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삶의 구체적인 표지
|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평신도 영성 (토마스 H. 그린, S.J.) 제 5 장 복음에 나타난 영성의 본질적인 요소들 3.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삶의 구체적인 표지 우리의 성화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지 결코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바오로의 말을 인용하곤 한다. 특히 바오로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우리가 의화(義化)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구약성서에 있는 율법의 모든 세세한 항목들을 엄격히 준수해야하는 바오로 자신의 바리사이파적 배경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만일 사람에게 주어진 율법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온 세상이 죄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이 그 믿음으로 약속된 그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갈라디아서 3:21-22) 바오로는 구약성서에 있는 율법의 준수를 우리가 아무런 대가 없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선물과 대비시키고 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아무리 우리들 중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도 그 규정을 모두 준수하기 어렵기에 율법은 오히려 우리들의 죄를 드러내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을 “의화”시킨다. 그러나 이로부터 바오로는 선한 삶을 살아가려는 우리 자신의 노력을 중요하지 않게 보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이다. 그 자신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 반대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 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할까 하여 이렇게 인간사에 비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 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 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로마서 6:1-2,5-7,19) 여기서 바오로는 두 극단의 중간 입장을 취하려하고 있다. 한 극단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긴 사람들의 수동적인 태도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는 이러한 극단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단지 인간이다.” 이것은 모든 실패 그리고 부주의한 행동에 대한 변명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인간일 뿐인데 우리가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는가? 또 다른 극단은 저자와 같이 아메리칸 배경을 갖고 있는 앵글로 섹슨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특히 일반적인 것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의 설계와 책임을 강조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펠라지우스적 강조이다. 아마도 이러한 극단적인 사람들에게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펠라지우스(Pelagius, ?∼418)는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를 자력으로 실행할 능력이 있으므로 구령(救靈)도 신앙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가톨릭대사전) 바오로에 따르면 복음의 진리는 대략 양 극단의 중간이다. 우리의 성화는 실로 99퍼센트는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나 다른 1퍼센트 즉 그분의 은혜로운 선도에 대한 우리의 응답 또한 결정적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바오로는 옷 입는 비유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 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셨으니, 이제 여러분도 똑같이 용서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옷들을 통해, 모든 것을 하나로 묶고 완전하게 하기위해 여러분은 사랑의 옷을 입으십시오.(골로사이서 3:12-14, 이 구절은 영문 성서를 중심으로 재번역한 것임.) 이 아름다운 구절에는 두 가지 주목할만한 요점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들의 선행이 우선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를 받아들이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셨으니, 이제 우리도 똑같이 하여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를 받아들여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사의 응답과 같은 특징은 잘 알려진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에도 또 다른 옷 입는 비유로 잘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우리의 삶은 사탄의 군대와 교전하는 것과 같다는 확신에 기초하여 특별히 남성적인 군대의 분위기로 무장하는 비유를 들고 있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그래야 악한 무리가 공격해 올 때에 그들을 대항하여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고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손에는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에페소서 6:12-18) 진리, 성실,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 신앙 그리고 기도와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생활의 구체적인 표징들은 이 구절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그것들은 골로사이서의 온유한 항목들(동정심, 친절, 겸손, 인내, 포용, 용서, 사랑)을 강하게 보완하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대비되는 두 항목들은 함께 참된 크리스챤의 거룩함을 위한 포괄적인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양 구절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수용성에 대한 강조와 하느님의 은혜로운 선물에 대한 우선적인 강조이다. 그리고 우리의 덕행의 삶은 하느님의 그러한 선물에 대한 감사의 응답인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의 구원을 우리의 투구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칼로서 “성령으로부터의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계속] |
출처 :이냐시오 영성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 손우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