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17

2009. 12. 18. 오후 7: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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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17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제 2 장 사도적 영성의 두 가지 고전적 모델

5.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

구약성서에서, 한 유명한 성서학자가 언급하였듯이, 야훼께서는 당신 백성의 역사 안에서 "행동하는 하느님"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따라서 역사 자체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은 방법으로 유대-크리스챤 전통에 있어 중심이 되는 것이다. 야훼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시간과 공간 안에서 당신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신 것이다.

세상 안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해서, 이러한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유대인의 관념은 더욱 깊어지고 변하게 되었다. 예수는 초기 크리스챤들에게 이사야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로 인식되어졌다.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임마누엘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이것이 하느님께서 그들을 해방과 거룩함으로 인도하는데 도구가 되는 왕이나 예언자로서 그들의 지도자를 의미한다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 자신을 한층 놀랍고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임마누엘로 드러내셨다. 그는 단지 하느님의 예언자가 아닌 그의 백성 한가운데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느님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제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의 역사가 되게 되었다.

저자가 크리스챤 영성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것은 마치 육화의 참된 의미에 대한 이해가 발전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우리는 통상적으로 많은 일로 바쁘다. 특별히 크리스마스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큰 축제로 지내는 필리핀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제 크리스마스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이나 "성탄절에 그리스도가 없다"는 비판을 우리는 흔히 접하게 된다. 예수님 탄생의 올바른 종교적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장에서 우리의 성찰은 좀더 깊은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종교적 정신을 유지할 때조차도 그 충분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을 단순히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임마누엘 사건의 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바로 우리 역사 안에 계신다. 세속 또한 그에게 속한다. 가장 진보적인 의미에서 하느님이 진정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파악하는데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까지 실로 20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이제 그분을 만나기 위해 광야로 탈출할 필요도 없으며, 은쇄생활을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과 세상과 대처하는 시간을 이분할 필요도 없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분은 언제나 세상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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