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평신도 시대의 도래
|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제 4 장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평신도 시대 1. 평신도 시대의 도래 서문에서 저자는 최근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카톨릭 교회 내에 평신도시대를 열었다고 말하였다. 저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로마에서는 오늘날 교회 내에서의 평신도 역할에 관하여 1987년 후반에 개최될 시노드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몇몇 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의 결실로서, 교회구성원들 안에서 교회 그리고 세상간의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려는 시도였다. 저자가 아는 한, 이 시노드는 전적으로 평신도에 관한 주제를 다룰 교회 내의 첫 번째 중요한 모임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이 책을 통해 살펴본 바로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평신도 시대를 향한 교회 내의 발전과정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이제 우리는 현재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이르게된다. 저자는 여러분들과 함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본질적인 비전으로 주교들이 참조한 "거룩함으로의 보편적인 부르심"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배경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한가지 더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마지막 있었던 공의회는 1869년부터 1870년까지 있었던 제1차 바티칸공의회이다. 공의회는 개최된 지역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데, 공식적으로 "보편" 공의회로 통상 알려진 21번의 공의회 중에 최근에 있었던 이 두 공의회만이 바티칸에서 개최되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19세기 교회의 종합적인 신학을 완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와 프러시아 사이의 전쟁으로 중단되고, 다시 소집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1차 바티칸과 2차 바티칸 사이에서 자랐던 사람들은 교회에 대하여 불안정한 비전을 갖게 되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에서 주교의 위치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교황의 지위를 강조하는 문서로 끝을 맺게 된다. 그들이 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 즉,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에 관해서는 교황의 직위와 심지어 주교의 직위에 관한 것만큼도 분명하게 정의하지 못하였다. 100년이 지난 후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와서 마침내 주교들은 교회의 종합적인 비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지연이 특별히 1870년부터 1965년 사이에 신앙을 형성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행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평신도에 관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비전은 1870년에는 발표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있었다 하더라도 수정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계속] |
출처 :이냐시오 영성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 손우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