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거룩함이 참으로 의미하는 것
|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제 5 장 복음에 나타난 영성의 본질적인 요소들 2. 거룩함이 참으로 의미하는 것 교회에 관한 공의회 문헌(Lumen Gentium) 5장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크리스챤들의 거룩함으로의 보편적인 부르심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의 생활과 활동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오늘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모든 우리의 권리와 의무는 “거룩함”이라는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에페소서 1:4)”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은 성서에서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2차 바티칸에서 직시한 도전은 그 의미를 교회의 전체 비전 특별히 교회 내 평신도의 중심적 위치에 대한 비전과 함께 다소 자세히 설명했다. 공의회는 교회의 주인인 그리스도가 거룩하기에 교회 또한 거룩하다는 강조로부터 시작한다. 그분은 교회를 당신과 결합시켜 당신 몸이 되게 하시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의 선물로 가득 채워 주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데살로니카 4:3; 에페소서 1:4)”라고 한 사도의 말씀대로, 교회 안에서 모든 이는 교계에 소속된 사람이든 교계의 사목을 받는 사람이든 다 거룩함으로 부름 받고 있다.(39) 그러나 거룩하게 불림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심과 나약함으로부터 격리된 내세를 의미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거룩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마치 그 거룩한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닌 석고상에나 있는 성인처럼,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무아경의 상태에 휘 잡혀 있는 사람처럼 그 앞에서 안절부절 못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거룩하다”는 단어의 의미이다. 오래전부터 저자는 이러한 거룩함을 추구하는 대신 하느님과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그분 백성들과의 사랑 안에서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갈망하는 것을 더 선호하였다. 또한 저자는 영적 지도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열망하도록 권하곤 한다. 이것이 거룩함이라는 정의하기 애매한 목표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도달하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중심적이고 결국 자만을 야기하는 완벽의 추구보다 위험을 적게 수반할 것이다. 공의회는 거룩함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마태오 5:48)”하는 우리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그분은 친히 거룩한 생활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시다(40)”라며 이러한 완전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지 결코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거룩함이 다른 무엇보다도 “크리스챤 생활의 충만과 사랑의 완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거룩한 사람은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 즉 아버지를 위한 그리고 그분의 의지를 행하기 위한 예수 자신의 열정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인내하고, 무례하지 않기에(1고린토 13:4-7 참조),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를 기쁘게 하는 동료이지 마음을 꺼림칙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한 사랑 가득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자비롭고 관심어린 태도에도 그분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예수님은 온전히 거룩하셨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분노는 그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의 질투와 불안 때문이었다. 그분의 선하심이 그들 자신의 위선을 드러내는 본보기로 비춰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그분이 불편했던 것이다. 우리중의 아무도 행동하고 사랑하는데 있어 완벽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결점이나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은총 안에서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분의 온화한 그러나 용감했던 태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거룩함인 것이다. 길고도 아름다운 교회에 관한 공의회 문헌 41절에서, 2차 바티칸은 어떻게 이 거룩함의 참된 이상을 교회 내 모든 부르심-주교, 사제, 부제, 평신도 사도직에 종사하는 사람, 결혼한 부부와 부모, 과부와 독신, 노동자, 병든 자와 박해받는 사람 등-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모든 경우에,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자신의 특별한 부르심에 상응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결혼한 사람은 “그들 생활 전체를 통해 은총 안에서 성실한 사랑을 나누고 서로를 받들어 줌으로써”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모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스럽게 맞이한 그들의 아이들을 크리스챤의 진리와 복음적 미덕에 물들도록 하여야만 한다.” 이것이 결혼한 평신도 삶에서 거룩함으로 그리고 사랑의 완성으로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누구도 거룩함이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봉쇄수도원에 있는 수도자든, 본당 신부든, 결혼한 아니면 독신 생활을 하는 평신도든,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일생의 고투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다. 일상의 생활과 멀리 떨어져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주님께서 그분의 놀라우심을 내 안에서 자유롭게 성취하실 수 있도록 허락하기만 한다면, 하느님의 은총은 어느 크리스챤이든 어떤 삶의 형태 안에서든 사랑의 완성을 실현할 것이다. [계속] |
출처 :이냐시오 영성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 손우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