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하늘의 징표>
2014, 2, 17 연중 제6주간 월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상지종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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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8,11-13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다)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세상이라는 하늘의 표징>
주님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새로운 한 주간의 첫날 아침입니다.
직장인들에게는 달콤한 휴식 후의 출근길이 더욱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월요일이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한주간의 선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활기차게
오늘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함께 하시는 믿음의 벗님들께서는 오늘의 운세나 징크스 같은 것들을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재미 삼아 생각해 볼 수는 있어도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자신의 바깥세상과 소통하기에 감각적인 것에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됩니다.
이러한 감각적인 것들을 통칭해서 외적인 표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으로서 표징을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표징을 둘러싼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논쟁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표징, 곧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 말이지요.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믿음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보다 더 확실한 하느님의 표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간절히 원한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불신과 불만 가득한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결정적인 표징을
눈앞에 두고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답답한 심정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은 곧 ‘이 땅에 내려온 나를 보고도
하느님의 표징을 찾는다면, 어떠한 표징이 주어져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의 표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표징을 볼 수도, 알 수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바리사이 같은 생각과 요구로부터 자유로운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표징을 찾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표징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의 벗님들께서는 과연 어디에서 무엇에서 하느님의 표징을 발견하십니까? 가장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표징은
하느님의 육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저 멀리 아득한 하늘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가 녹아 있는
이 땅을 찾아오시고, 이 땅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생명과 온기가 넘쳐나는 이 세상 속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 세상과 단절된 채 ‘하늘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 역사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시는 분이시며,
마침내 때가 이르러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몸소 사람이 되시어 인간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흩어진 이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인류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나누는 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과 함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게 되었고
계속해서 모든 사람 가운데서 현존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따라서 구원의 봉사자인 교회는 추상적 차원이나 단지 영적 차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과 역사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 있습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하는 이 교회는 선택된 작은 그룹의 사람들만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작은 경당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집입니다. 우리는 보편교회의 품을 우리의 미지근함을 보호해주는 어떤 둥우리 정도로 축소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표징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 울타리 안에 안주하여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호흡하면서 온 삶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