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0일 연중 제3주간목요일

2014. 1. 31. 오후 7: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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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30일 연중 제3주간목요일


 등불은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놓는다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마르 4,21-25)

 

 "Is a lamp brought in to be placed under a bushel basket
or under a bed, and not to be placed on a lampstand?

"Take care what you hear.

 

  

 

 

 

말씀의 초대

 나탄에게서 주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은 다윗은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다윗은 보잘것없는 그와 그의 집안에 주님께서 해 주신 일과 축복에 대해 참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드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등불의 비유’를 들어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등불을 등경 위에 올려놓듯 숨겨진 것과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며, 주님께서는 영적 보화에 열성을 기울이는 이들에게 더욱더 채워 주실 것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에 나오는 ‘다윗의 감사 기도’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깊이 감명받고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은 다윗의 참된 겸손입니다. 겸손과 겸허가 기도의 밑바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우리는 자주 그 참뜻을 오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가진 것이 없는 자’에서 우리는 잘못 이해된 겸손을 실감합니다. 세상에 드러나는 등불과 대비되는 이 모습은 자신이 받은 몫을 부끄러워하고 그저 숨어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참된 겸손은 두려움과 자기 폐쇄에서 비롯된 무조건적인 비하가 아닙니다. 그러한 태도는 실제를 외면하고자 하는 일종의 심리적인 자기방어에 불과합니다. 여기에는 기쁨도 기다림도, 새로운 시작도 없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나타나는 참된 겸손은 오히려 움츠러들지 않고 실제의 모습이나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는 담대함과 자신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습니다. 겸손은 보잘것없고 비천한 자기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하실 큰일을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2년 전에 선종한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의 전 교구장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은 대담집 『예루살렘 밤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잘못 그은 선이라도 교정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긋지도 않은 선을 고쳐 그으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떨쳐 내고,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늘 새로이 시작하려는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참된 겸손이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자세일 것입니다.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 강인봉-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 뭔가 크게 한 획을 긋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대통령?·?장군?·?과학자 등 위인전에 등장할 만한 직업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장래 희망직업으로 연예인이 가장 많다고 하더군요.) 평범한 삶보다는 뭔가 특별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누구한테나 그런 능력이 주어지지도 않고 또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장래 희망은 점점 평범해지고 소박해지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변하지요.

신앙인으로서의 우리 삶은 어떨까요? 누구나 빛과 같은 사람,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이 꿈꾸던 신앙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합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순교자나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성직자나 수도자가 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께 다가가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까요.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면 그 빛을 더욱 밝게 반사시키는 거울 같은 삶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최소한 그 빛을 가리는 됫박이나 침상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있어서 좋은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없는 게 나은 사람.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이 어느 유명한 병원에서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명의로 소문난 이 병원의 의사 선생님께서는 폐결핵에 잘 듣는 약과 그 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처방해 주었지요. 워낙 유명하신 선생님이라 이제까지 그 어떤 사람도 이 분의 처방전과 약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은 달랐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과 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폐결핵이 낫지 않는 것은 물론, 어리석은 바보 같은 사람이라면서 사람들의 놀림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말을 믿고 따라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들 역시 이렇게 어리석은 환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과 힘을 선택하면 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또한 마지막으로는 영원한 생명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방법과 힘이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는 많은 성인 성녀들의 선택을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인 성녀들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 세상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방법과 힘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만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만 이야기합니다. 왜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나에게 주시냐고 주님을 원망하고만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주님의 사랑 가득한 선물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는 당연한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역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선택을 당연히 해야 함을 분명하게 제시해주십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남한테 주는 것이 아깝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과 아쉬움 속에서는 사랑이 열매 맺기 힘듭니다. 대신 선행과 나눔이라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행하는 지극한 정상인인지, 아니면 이 세상 것만을 소중하게 여김으로 인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지를 묵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일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이다. 다음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기다리는지, 돌아보지 않고서는 짐작할 수 없다(무라카미 하루키).

  

 

하느님 나라     

-조명연-

 

우리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기를 살리기도, 또 반대로 죽이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사랑의 말 등을 들으면 어떨까요? 모든 것이 기쁘고 세상 살맛을 느끼게 되면서 하루를 신나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부정적인 말, 미움의 말,
악담 등을 듣는다면, 머리에서 그 말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서 하루 종일
우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기쁨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기를 뺏는 나라가 아니라 기를 살리는 나라입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 하면 보통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죽어서 갈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체험하는 나라입니다. 달리 이야기한다면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죽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내 이웃을 위해서
기를 살리는 말과 행동을 한다면 바로 그 순간 하느님 나라가 내 곁에 자리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라는 작은 씨앗이 자라 큰 나무가 되듯, 우리의
작은 칭찬이 다른 곳에서 더 큰 수확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기쁨을 주는
말 한마디, 그것이 하느님 나라를 키워가는 좋은 거름이 됩니다

 

 

 

 

가진 것은 작아도 마음은 크게!

-김찬선신부-

 

“너희는 새겨들어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지 사람들을 수상쩍게 봅니다.
그렇기에 정말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자본주의의 논리로 이해하면 큰 일입니다.
자본주의의 신조는 “Money creates money”,
“돈 놓고 돈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이런 신조로 왜곡해서 알아들으면
“하느님은 있는 자의 편이다.”
“하느님은 돈 있는 사람에게 돈을 더 주신다.”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렇게 이해한다면
오늘 주님의 말씀을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먼저 오늘 주님의 말씀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의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 사나운 신조입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빼앗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신조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말씀은 주기 위해서 가지는 것입니다.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게 될 것이다.”고
바로 앞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있는 사람만이 줄 수 있습니다.
없는 사람이 어떻게 주겠습니까?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떻게 줄 수 있습니까?
그러니 주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하고 불행합니다.
줄 것이 없는 사람이거나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 말씀은
더 많이 소유하려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더 많이 주려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고
더 많이 주도록 하느님께서 더 많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말씀을 우리는 재물의 차원만이 아니라
마음의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으로도 알아들어야 합니다.
줄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더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가진 사람”이란
재물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줄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없다고 생각하며
줄 마음조차 없는 사람이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줄 마음만 있으면 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불과 장작은 있지만 정작 제물인 양이 없다고 하는 이사악에게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우리는 줄 마음과 봉헌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하느님께서 줄 것과 봉헌할 것을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빛과
작은 능력과
작은 소유와
작은 성의를 우습게 여기고
함지속이나 침상 밑에 처박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가지고
거기에 더 보태어 크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가진 것은 작어도 마음은 크게!”
이것을 오늘의 경구,
아니 일생의 경구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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