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3|

2009. 12. 4. 오후 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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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3|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들어가며: 평신도의 시대]

3. 피라미드 형태의 교회

저자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제시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신약성서에 이미 자캐오의 이야기가 언급되었듯이, 그 동안 교회 내에서 평신도로의 부르심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소중하고도 가치 있는 길로 인식되어져 왔는가? 사실 교회 내에는 마르타나 토마스 모어 그리고 프랑스의 루이스 9세처럼 늘 평신도 성인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교회의 일반적인 경향은 평신도는 교회 내에서 늘 두 번째 단계의 구성원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즉, 예수를 온전히 따르는 길은 독신의 수도생활이나 성직생활을 사는 것으로만 생각되어져 왔던 것이다.

성서조차 이러한 관점에서 인용되어져 왔다. 바오로는 "이와 같이 자기 약혼녀와 결혼하는 것도 잘하는 일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것은 더 잘하는 일입니다(1고린토 7:38)"라고 말하였다. 이 구절이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깊이 성찰되어진다면 이러한 관점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교회 내에서 바오로의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문자 그대로 그리고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즉, 독신이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항상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한 보다 높은 형태의 응답으로 생각되어져왔던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좋은 날씨를 원할 때 클라라회 수녀님들에게 계란을 가져가는 관습이 있다. 물론, 이 같은 행동은 주님께 대한 아름답고도 단순한 신뢰의 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봉쇄생활이나 봉헌된 삶을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고, 하느님께서도 그들의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시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모임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들에게 보다 높은 자리를 배려하고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실은 우리가 복음의 가르침을 잘못 성찰한데서 기인된 것이다. 물론 예수의 대리인으로 어떤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공경하고자 하는 열망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당신이 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하라고 명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의 이미지는 맨 위에 교황이 있고 밑에는 평신도가 있는 마치 피라미드와 같은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래로 주교, 성직자 그리고 수도자들이 있다. 우리는 피라미드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갈수록 하느님과 보다 가까이 있고, 더 거룩하고 더 크리스챤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지나치게 귀하게 생각하고 평신도를 평가 절하하는 행동이나 태도를 만든다. 한 예로, 어느 신부의 부모 장례식에서 우리는 그저 평범한 크리스챤이었던 다른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신부의 부모로서 존경되어지고 칭송되어지는 강론을 쉽게 듣는다. 성직자 아들은 다른 자녀들보다 거룩함의 피라미드에서 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그 부모에게는 마치 영예로운 왕관과 같이 소개되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교회의 피라미드 형태와 그로 야기된 행동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여러분들은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저자는 다음 섹션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오늘날 가톨릭 신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말하고자한다. 우리는 공의회가 피라미드를 완전히 뒤집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새로운 비전을 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저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시대가 평신도의 시대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특별히 안정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뒤집어 그 정점으로 균형을 잡고 세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가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안전을 위해 아마도 계속 클라라회 수녀님들에게 계란을 가져갈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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