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 들
나는 새벽이면 30분 정도 걸어서 6시 미사를 드리려간다.
성당에 가는 도중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은 우리 아파트 수위 아저씨다. 그분들은 사시사철 주민들을 위해 밤을 지새워도 피로한 기색도 없이 만날 때마다 목례로 입가엔 미소로 우리를 반긴다. 요구르트 아줌마들은 두 번째로 만나는 사람들이다. 대리점에서 요구르트와 우유를 받아 숫자를 확인하며 밀차에 실린다.
여인네들은 고된 하루의 시작도 잊은 채 동료들과 웃으며 정담이 오간다. 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00형님의 자부인 경아 엄마가 생각난다. “그녀는 40대 주부가 되어 남편의 사업실패로 요구르트 아줌마가 되었다고” 그의 시어머니가 얼마 전 나에게 하소연하던 기억이 난다. 경아 엄마도 이 시간 저 여인네들처럼 씩씩하게 열심히 잘 살겠지. 하며 나는 그녀를 위해 묵주를 돌리며 복을 빌었다.
다음은 미화원 아저씨들을 만난다. 남들이 싫어하는 잡쓰레기들을 수거하는 겸손을 나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성경책을 옆에 끼고 교회에 다녀오는 개신교 사람들 같다. 그들은 첫새벽을 하느님께 드리는 구도자 일 게다.
먹자골목을 지나다보면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가계를 만나게 된다. 가로질러있는 간판에는 정육과 그리고 암소구이라고 쓰여 져 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는 순간 왜? 인지, 그 글귀가 멋스러워 보여 주인의 인품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그 곳을 지날 때면 목을 빼고 안을 들여다본다. 아직은 한 명의 손님도 없는데, 아낙이 주방에서 조리를 하면 바깥 양반인 듯 한 남정네는 접시에 담은 반찬을 탁자 위에다 나르며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쁘다. 이른 아침 두 사람이 서로 협조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이렇게 하루의 시작이 다른 이의 삶을 통해 내가 받은 영향은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점심때가 되어 그 식당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그곳에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 내 생각 따라 발길을 옮겼다.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장소도 협소하고 주변이 너저분하다. 처음에는 약간 실망스러운 듯 했지만 조용히 사방을 둘러보며 느낌으로 주인 인 듯한 인상 좋은 두 남녀에게 눈길을 맞추며 “여기 차림 판주세요. 하는데 어떻게나 친절한지 처음과는 달리 금 새 정이 간다. 나는 그제 서야 마음이 편안해지며 다른 사람에게 “주인이 누구세요” 하고 물으니 내가 짐작했든 두 사람을 가러킨다.
차림 판은 메뉴가 다양하다. 나는 우거지 탕을 시켜놓고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새벽에 성당 가느라 이곳을 지나는데 골목에 음식점은 많아도 이 집만 불이 켜져 있었고 정육 그리고 암소 구이라는 간판이 정겹게 느껴졌어 늘 관심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들어와 보니 역시 조어네요” 했다. 그들도 기분이 좋은지, “종종 오세요” 한다. 밥상이 나오는 것을 보니 우거지 탕 한 그릇에 나오는 반찬이 많다. 갈치구이, 쇠고기복음, 게장, 콩나물, 냉이무침, 과일 사라다 등이다. 나는 주인댁 을 보며 “이렇게 반찬을 잘 주고도 뭐! 남는 것 있나요” 하니 웃으면서 “가락시장 손님상대로 배달 장사하니 손님이 고정적이어서 갠 찬다고” 한다. 나는 덕분에 점심식사도 잘 하고 평소에 좋았던 느낌처럼 가계주인을 대하고 보니 기분도 좋고 사람 좋아하는 내가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어 또한 좋았다. “사람에게는 각자 개성이 있어 누구든 알게 되면 한 가지씩은 배울 점이 있다” 하시든 친정아버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
위의 모든 사람들은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다 새벽사람들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 한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할아버지는 “새벽에 대문을 여는 집은 복이 들어 온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은 후 잠에서 깨면 대문이 열렸는지. 확인하러 나가서 대문이 열려서면 “우리 집에 복이 들어왔다”.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수선 피우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 우리 할머니는 웃어 시면서 “우리 막내 손녀딸 복 많이 받아라”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나는 복의 개념이 무엇인가? 하고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1.아주 좋은 운수 2.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상태라고 써 있었다. 과연 운수나 축복이 저 절러 굴러오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노력으로 오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떤 이는 죽도록 노력을 해도 힘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절로 굴러오는 복도 더러 있다. 그러나 나는 후자를 택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매일 미사를 가는 것도 복 쌓으러 가는 것은 아닌지...
나는 어릴 적부터 활발한 편이나 남달리 예민한 구석이 있어 우리 집에서는 나의 별명을 “별난” 이라고 불렀다. 이 별난 이는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남이 가진 좋은 것은 엄마를 졸라서라도 다 가져야 되고 하고 싶은 것은 해야 되는 아이가 결혼해서 어른행세를 하고 살려니 오죽했을까? 자아가 강해서 남편의 박봉도 잘 견디어내는 나, 이제 생각해보니 다 지난 일이라서 인지 지금은 웃을 뿐이다. 나는 나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매일매일 하루의 지난 일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은 시정하려 노력하고 자신에게 좋은 것은 칭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내 삶은 보람되고 행복하며 감사하다.
어떤 사람은 나보고 하는 말이 “힘들게 매일 미사를 왜? 가는 야고” 하지만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뭐라고 표현 할 수 없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 주사를 맞거나 약국에 가서 약을 사먹는 것 과 마찬가지로 . 내 삶 안에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 감당 할 수 없을 때 나는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다”고 한다. 아마 이것은 내 믿음의 행위이며 또한 하느님의 은혜라고 생각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기도를 하고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