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2014. 2. 4. 오후 8:50:57

글자

201421연중 제3주간 토요일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마르코 4,35-41)

 

 he rebuked the wind and ordered the sea,

"Quiet now! Be still!" The wind dropped

and there was a great calm.

Then Jesus said to them,

"Why are you so frightened?

Do you still have no faith?"

 

말씀의 초대

 나탄 예언자는,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차지한 다윗 임금의 죄를 폭로한다. 나탄은 주님께서 다윗 집안에 내릴 재앙을 전하고, 다윗은 자신이 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실 때 거센 풍랑으로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깨우자 그분께서는 풍랑을 가라앉히신 뒤 믿음이 약한 제자들을 꾸짖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다윗 임금은 우리에게 인간이 겪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욕망과 오만이 낳은 죄가 위대하고 고결했던 인물을 죄인의 자리라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증언하는 다윗의 삶은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을 비롯한 인류의 위대한 문학 작품들이 거듭 증언하고 있는 ‘인간 조건’의 생생한 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조건이나 제약성을 말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간이 필멸의 존재라는 점, 인간의 삶이 우연성에 자주 좌우된다는 점, 인간이 세상사와의 관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등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은 바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평생 쌓아 온 덕망, 겨우 누리게 된 행복을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일시에 잃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전율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을 망치는 원수였다는 것을 깨닫는 진실의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성경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준엄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인간의 죄가 불러일으킨 비참함의 심연에서 인간의 가장 큰 위대함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윗을 통해 알게 됩니다. 다윗은 끝없이 낮아져서 찢어지는 심정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다윗의 무거운 죄가 그를 절망과 죽음으로 이끌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도, 또 영웅적 오만으로 혼자서 죄의 결과를 짊어지려고도 하지 않는 가운데 오직 자신이 보잘것없는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여기에서 인간의 가장 큰 위대함이 시작됩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 저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었습니다. 책에 취미도 없었고, 이상하게도 책만 읽으면 졸음이 왔거든요. 그리고 학교 공부는 굳이 일반 책을 읽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내용의 책을 읽기 보다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적절하게 보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더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책을 멀리하게 되었고, 점점 제 머릿속에는 ‘나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책을 읽을 수 없어.’라는 생각이 늘 존재했었습니다.

이러했던 제가 지금은 책 없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상관없이 시간이 생기면 늘 책을 펼쳐서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문장력도 늘었고, 지금 현재 7권의 책까지 출판하는 영광까지 얻게 된 것 같습니다.

만약 책을 멀리했었던 20년 동안의 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계속해서 ‘나는 안 돼.’라는 생각으로만 살았다면, 아마 지금의 제 모습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한계 짓는 모습에서 과감하게 탈출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집에서 벗어나 미칠 정도로 노력한다면 내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쓸데없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잘못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러한 말을 남겼지요.

“주어진 운명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 이전에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다스리는 데 주력하라.”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다스리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올바른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돌풍이 일어 물이 배 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아주 위험한 상황인 것이지요. 어부 출신인 제자들은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피곤하셨는지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도 잠에 빠져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말하지요.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이에 곧바로 예수님은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라고 말씀하시어, 바람을 멈추시고 호수를 고요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이야기하시지요.

예수님이 없어도 어부 출신이 많은 제자들은 이 상황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보여준 예수님의 놀라운 행적을 보았을 때, 굳이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노력하고 부족한 부분은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주님께 대한 불평불만으로 지금의 상황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나의 믿음은 어떤가요?
성공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꼭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성장해 간다는 것은 더욱 멋진 일이다.

 

쫄지 마!     

-이승주 신부-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칠 때의 단계적 상황.
무급 배 - 예수님이 안 계신 배. 딱히 대책이 없다. 두려움에 휩싸인다.
심한 경우 침몰할 수도 있다.
초급 배 - 예수님이 계시기는 한데 주무시고 계시는 배.
두려울 뿐 아니라 예수님이 주무시는 것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어서 깨워야 한다.
중급 배 - 예수님이 깨어 계시고 바람을 멈춰 주시는 배.
당황스럽긴 하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수님께 맡기면 된다.
고급 배 - 예수님이 안 계신 배.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두렵지 않으므로.
예수님이 안 계시지만 늘 계신다.
배는 우리 자신이고, 굳이 비유를 하자면 비신자, 냉담 신자, 열심한 신자,
참다운 제자라고 해 보면 어떨까요. 세상의 풍랑은 신자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몰아칩니다.
어느 방송인은 ‘쫄지 마!’라는 말로 시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지요.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밖에서 몰아치는 돌풍이 아니라
안에서 엄습하는 두려움입니다. 예수님은 돌풍을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두려움을 멈추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는 배입니다. 내 안에는 누가 있습니까?

