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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헬렛은 “서원을 하고 채우지 않는 것보다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5,4)고 충고하고, 벤 시라는 “서원을 하기 전에 자신을 준비시켜
주님을 떠보는 인간처럼 되지 마라.”(집회 18,23)고 권고합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고대 근동 지방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에서도 발견되는 관습이었지만, 나중에는 금지되었습니다.
자기의 서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지 않고
서원을 했다는 측면에서, 입타는 진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서원을 취소했어야 할까요?
하지만 아무리 신중을 다한다 해도 서원할 때 그에
뒤따르는 결과를 모두 알아서 서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알지 못하는 미래를 내어 맡기는 것이 서원입니다.
입타 이야기는 주님께 서원한 것은 깨뜨릴 수 없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부부의 경우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두 계산해 보고
살펴본 다음에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지요.
열심히 살다가 가족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엄습할 때,
결혼 당시 예상치 않은 일이라고 해서 결혼을 취소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입타의 딸은 자기가 죽어야 할 처지인데도 아버지의 서원을 지켜 줍니다.
기상천외한 이런 일을 맞게 될 줄 몰랐다는 것이
결코 하나의 구실이 될 수 없었습니다. 모든 혼인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면서도 서약하는 것이고, 또한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도 서원이나 혼인 서약은, 내가 알 수 없는
미래 전부를 몽땅 하느님이나 상대방에게 맡기는 숭고한 약속입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화답송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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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당신 뜻대로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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