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2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예수께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는 내 말을 새겨들어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마르7,14-23)
Jesus summoned the crowd again and said to them,
“Hear me, all of you, and understand.
Nothing that enters one from outside can defile that person;
but the things that come out from within are what defile.”
말씀의 초대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임금을 찾아온다. 솔로몬의 높은 명성을 듣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자문으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모든 업적을 확인하고 감탄한다. 그녀는 하느님께서 솔로몬을 사랑하시어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히시어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로 사람 마음속의 나쁜 생각이야말로 그 사람을 더럽히고 망치는 것임을 깨우쳐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스바의 여왕과 솔로몬의 만남은 사람들의 즐거운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러기에 이 짤막한 성경 구절을 둘러싸고 여러 전승과 전설이 자라났을 것이고, 많은 문인과 화가, 음악가가 작품의 소재로 삼기도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 만남에 함께 자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명성만을 듣고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났을 때 진정한 배움을 얻거나, 적어도 실망하지 않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왕이 단순히 허영과 호기심에서 솔로몬을 만나려 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은, 그녀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왕이 진심으로 배우고자 했던 솔로몬의 지혜 역시 그저 유려한 말이나 화려한 성공으로 포장된 얄팍한 처세술이 아니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진솔한 대화와 꾸밈없는 경탄을 낳습니다.
여왕은 솔로몬의 진면목을 알아볼 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칭송을 새겨 보면 우리는 솔로몬이 지닌 지혜의 참모습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하느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이스라엘에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 구절을 곰곰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를 구한다고 할 때, 내 한 몸 건강한 가운데 세상의 풍파를 피하고 시대의 조류를 잘 타서 가족의 안녕과 직업적 성공, 마음의 평안 등을 얻는 기술을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의 본모습은 바로 주님의 뜻인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지혜를 귀하게 여긴다고 말하기에 앞서, 그 지혜란 바로 정의와 공정의 실천을 뜻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결말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인터넷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드라마의 원작인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했지요. 그리고 어제 비록 피정 중이지만 짬짬이 시간을 내서 다 읽었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굳이 드라마를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책을 다 읽음으로 인해 결과를 아는 이상, 가슴 졸이면서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마가 끝났다며 화를 낼 필요도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드라마가 어떤 현장감을 주기는 하지만, 책에서 주는 그 깊이와 감동에는 쫓아오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책을 읽게 되어서 더 잘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성경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성격역시 바로 이러한 이유로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당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지만, 또 우리의 삶 전체에서 주님을 느낄 수는 있지만, 성경을 통해 오히려 더 빨리 주님을 느끼고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빨리 주님의 뜻에 맞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님의 배려를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당신의 그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쉽게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도 어렵고 힘들게 전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이지요.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거룩한데, 당신의 창조물인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 역시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성경도 전해주시고, 그밖에 여러 당신의 창조물을 통해 당신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계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모두 하느님의 창조물이라 사람을 더럽히지 않지만, 하느님의 창조물인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 즉 나쁜 생각,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등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시지요.
