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2014. 2. 12. 오전 12: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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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마르코 7,1-13)


You disregard God's commandment
but cling to human tradition."

 

말씀의 초대

 솔로몬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펼치고 기도한다. 그는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다며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며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지은 성전이 보잘것없음을 겸허하게 고백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사고 간청한다(제1독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고 따진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그것이 악용되거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정신이 배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이르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근래에 와서는 행복에 대한 갈망이 더욱 강해진 것을 느낍니다. ‘아니, 언제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그러한 행복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지 ‘가만히 멈추어 서서’ 살펴보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최근 들어 유난히 커진 것만은 사실인 듯합니다. 수그러들지 않는 인문학 열풍이라든지 ‘힐링’이라는 말의 유행도 이러한 정서적인 요구의 반영으로 보입니다.
행복에 대한 갈망이 높다는 사실은 당연히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이 너무 딱딱하거나 허전하다는 뜻이겠으니 씁쓸하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더 이상 행복한 척하거나 어려움이 없는 척하는 대신,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할 때임을 간절하게 깨닫는 사람이 많다는 것일 테니 희망의 표지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행복의 비결을 알려 준다는 목소리는 많고 크지만 이에 솔깃했던 시간이 남긴 자취는 허탈하기만 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 갑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것 하나는, 행복의 길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써만 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지혜를 애타게 구하는 사람이 성경에서 지혜로운 이의 모범으로 삼고 있는 솔로몬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는 참으로 겸손하게 기도합니다. 지혜롭기 그지없던 그가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기도하는 이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행복의 길을 찾는 사람이 서야 할 출발점일 것입니다.

 

 

 

어제는 새벽부터 실수투성이였던 하루였습니다. 새벽미사 부탁을 받았는데 깜빡 잊은 것입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새벽 6시 미사에 맞춰서 갔더니만 6시 30분 미사더군요. 또 아침에는 그제 선종하신 신부 아버님께 문상을 갔다가 미사를 봉헌하려고 하는데 제의가 없어 다시 방에까지 뛰어갔다 오는 일이 있었지요. 그리고 어제부터 사제연피정이 시작되었는데, 글쎄 이 피정을 위해 필요한 성무일도, 성가책, 필기도구 등을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어제 저녁 성찰을 하는데 이렇게 하루 종일 실수투성이였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실수를 일부러 하려고 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실수를 한 것이고, 인간적으로 얼마나 부족한 지를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실수를 많이 한다고 저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실수를 많이 한다고 해도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즉, 단순히 몇 가지 실수를 지적해서 가치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서 주신 그 소중한 가치보다는 인간적인 부분만을 바라보면서 쉽게 판단하고 단죄를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제 새벽미사 부탁 받은 것을 깜빡해서 여유 있게 성당에 도착하지 못하고 서둘러 갔다는 것을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미사 시간이 6시가 아니라 6시 30분이었을 때,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 본당신부는 왜 미사 부탁을 하면서 미사 시간을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미사 시간만 제대로 알았으면 이렇게 서두르지 않았을 텐데…….(미사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교통 신호 위반을 하면서 성당에 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모두 인간적인 것이지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늦지 않고 성당에 일찍 도착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어쩌면 주님께서 하시는 판단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이 땅에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주님의 이 사랑을 기억하면서 철저하게 주님의 계명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뜻에 맞게 철저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주님의 계명보다는 사람의 전통인 인간적인 측면만을 더욱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사람의 전통만을 내세워서 예수님을 몰아세우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주님의 계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계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실천하는데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때 이 땅에 오신 주님에게서 가장 큰 사랑과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거울 앞에 있을 때처럼 이맛살의 주름을 펴라. 그것이 명랑해지는 비결이며 늙지 않는 미덕이다(슈아프).

