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평신도 삶에 있어서의 도전들
|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제 3 장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와 평신도의 독실한 삶 4. 평신도 삶에 있어서의 도전들 프란치스꼬는 4부에서 독실한 평신도들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유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세상 아래로 두발을 땅에 딛고 있는 그의 현실감 그리고 심지어는 오늘날까지도 적용할 수 있는 그의 생각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훈계로 시작한다. “우리는 세속의 자녀들이 하는 비난을 무시하여야만 한다.” (1장) 지금처럼 그의 시대에도, 하느님께 충실하려하고 헌신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몰이해나 심지어는 비난까지 받아야만 했다. 때때로 이것은 질투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우리들이 행하는 신앙의 실천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즉, 해야만 하는데 자신은 하지 않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협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 또한 자신의 고향(루가 4:16-30)에서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서 경험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도전은 특별히 영적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어려운 유혹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영적인 성숙을 통하여 우리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하느님께서 참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확신을 더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삶을 시작할 때, 영의 세계는 여전히 낯설고 친숙하지 않다. 또한,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무신론에 의해 흔들리곤 한다. 프란치스꼬는 우리가 독실한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는 무엇보다도 큰 용기와 신뢰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좋은 친구들 예를 들어 우리들의 새로운 비전이나 가치를 함께 나누는 기도모임이나 지도자 그리고 좋은 책들이 특별히 초기 단계에 큰 도움이 된다. 초심자나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 모두 유혹과 죄의 다른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유혹을 받는다.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계속될 것이다. 살레시오가 강조한 것처럼, 성인들조차도 심한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천가지 유혹도 한가지 죄악을 만들 수는 없다. 프란치스꼬는 유혹의 세 단계를 설명한다. “(1) 죄가 영혼에 제안되어 진다. (2) 이 제안들에 의해 기쁘거나 불쾌해 진다. (3) 결국 동의하거나 거절한다.” 예수조차 이러한 유혹을 받으신 것처럼, 유혹 자체는 죄가 아니다. 놀랍게도 만일 어떠한 즐거움이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보다 아래에 있는 우리의 본능적인 것이라면 유혹에 대한 영혼의 반응 역시 죄가 아니다. 오로지 우리가 자유롭게 그 유혹에 동의했을 때만 우리는 죄를 짓는 것이다. 유혹은 우리의 삶 모든 곳에 널리 퍼져있기에, 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봉헌된 영혼들에게 용기를 주고 어떻게 유혹을 다룰 것인가 설명하고자 서너 장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는 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이 오히려 그것을 우리 삶의 일상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유혹들로부터 온전히 돌아서는 것을 배워야지, 불에 의해 매혹된 나방처럼 결코 그것들을 장난 삼아 다루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에게 있어 유혹에 가장 약한 부분이 어떤 것인가 분명히 알고 있는 자기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인식과 함께, 저자가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로” 5장에서 언급하였듯이, 특별히 자신에게 약한 유혹으로부터 의지가 강해질 수 있도록 어떤 보속을 실천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프란치스꼬는 우리 자신을 걱정으로 너무 지치게 하지 말라고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죄라는 한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걱정과 불안이 영혼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악이다 … 걱정과 불안은 현재의 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또는 자기가 희망하는 좋은 것을 얻으려는 과도한 열망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걱정하는 것보다 더 악을 증가시키고 선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은 없다." (11장) 매일 미사에서 우리는 주의 기도 후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보호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느님은 평화의 하느님이지 혼돈의 하느님이 아니다. 걱정과 근심은 악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의 고전 "신심생활 입문"의 토론을 통해 우리는 그의 풍요로움을 어느 정도 살펴볼 수가 있었다. 물론 자세하게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평신도영성이 참으로 우리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은 성직자이건 수도자이건 평신도이건 어떤 삶의 형태에서도 힘든 것이다. 이것은 참된 봉헌과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 그리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과 건전한 지각을 요구한다. 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바로 이러한 모두를 지니고 가르쳤기에, 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에서 일어난 평신도영성의 굳은 토대를 놓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계속] |
출처 :이냐시오 영성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 손우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