거룩한 창조물답게 우리의 마음 역시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역시 거룩해질 때, 세상 전체가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을 위해 갖은 방법을 쓰고 계시는데,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과연 하고 있습니까? 내 자신의 마음부터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공동체, 주님의 선물
-안융 신부-
수도공동체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주님께로 향한 사랑과
열정 하나만으로 함께 모여 살아 계신 말씀을 중심으로 친교를 나누고,
창립자를 통하여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은사(카리스마)를 삶 안에서
구체화시키며, 순명과 청빈과 정결의 복음 3덕을 지켜 나갑니다. 그러기에
수도공동체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라는 복음정신이 온전히 녹아 있는 말씀의 학교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도 인간적인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관계의
어려움에서 오는 긴장이 있고, 서로의 부족함에 대해서 인내하지 못하는
성급함도 있으며, 자신과 타인과의 다름을 다양성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미성숙함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의 바이러스가 약할 때는 주변의
도움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그것의 힘이 너무 강하면 자칫 공동체를
와해시키기도 하고 수도생활의 영적 이상을 흐려지게도 합니다. 공동체가
하느님의 선물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때 그 선물의 가치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쁨과 행복
의 에너지를 유발시킬 수 있는 긍정의 바이러스를 서로 앞다투어 퍼뜨려야 합니
다. 더 많이 웃어 주고, 더 많이 인내해 주고, 더 많이 긍정하고 인정해 주는
긍정의 바이러스를 통해서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즐거움 속에서 주님을 섬기십시오.(필립보 네리)
류해욱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진정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것이 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 바로 음식이 무엇인지에 따라 깨끗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한테는 정결한 음식과 불결한 음식이 따로 있습니다. 먼지나 흙 등의 더러운 것이 묻었기 때문에 불결한 음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이미 불결한 음식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 있고, 그것을 먹게 되면 정결하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고방식을 지니고 계십니다. 사람을 더립히는 것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라, 바로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 바로 마음이지요. 다시 말해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에 따라 정결한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시는 그 마음을 헤아리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음식은 당연히 하느님이 창조하신 동식물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니 그것 또한 좋은 것이며 깨끗한 것입니다. 다만 더러운 마음으로 만들면 음식도 더러울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가 참으로 소중하게 여기며 늘 주의해서 살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모든 걸 똥으로 만드는 탐욕
-김찬선신부-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내가 누구에 의해 과연 더럽혀지는가?
아니 하느님에 의해 내가 더럽혀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무도 똥을 먹는 사람 없고,
똥 가운데서 뒹구는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그럴 의지만 있다면 나는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똥을 먹고
자기가 똥을 싸고
자기가 싼 똥 자기가 깔아뭉개고 앉음으로 더럽혀지는 겁니다.
그런데 똥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겠는가?
절대로 그럴 리 없고 좋은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삼키는 것이고,
우리 속담으로 얘기한다면
쇠똥 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사람이 뒹구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탐욕의 위가 있고,
좋은 것이라면 다 집어삼키는 위胃가 큰 위대胃大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 탐욕의 위가 좋은 것을 똥으로 만드는데,
그것이 하느님의 것인 줄도 모르고 집어삼키고,
한도 끝도 없이 집어삼키기 때문입니다
창세기가 이것을 잘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으며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따 먹은 것인데
먹고 나니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따 먹은 것은 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탐스러워서 따먹은 겁니다.
하지만 욕심으로 먹으면 그게 다 똥이 됩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먹으면 먹은 게 다 선이고,
겸손하게 무엇을 먹으면 먹은 게 다 은총이며,
사랑으로 무엇을 먹으면 그것은 단지 선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유시찬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오늘 복음은 아무래도 관상을 하는 것보다는 묵상을 하는 것이 낫겠네요. 예수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특정한 사건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가르침의 내용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고 계시거나 삶에 대한 가르침을 베풀고 계시는 장면들은 복음관상보다는 묵상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묵상을 한다고 해서 너무 머리를 써서 이것저것 궁리해 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설사 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좋은 생각을 얻었다손 치더라도 우리 존재를 변화시키기에는 너무나 미흡하니까요. 그 경계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의 지성이 움직이는 부분과 성령께서 움직이시는 부분의 경계 말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것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한 가지 참조할 만한 것은 성령과 더불어 우리의 지성이 움직이고 있다면 생각의 전개가 그렇게 빠르진 않다는 것입니다. 파도가 천천히 백사장으로 밀려 왔다 밀려 나갔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점점 깊은 바다로 나아가는 형상과 비슷합니다. 생각이 좀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되돌아와 머물고 그러곤 다시 앞으로 전개되어 나가곤 할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묵상하는데, 우선은 예수님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더 뚜렷하게 더 깊게 알아듣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을 대비시켜 말씀하시는 내용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며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음식과 마음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습니다만, 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스스로가 사물이나 사건들을 어떤 지평 위에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좀더 근원적 차원에서 살펴봄도 유익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