 

 

 

하느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     

-안융 신부-

 

유다인들에게 ‘전통’이란 율법을 확대해석하여 생겨난 관습이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와 사람들의 몸에 배어 버린 것으로서, 이는 넓은 의미에서는
율법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율법은 아닙니다.
‘율법’은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으로서, 유다인들은 이 율법을 잘 준수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는 것이라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관습인 전통이 하느님의 계명
인 율법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들은 지나친 형식주의에 빠져 전통의 관습과
규정의 글자로 자신들을 묶어 버렸고, 전통을 지키면서도 전통의 정신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전통에 관하여 논쟁을
벌이십니다. 그 이유는 바리사이들이 주장하는 조상들의 전통이 본래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온전한 율법서의 정신인 복음적인 삶을 사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고수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변질된 신앙을 강요하면서 자신들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가로막았던 바리사이들. 입술로는 주님을 공경하면서
마음이 멀리 떠나 헛되이 섬기던 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삶 속에 투영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볼 일입니다.
임종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의 양이 아니라 그 일에 쏟아 부은 사랑의 무게로 평가를 받는다.
(마더 데레사)

 

 

 

자유는 열정과 사랑이 있는 곳에

-김찬선신부-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저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른, 제 식의 고정관념과 습관이 있습니다.
식사 전이나 나갔다 와서 손 씻는 것은 잘 하지 않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미사 전에는 돈과 같이 더러운 것 만지지 않고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습관이 있습니다.

성체를 만지는 손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인데,
씻지 않고 미사를 드리게 되면 기분이 되게 찝찝하고,
다른 사람의 경우도 미사 전에 더러운 것 만지다가 씻지 않고
그 손으로 성체를 받는 것을 보게 되면 그를 나무라는 마음도 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손이 더러운 것이 성체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손이 더럽다고 성체가 더렵혀지겠습니까?
손이 더럽다고 성체가 성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손을 씻는 것이 하느님을 위해서이겠습니까?
더러운 손으로 성체를 영하면 하느님께서 기분 나빠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제 기분이 나쁘고, 제가 찜찜하고, 제가 불편한 것입니다.

고정관념과 습관이라는 것이 다 제가 만든, 일종의 만족의 틀인데
그대로 함으로써 자신을 만족케 하고,
그 안에 안주하면서 안심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틀이 깨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틀을 스스로 깨는 것이 아니라 깨지면 말입니다.

현재가 불편하고
미래가 불안할 겁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매번 가치판단을 해야 하며
매번 시비, 곧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합니다.
그것이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건 점심때마다 먹을 것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의 그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먹을까, 저것을 먹을까.
이것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고.
먹고 싶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먹긴 먹어야 하는데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없을 때
선택의 자유는 은총도 선물도 아니고 부담스럽고 귀찮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이 편하고,
이것 먹자고 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편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사랑과 열정이 없을 때,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시들할 때,
선택의 자유는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숫제 관습 또는 습관에 안주하고
고정관념이 차츰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지 않아도 되니
여간 편하지 않고, 적어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편한 늙은이에게,
심지어 성당에 가도 매일 앉는 자리에 앉아야 마음 편한 사람에게
자유는 어림도 없고 불편한 것일 뿐입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젊은이라야 자유를 누리고,
관습이 아니라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이라야 자유를 누립니다.
열정과 사랑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고,
자유가 있는 곳에서는 고정관념과 관습이 힘을 잃습니다.

 

 

 

 

 

  사람의 전통

- 이진원 신부-

 

혼인을 준비하는 부모나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제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간혹 혼인의 의미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겪는 어려움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에는 필요하지 않은 많은 절차를 전통이라는 이름과 남들도 다 한다는 이유 때문에 힘겹게 계속하고 있다. 결국 양가와 혼인 당사자 간에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심지어 혼인생활을 파괴하는데 한몫하기도 한다.

혼인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하고 부부가 더 잘살게 하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이제는 의미 없는 관습이 되어버린 것을 계속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작 혼인에서 중요한 마음의 준비, 양가가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부부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 등은 소홀히 하는 모습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전통과 관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잃어버린 채 맹목적으로 지킨다면 그것은 허례허식으로 전락한다. 기득권자나 지도층에는 자신을 과시하는 도구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한테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슬이 된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살기 때문에 세상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혹시 그것 때문에 하느님의 뜻까지 접어두고 사는 것은 아닌지 늘 조심하고 성찰해야 한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해도 되는 잘못이 하느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과 나의 죗값을 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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