 

걱정

-이명옥 수녀-


제자들은 거센 돌풍이 불자 믿음이 휘청 흔들리며 온통 걱정으로 휩싸입니다. 바로 그날 낮에 호숫가에서 또 제자들만 따로 불러 가르쳐 주신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이렇게 제자들한테만 주어진 특권을 상기시켜 주셨는데도 말입니다.

죽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시고,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하느님 나라를 쉽게 가르쳐 주시던 예수님 때문에 마음이 희망으로 불타올랐던 순간들, 그분의 매력에 매료되었던 수많은 체험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불어닥친 거센 돌풍이 그 모든 체험을 삼켜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거센 돌풍이 우리를 삼킬 듯이 한꺼번에 와르르 덮쳐오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병고에 시달리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듯 가야 할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 곁에 아무도 없어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듯 막막한 외로움에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요.

럴 때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소연합니다. 이런 우리의 비참함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겁을 내는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시며 당신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심을 다시 기억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6)

우리가 걱정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한없이 더 나은 방법으로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립시다.

 

내 마음의 풍랑을

-김찬선신부-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오늘 제자들은 군중을 뒤로 하고 주님과 함께 호수를 건넙니다.
그런데 건너는 중 큰 풍랑을 만나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천하태평, 고물을 베고 주무십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 허둥지둥하다가 주님을 깨우며 살려달랍니다.
고요해지고 잠잠해지라는 주님의 명령에 풍랑은 잔잔해지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 없음을 꾸짖으십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우선 우리 인생은 호수 이쪽에서 호수 저쪽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가는 인생인데 아니 가는 인생인 것처럼 살아서 아니 되고,
풍랑이 두려워 아니 가려 해서도 아니 됩니다.
아니 가려 해도 아니 가게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길입니다.

또 우리 인생길에는 반드시 풍랑이 있습니다.
이별이라는 풍랑,
중병이라는 풍랑,
사업실패라는 풍랑,
관계악화라는 풍랑 등 많은 풍랑이 있기 마련인데
풍랑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Non sense이고
조그만 풍랑도 감당이 불감당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 인생길은 혼자 가는 인생길이 아닙니다.
같이 가는 동료가 있고 무엇보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 이 인생길을 혼자 간다고 생각해서도 아니 되고
이 인생길을 혼자 가려고 해서도 아니 됩니다.
혼자서 풍랑을 맞서려 해서도 아니 되고,
혼자만 풍랑의 위험에 처한 것도 아닙니다.

내 배에는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배가 침몰한다면 주님도 함께 침몰하시는 겁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내 배에 아니 계신 듯이,
배가 침몰하는데도 주님께서 나만 구해주지 않으실 거라는 듯이
두려워 떨고 허둥대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은 두려워함이 아니라 믿음 없음입니다.
풍랑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찌 그리 두려워 떠느냐고 하신 다음
어찌 그리 믿음이 없느냐고 하신 겁니다.

주님은 풍랑에게 조용히 하고 잠잠해지라고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풍랑은 명령에 순명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조용해지고 잠잠해져야 할 것은
바다의 풍랑이 아니라 마음이 풍랑일 것 같습니다.
내 삶의 각가지 거친 도전이 있어도
‘음, 이번엔 너냐?’하며 담담히 받아들이고
설혹 새로운 도전에 마음이 흔들려도
한 순간 풍랑에 빼앗겼던 눈길을 다시 주님께 돌림으로써
평정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 마음의 풍랑에게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고 명령하십니다.
명령에 우리도 순명합시다.

 

노력은 우리의 몫

- 강인봉-

 

제 나름대로 괴롭고 고민되는 일이 있어 평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던 신부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신부님, 요즘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참 많이 힘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여쭈었더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제 마음이 알아서 할 일이지."라며 참으로 맥 빠지는 답을 주시더군요. 그러더니 곧 세상일이란 늘 우리에게 힘든 숙제를 던져주기 마련이라며 제아무리 신앙심이 깊다 해도 다가오는 어려움을 막을 수 없으니 웬만한 흙탕물이 들어와도 영향 받지 않도록 마음의 호수를 넓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르고 옳게 살아가려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세상과 부딪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적당히 타협하며 살기는 쉬워도 자신의 의지대로 올곧게 살기는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더욱 넓어진다면, 믿음이 더욱 굳건해진다면 그깟 시련이나 고통쯤은 겁내지 않고 웃으며 넘길 수 있을 겁니다. 폭풍을 막을 수는 없어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일어설 수 있을 겁니다.

조그마한 시냇물은 한나절만 비가 쏟아져도 물이 불어 넘쳐흐르고, 조금만 가뭄이 지속되면 말라붙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넓은 바다는 심한 비바람이나 가뭄에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이나 굳은 믿음을 갖기는 쉽지 않지만 그런 마음과 믿음을 갖기 위한 노력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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