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13

2009. 12. 14. 오후 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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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13

제 2 장 사도적 영성의 두 가지 고전적 모델

1. 선교(사도적 영성, 활동)와 정주(定住, 관상): 본질적인 긴장

베네딕도가 은둔과 금욕의 사막으로부터 돌아왔을 때, 그는 복음에 대한 교회의 이해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중용을 갖고 단순하고 기쁘게 복음을 살라는 그의 강조는 결국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리헌장"에 나오는 "거룩함으로의 보편적 부르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였던 것이다.

베네딕도의 통찰은 이제 복음에 나타난 영성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결코 쉽거나 아무런 요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 자신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가 14:27) 그리고 베네딕도에게 수도생활의 규칙이 되었던 산상설교는 그렇게 살고자하는 누구에게나 관대함과 온전한 헌신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다. 베네딕도의 본질적인 요점은 어떤 대단한 일이나 과도한 극기가 아니라 온전한 사랑의 헌신이 우리를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베네딕도의 이러한 이상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몇 년 이내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수도 생활의 질서와 조화 그리고 복음적 소박함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또 많은 수도회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곧 문제가 있게 되었다. 이것은 베네딕도의 영성이 크리스챤 영성의 역사에서 마지막이 아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자신이 595년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베네딕도의 수도승이었으면서 대수도원장이었던 그레고리는 북쪽 지역 앵글로섹슨족에 관한 보고를 듣게된다. 그가 이 금발의 용감한 부족들에게 전교가 되었는지 알아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레고리에게 이것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이 선교에 그는 누구를 보낼 수 있었는가? 그 당시 교구 사제들은 막 독신 서원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은 지역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있었다. 선교를 위한 유일한 대안은 수도원이었다. 그레고리는 자신이 수도승이었고 또 대수도원장이었기 때문에 그는 아마도 북유럽 선교를 위해 수도승을 택하리라고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어떤 일에서도 교회와 수도 생활을 위한 중요한 결정에서 그들을 선택하였다.

오래 전부터 이미 있었던 아일랜드 수도승들과 연계하여, 베네딕도회는 복음과 그리스도 문화를 전하는 일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의 선교 임무와 그들의 수도회 영성을 통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베네딕도회의 삶은 규칙적이고 정돈된 리듬을 가지고 기도와 작업을 하게 되어있다. 이에는 성무일도의 합송과 공동체 미사를 포함한다. 비록 그들이 사막의 교부들보다 더 세상에 관심을 가졌지만, 수도승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독립적이고 수도원 담 안에서 작은 형제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북유럽의 도로 한복판에서 복음을 선포할 수 있을까?

결국 정주하며 관상 생활을 하는 수도원 영성과 선교사 생활간의 긴장은 10세기부터 12세기에 Cluny와 Citeaux의 커다란 개혁을 이끌어낸다. 이 두 수도원들은 본래의 정주 수도회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과 베네딕도의 단순함과 공동체의 이상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에 앞장서게 된다.

중세기 베네딕도 정신의 개혁과 부활은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Citeaus의 개혁은 엄격하게 규칙을 준수하는 오늘날의 트라피스트인 시토수도회로 발전하였다. 그렇다면, 교회의 선교활동은 어떻게 되었는가? 정주 수도생활로 돌아오게 된 것은 베네딕도회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겠지만 교회에는 커다란 공백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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