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디어(예수회 사제이며 미국 최대 규모이자 가장 오래된 평화 운동 단체 '화해연대'의 총무)의
살아 있는 평화의 책을 읽다 예수님과 한마음 식구들과 같이 공감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 올립니다.
여러 해동안 나는 스스로 기도를 꽤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은근히 자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 보면 부끄럽고 민망할 따름이다. 나는 세상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하느님께 고하면서 그 문제들의 해결 방안까지 말씀드렸다. 나는 하느님에게 불평을 토했다. 큰소리를 치고 명령을 내렸다. 내 식으로, 내 일정표에 따라서 행동하실 것을 요구했다. 하느님이 내 뜻을 이루어 주시고,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시고, 내가 내다보는 전망에 발맞추어 주시기를 원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토록 오만할 수 있었는지 놀랄 따름이다. 나는 제멋대로 기도를 휘둘렀다. 감히 하느님께 명령을 내린 다음, 스스로 진정한 기도를 드렸노라고, 아주 깊은 영적 삶을 살았노라고 자만에 빠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느님을 향하여 화를 내게 되었다. 하느님이 내 (그릇된) 설계에 따라 움직여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내가 요구하는 바대로 존재하는 그런 하느님이 아니었다.
지금 나는, 내가 그동안 하느님께서 당신 얼굴을 내게 보여 주시도록 해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이 '기도 시간'을 장악하여 하느님의 친절하신 사랑이 내 가슴을 울릴 기회를 제한했던 것이다. 그결과, 하느님과 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좀더 깊이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 영은 끊임없는 혼돈 속을 해맸다. 내면의 평화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쩌면 하느님께 기회를 드렸다가 그분한테서 듣게 될지도 모를 말씀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한 영성 지도자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비로소 나의 기도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모든 친밀한 관계가 그러하듯이,
하느님과 나도 그냥 서로의 사랑스러운 현존 가운데 머물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을 상대로 큰소리치던 몇 해의 세월은 결국 내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분의 선물을 거부해 왔는지를 반증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내 삶 속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찾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영의 손길이 내 가슴에 와 닿기를 기다렸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