽동창성에서 한 자씩 따와 벽창우(碧昌牛)’라 불렀다는 겁니다. 그러다 고집 세고 무뚝뚝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벽창우벽창호로 바뀐 셈입니다.

고집을 부리다 보면 사실 되는 일이 없습니다. 결국 손해를 보게 되지요.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변신을 해야 삶의 새로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에 첫걸음은 아집을 벗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집(我執: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워 버팀)의 출발입니다. 옆에서 보면 압니다. 그렇지만 자신은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줄 압니다. 아집에 붙잡히면 이렇듯 어리석어집니다. 행복의 기회는 자주 옵니다. 삶의 자세를 바꿀 때마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늘 하는 것만 고집하면 인생 또한 늘 그 자리입니다.

마태복음 2616절의 말씀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기회를 노립니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집의 벽을 깨지 못했기에 유다는 이 말씀을 듣습니다. 스승의 마음도 아팠을 것입니다. 나이 들면서 변화를 거부하면 자신의 성장도 막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부활은 없는 법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나 자신은 고집이나 아집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나 상처를 준 일이 없었던가?’ ‘고집이나 아집 때문에 나 자신이 피해를 본 일은 없었던가?’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 천주교 신자인데 왜 그래?”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저 사람 천주교 신자래. 그래서 그런지 뭔가 달라, 어딘지 모르게 향기가 나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우리는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선교를 많이 하게 됩니다. 외인을 교회로 인도하는데 우리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장애의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행동 하나하나가 내 마음의 거울이고 교회의 거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안고 있는 잘못된 습관을 과감히 고치는 것입니다. 고집이나 아집에 집착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한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 주를 잘 살면 한 달을 잘 살게 되고 그렇다보면 일 년을, 아니 여생을 잘 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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