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8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2014. 3. 12. 오후 3: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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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8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가 5,27-32)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to repentance but sinners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안식일의 존귀함과 참뜻을 일깨워 준다. 주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쁨'과 '존귀한 날'로 부르시며,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관심사에만 빠지는 것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신다. 안식일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풍족하게 될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함께 식사하신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병든 이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당신은 죄인을 회개시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우리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꼭 지켜야 하는 여러 계명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하였듯 그리스도인은 그 계명이 생명의 길로 이끈다는 점을 믿고 존중합니다. 특히 이 사순 시기에 교회는 종교적 의무를 각별히 상기시키며 단식과 금육 같은 절제의 실천으로 계명에 충실한 삶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계명의 준수 여부를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으로 삼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비판적으로 대하시고, 오늘 복음에서처럼 파격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십니다. 또한 단식과 관련해서는 단식할 때에 침통한 표정을 짓거나 얼굴을 찌푸리지 말라고 하십니다(마태 6,16 참조). 이는 남들에게 경건함을 인정받으려는 허영심을 경계하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계명의 본정신인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쁨에 대한 올바른 감각을 지녀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 준수의 상징과도 같은 안식일을 주님께서 다름 아닌 '기쁨'이라 부르신다고 전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지요. 애써 무게 잡는 경직된 얼굴, 권위주의적이고 다른 사람을 하찮게 여기며 비난하는 모습을, 우리는 단식을 철저히 실천하며 규정 준수에 완벽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서 발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고 싶으신 모습은 격의 없이 어울리는 식탁에서 피어나는 소박하고 진실한 기쁨의 얼굴일 것입니다. 우리가 늘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의 지배에서 벗어나 예수님과 이웃에게서 참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얻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마음 치료소 주의사항     

-임의준 신부-

 

안녕하십니까. 마음 치료소 소장 예수입니다. 저희 마음 치료소는 세상 일에
상처받고 아파하시는 분들을 위한 전문 치료소입니다. 누구든지 들어오실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아침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언제든
지 방문하셔서 소장인 저를 만나시면 됩니다. 어떠한 일이건 상관없습니다.
집안 일, 자녀에 관한 일, 세상에서 생긴 일, 마음 상한 일, 속상한 일, 그리고
자기 자신에 관한 일… 모든 일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해결책을 찾으며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일에 상처받으신 당신의 마음을 처음 하느님께서 만드신
그 모습 그대로 되돌려 드리고자 노력합니다. 저희 마음 치료소에 오시는
분들이 준비하셔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믿음과 희망입니다. 저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아파하고 고민하면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굳은 믿음과
희망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준비가 쉽지는 않으시겠지만, 자주 오셔서
저와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레 준비가
된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자주 들려주세요.
추신: 치료소에 방문하실 때 ‘난 아프지 않아.’ 하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병자가 의사에게 다가가겠다는데 …

-현대일 신부-


이곳의 많은 신자들은 혼인문제로 인해 성사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풍습상 신부가 아이를 낳고, 신랑이 결혼지참금을 신부 부족한테 다 갚은 후에야 결혼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못 낳거나, 어마어마한 결혼지참금을 내지 못하면 결혼이 성사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혼인 성사를 하면 이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혼인 성사를 꺼리기도 합니다. 아내가 둘인 경우도 있고, 함께 산 지 오래되었지만 혼인 성사를 하지 않은 부부가 많습니다.

가끔씩 신자들이 면담 와서 묻습니다. 성사를 보고 싶고 영성체를 하고 싶다고 …. 그때마다 혼인 성사의 여부를 묻고 상황 설명을 차근히 하고는 돌려보내는데 마음이 아픕니다. 마치 병자가 참다운 의사인 주님에게 가고 싶어 왔는데, 병원 입구의 안내 아저씨가 환자 자격을 따지며 돌려보내는 느낌입니다.

병원 안내 아저씨의 그 까다로운 자격 심사는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됩니다. ‘하느님
을 믿는다는 사람이 왜 이따위야 ? 다른 때는 돈을 팍팍 쓰더니, 헌금할 때는 왜 이리 인색해 ? 어라, 평소에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성당에 와서 그리고 신부님 앞에서는 싹 바뀌네 ? 너 같은 사람이 어찌 감히 하느님을 믿어 ? 네가 성당 다니면 차라리 내가 성당을 다니지 말아야지.’

병자의 병을 판단하고 치유하지는 못하지만 환자가 의사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손잡고 함께 다가가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야 할 텐데요.

 

목욕탕 집 때밀이

-김찬선신부-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프란치스코가 폐허가 된 산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로부터 들은 말씀은
“가서,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치라!”는 교회 건설의 사명입니다.

그는 이 말이 처음에는 건물로서의 교회를 고치라는 줄 알고
성당 건물을 셋이나 수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집이란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모임임을 깨닫고
건물의 수리가 아니라 흩어진 백성을 모으러 찾아갑니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이 있는데
부모 간에 사랑이 없고 늘 싸워 집안이 늘 냉랭하고 살벌한 집입니다.
이 집은 들어와도 반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다 집에 들어오면 야단만 칩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다 밖으로 나도는 집입니다.

프란치스코 당시의 교회도 콩가루 집안과 같았습니다.
교회 안에 탐욕만 있고 사랑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도 반기지 않고,
이런 교회를 비판하면 파문을 하여 내쫓고,
조금만 잘못을 해도 단죄를 하여 모두 죄인으로 만듭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랬습니다.
사실 죄인 아닌 사람들로만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교회는 근본적으로 죄인들의 교회이며,
더 큰 죄인들이 교회 지도자들인데도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들은 죄인이 아니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만 죄인이라고 하며 교회에서 밀어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지도자들을 독사의 족속들,
즉 남을 해치는 독사의 족속들이라고 심하게 꾸짖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들에 의해 쫓겨나고
치명상을 입은 사람들을 찾아가 치유해주십니다.

그리하여 지도자들에 의해 쫓겨나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이제 예수님 주위로 모여듭니다.
예수님의 집은 그래서 죄인들이 득실거리는 집이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어찌 죄인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느냐고
이런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이들과 다릅니다.
죄인들을 멀리할 거면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을 거라고,
당신은 목욕탕 집 때밀이로 오셨다고 생각하십니다.
더러우니 오지 말라는 목욕탕이 어디 있습니까?
더럽다고 싫어하는 때밀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너희들보다
아프니 고쳐달라고 하고
더러우니 씻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의 사랑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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