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선행, 작은 죄
- <연중 제7주간 목요일>(2014. 2. 27. 목) (마르 9,41-5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41)."
'마실 물 한 잔'은 '사소한 도움'을 뜻합니다.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최후의 심판 때에 틀림없이 하느님의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상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원래 비신자의 선행에 대한 말씀이지만
신앙인의 선행에 대한 말씀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큰 선행만 실천하려고 하지 말고,
아주 작은 선행도 잘 실천하여라."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큰 일'과 '작은 일'을 구분하지 말고 무조건 선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이라는 말씀은
'아무리 큰 죄가 있더라도'가 생략된 말씀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니
심판 때에 인간의 큰 죄보다 작은 선행을 먼저 보실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큰 죄'를 '작은 선행'으로 상쇄시켜 달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그 죄에 대해서는 당연히 회개하고 보속해야 합니다.
만일에 회개하지는 않고 자신의 선행만 내세우면서
그 선행으로 죄를 상쇄시켜 달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작은 선행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성실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당연히 큰 죄는 물론이고 작은 죄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 9,42)."
이 말씀은 원래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인데,
앞의 선행에 관한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죄가 되는 일이라면 하지 마라."
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작은 이들'을 다른 사람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포함시켜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마르 9,43)."
이 말씀은 실제로 몸의 일부를 잘라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처음부터 '죄의 싹'을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아직은 죄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나중에는 큰 죄를 짓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욕심, 욕망, 이기심, 충동 같은 것들을 처음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의 일부를 잘라낸다고 해서 '죄의 싹'이 제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선행'에 관한 말씀과 '죄의 싹'에 관한 말씀이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두 말씀은 사실상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이 선행이라면 무조건 해야 하고,
그 일이 죄가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고 무시해도 되는 선행은 없습니다.
또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해도 죄는 죄일 뿐입니다.
거액의 돈을 횡령한 것만 도둑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 하나를 훔친 일도 도둑질입니다.
인간 세상의 법정은 돈의 액수를 보고 재판하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속마음을 기준으로 삼아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좋은 예가 운전할 때의 습관입니다.
감시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규정 속도를 잘 지키다가
카메라가 없으면 속도위반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또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고, 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신호등을 지킬까 말까 갈등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일까지 다 죄라고 생각하면 숨 막혀서 어떻게 사나?"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처음부터 '죄의 싹'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아주 작은 잘못에 대해서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기 시작하면
결국 언젠가는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고 아주 큰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한 번 마비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하느님께서는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마태 6,4.6).
죄라는 것은 하느님이 그런 분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을 때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안 계신 것 같지만,
사실은 하느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고, 다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하느님께서 찾으실 때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창세 3,8).
숲 속에 숨으면 하느님께서 못 보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을 피해서 숨을 곳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을 '감시자' 라고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과속 감시 카메라가 사실은 사고를 예방하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인 것처럼
하느님께서 숨은 일도 다 보고 계시는 것은
인간들을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