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오늘날 평신도들에게 신심생활이 참으로 가능한가?
|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제 3 장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와 평신도의 독실한 삶 3. 오늘날 평신도들에게 신심생활이 참으로 가능한가? 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그의 영적지도를 받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자신이 제안한 영적 훈련들을 실천할 수 있었으며 또 많은 이득을 얻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오늘날 봉헌된 평신도 크리스챤들에게 참으로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교육을 받은 귀족이나 상류층의 여유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의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인쇄된 책들이 흔치않았기 때문에 그의 독자는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 계급을 가진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 즉 신앙에 충실하지만 생활비를 벌어야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힘들게 일해야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러한 평신도들도 역시 프란치스꼬 살레시오가 제안한 영적 프로그램들을 실천할 수 있는가? 저자가 생각하기에는 프란치스꼬의 특징인 균형과 일상적인 지각을 소유하였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따르는데 있어 현실감의 필요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초심자들에게 과대한 욕심을 갖지 말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탁월하게 하느님께 기도 드리는 것을 칭송하면서도, 우리는 보다 낮은 그러나 안전한 방법을 택하도록 하자. 그것은 비록 탁월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부족함과 작음에는 알맞은 것이다. 만일 우리 자신이 이러한 모습 안에서 겸손과 훌륭한 신앙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우리들을 참으로 위대하고 높은 곳으로 올려 주실 것이다." (3부 2장) 훌륭한 지도자의 도움,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유머감각을 지닌 일상적인 지각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금 있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하느님 사랑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매일 미사가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더 자랄 때를 기다릴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개인적인 성향과 필요에 맞는 고백성사 패턴을 찾을 수도 있다. 즉, 만일 내가 신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일주일에 한번은 너무 자주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게으르고 나태한 경향이 있다면 매주 고해성사를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패턴과 횟수가 자신의 영적 성장과 평화에 도움이 되는가를 찾는 것이다. 평신도 삶에 적절한 덕목을 언급하면서도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여전히 두 발을 땅에 딛고있었던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인내와 겸손, 금전적인 일에 대한 적당한 관심, 순명, 정결(특별히 이 덕목을 결혼한 사람들에게 적용) 그리고 영적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지막 주제에 대해서는 "비록 부유하더라도 어떻게 참된 가난을 실천할 수 있을까?"와 "참된 가난에서 어떻게 영의 부유함을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두 개의 장이 있다. 또한, 프란치스꼬는 우리들의 거룩함을 구체적인 생활 안에 뿌리를 두도록 권하고 있다. 그리고 겸손에 대한 앞선 토론에는 "어떻게 우리는 가난을 실천하면서도 우리의 고귀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장이 있다. 즉, 그는 양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중도의 길을 잘 설명하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덕목들이 하나 또는 두개의 장으로 각각 다루어지는 동안 프란치스꼬는 여섯 장을 겸손에 할애하고, 우정에 여섯 장 그리고 말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다섯 장을 할애하였다. 첫 번째 두 개는 저자에게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를 연상시킨다. 그녀는 이 책이 쓰여지기 약 25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비록 시성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여러 번 그녀의 말을 참조하였다. 데레사에게 겸손은 모든 참된 거룩함에 있어 기본이 되는 덕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겸손을 자기비난이나 자기격하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겸손은 진리였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겸손을 통해 하느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분명하고도 참된 지식을 갖기 때문이다. 우정 또한 데레사에게 있어 거룩함을 위한 여정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그에 맞게 당신의 친구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잘못된 친구들과의 만남 때문에 그들의 삶을 파멸시키고 있는가? 또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친구를 통해 축복되어지고 또 좋은 열매를 맺는가? 죄와 말의 덕목에 대해 프란치스꼬 살레시오가 말하는 것은 그의 건전한 게임과 오락에 대한 토론에서와 같이 우정에 관한 주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의 시대에서 오락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오늘날 영화, 춤 그리고 사교적인 술자리로 대체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균형과 중용의 원리는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다. 3부에서 그는 결혼, 순결 그리고 미망인에 대한 아름다운 토론으로 끝을 맺는다. 살레시오는 다른 두 가지보다도 결혼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결혼한 상태에서 그들 대부분의 삶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결혼을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로서, 의무보다는 권리와 즐거움의 균형 안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나 역시 성령께서 결혼한 사람들에게 성서에서 강하게 권고했던 상호간의 사랑을 권장하고자한다 … 나의 친구들이여, 보이지 않는 손으로 당신의 거룩한 결혼의 유대를 묶어주고 당신들을 서로에게 주게 하는 분 또한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까?" (38장) 결혼에 대해 프란치스꼬는 다소 간결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조차 특별히 저자와 같은 독신을 위한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39장은 "결혼생활에서 잠자리의 성스러움"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그는 성적인 즐거움과 먹는 것이 모두 육적인 욕구로서 다소 비슷하다고 언급하면서 말한다. "나는 다른 것에 대해 말함으로 해서 내가 말할 수 없는 섹스의 즐거움을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만일 무지에서 오는 가르침을 피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것인가! [계속] |
출처 :이냐시오 영성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 손우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