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육화와 공현(公顯): 아는 것과 행하는 것

2009. 12. 30. 오후 8:34:35

글자
[29] 육화와 공현(公顯):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아래 글은 토마스 H. 그린, S.J. 신부님께서 평신도 영성에 관하여 쓰신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를 번역한 글입니다. 작년까지 1부를 번역하였다가 이제야 2부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번역한 1부를 보시길 원하시는 분은 “말머리”-“평신도영성”으로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번역한 글은 책의 일부이기에 부분 부분 보시기보다는 계속해서 올려지는 글을 읽으시는 것이 책 내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번역을 마친 후에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며, 카페에 올려진 글은 초벌 번역 수준이기에 다소 문맥이 어색한 곳이 많을 것입니다. 이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손우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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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제2부 하나의 목적을 향한 다양한 길]

제5장 복음에 나타난 영성의 본질적인 요소들

1. 육화와 공현(公顯): 아는 것과 행하는 것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에게 매해 첫 번째 대축일은 성탄절 끝에 있는 주의 공현 대축일이다. 러시아와 같은 동방교회의 몇몇 나라에서는 이 날을 크리스마스보다도 더 큰 축제일로 보내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이 날 새로 탄생한 유다인의 왕을 경배하기 위하여 동방으로부터 베들레헴을 찾아온 마태오 복음 구절을 읽기에 이 날을 세 왕들의 축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마태오는 그들을 왕이라 부르지 않고 단순히 “동방에서 온 박사”라고 부른다. 또한 그는 세 명이라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여러 세기를 걸쳐 그리스도교 전통은 그들을 왕으로 불렀고, 마태오 복음에서 선물을 셋이라 언급했기에 그들이 세 명이었다고 하며, 가스파르(Gaspar), 멜키오르(Melchior), 발타사르(Balthasar)라는 이름까지 주었다. 비록 이러한 구체적인 언급들이 모두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태오 복음의 원문을 전통 안에서 이렇듯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얼마나 이 이야기가 지난 2000년 동안 크리스챤들에게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처음부터 동방에서 온 현인들은 예수께서 결국 파견되신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상징화하고 있고,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날 밤 양치는 목동들은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현은 예수의 공생활을 시작하는 요르단에서의 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와 가나의 결혼식에서의 그의 첫 번째 기적을 함께 기념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요한 2:11)”

‘공현’이라는 말은 본래 설명, 표현, 계시 등을 의미한다. 동방박사의 방문, 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 그리고 가나에서의 기적은 유대인에게, 이방인에게 그리고 세상에 성탄 저녁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가 참으로 메시아이며 세상의 구세주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분이 우리들 중의 한사람과 같이 그저 세상에 왔다는 것으로만은 충분하지 않다. 그분의 오심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야만 한다. 오로지 그때만 우리는 그를 우리의 구세주이며 우리 삶의 주인임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1부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교회의 생각이 얼마나 점진적으로 전개되어 왔는가를 보았다. 수세기가 지나면서 그리고 영성이 사막에서 수도원으로 그리고 장터(우리 삶의 터전)로 옮겨가면서 그분의, 우리의 세상에서 주님의 현존은 점진적으로 공현 되어왔다. 그분은 오래전에 마리아와 요셉에게 왔지만 이제는 그분 자신의 사람들에게 오셨다. 그러나 요한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요한 1:10-11)”

글자그대로 본다면 요한의 언급은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이 구절을 성찰하여 본다면, 그분의 말씀이 예수님의 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에 계시고 이 세상은 이제 그분의 나라라는 것을 우리는 늦게야 깨달았다.

그분은 인내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당신을 우리들에게 드러내셨고, 우리는 아주 천천히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예수님 자신의 삶에서는 물론 교회 내에서도 육화와 공현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주님은 우리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육신을 취하셨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 육화가 보다 증명되어지기를 그리고 우리 삶 안에서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단지 인간일 뿐이기에 이렇듯 보여야지만 한다. 따라서 우리의 깊은 체험은 우리 행동 안에서 볼 수 있도록 구체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구체화되어야지 단지 “우리 머리 안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육화는 공현에 의해, 선행에 의한 내적 신앙체험에 의해 그리고 행동이 따르는 앎에 의해 완성되어져야만 한다.

요한의 첫 번째 편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접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 자기가 빛 속에서 산다고 말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자입니다.(요한 1서 2:3,9)”

같은 편지에서 하나 더 유명하고도 직접적인 구절을 인용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요한 1서 4:20-21)”

이 중심적인 신약성서의 주제는 우리가 하느님을 우선은 그분의 창조를 통해 알고 있지만, 만일 우리가 우리 주변의 세상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없음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평신도영성에 관하여, 우리가 평신도들이 크리스챤의 삶과 거룩함의 충만으로 불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 부르심을 행동하여야만 한다. 이 책의 2부에서 저자는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구체화하는 “행하는 것”에 관해 성찰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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