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7

2009. 12. 8. 오후 9: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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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7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제 1 부 역사적 배경과 그 출현]

제 1 장 "세상"으로 돌아오다

1. 역사적 배경의 필요성

평신도 성소(聖召)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이해하는데 있어 우리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질문이 있다. 평신도 역시 교회 내에서 참된 거룩함으로 불리어졌다면, 왜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자신들이 교회 내에서 두 번째 단계의 그룹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성직자, 수도자 그룹이 있음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평신도를 그보다 낮은 하위그룹으로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잘못된 추측이다. 문제의 근원은 이보다 더 깊고 복잡하다. 평신도의 시대가 교회 내에서 왜 그토록 늦게 오게되었는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내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겠지만, 우리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사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로지 지나온 역사의 맥락에서 오늘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고찰하는 내용의 공통된 주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심이 되었던 주제 중의 하나인 "거룩함으로의 보편적 부르심"으로서의 평신도 성소이다. 물론, 교계제도나 수도회 단체들은 여전히 교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봉사하는 "하느님의 백성"보다 상위에 있거나, 더 크리스챤적이거나, 더 거룩함으로서가 아니다. 실로 "봉사"는 바티칸공의회에서 언급한 교계제도의 비전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어이다. 피라미드의 정상(교황)은 피라미드의 아래 부분(평신도) 위에 군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 되기 위함이다. 즉, 이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라미드의 형상을 뒤집은 것이다.

우리는 교황의 특별한 계승과 함께 축복되어져왔으며, 그들은 각 시대와 문화를 통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사도적 권위의 비전으로 교회를 인도하여왔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하셨다. (마태오 20:25-28)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종이 주인보다 더 나을 수 없고 파견된 사람이 파견한 사람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요한 13:13-16)

이것이 교회의 권위에 대한 예수 자신의 가르침이었기에 모든 시대의 위대한 성인들은 모두 이것을 이해하였고 또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6장에서 우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뒤바뀐 피라미드 형태가 교회 전통 중 가장 좋은 몫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과 교회 안에서 교계제도의 가장 적절한 역할을 보이기 위하여, 아우구스띠노 성인과 교황 그레고리오 그리고 몇몇 영적지도자들을 소개할 것이다. 그레고리오와 아우구스띠노는 그들의 주교직을 특권이라기보다는 어려움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것은 바로 우리 시대의 주교들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을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가톨릭 미사의 성찬례 기도 때 교황과 주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이 갖고 있는 교회 내에서의 특권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위치가 세상으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이 점에 대해 "악마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더욱 간교히 유혹할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타락한다면 그들의 나쁜 표양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 그레고리오가 교황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위험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이상적인 대안으로 평신도의 삶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특기할만하다. 우리가 앞으로 6장에서 보게되듯이, 그는 오히려 그가 있었던 은둔수도회의 평화와 질서를 꿈꾸었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기교회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서기 600년경 그레고리오가 바라던 수도적인 삶이 수세기 전 교회역사를 통해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앞서 저자가 제안하였듯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의해 시작된 평신도의 시대가 교회 안에 늦게 찾아온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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