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5일 연중 5주간 토요일

2014. 2. 18. 오전 7:55:41

글자

2014년 2월 15일 연 5주간 토요일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마르코 8,1-10)

 

“My heart is moved with pity for the crowd,
because they have been with me
now for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 북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예로보암은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희생 제물을 바치러 갔다가 마음이 돌아설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금송아지를 만들어 예배를 바치게 한다. 이것이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마침내 예로보암 집안은 멸망하고 만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먹을 것이 없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를 축복하시며 모든 군중이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베푸신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복음).

☆☆☆

오늘의 묵상

 많은 사람이 즐겨 보았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오랜만에 다시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 번 본 영화이지만 사제가 된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낡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예전보다 훨씬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거의 세 시간이나 계속되는 영화를 지루한 느낌 하나 없이 행복하게 보고 난 뒤 참 보기 드문 고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쉼 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많은 노래를 즐길 수 있었지만, 요즘처럼 겨울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기에는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My favorite things)이라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봄을 맞아 녹아 가는 은백색 겨울”이라는 이 노래의 가사 한 대목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시어 사람들을 배불리시는 오늘 복음의 대목은 수없이 많이 묵상한 장면입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저 군중이 가엾구나.” 하시는 연민의 말씀과, 빵과 물고기를 ‘축복’하시는 모습이, 영화에서 노래하듯 “내 콧잔등과 속눈썹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기분 좋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겨울을 지내기가 힘든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마음을 시들게 하며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음까지 에는 듯한 추위가 말없이 우리를 얼려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백색 겨울의 추위가 어느덧 봄을 맞아 녹아 가듯,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와 축복으로 우리의 삶에 온기가 돌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얼음도 깨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가운데 으뜸인 주님의 자비와 축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느새 이 겨울의 힘든 시간을 이겨 낼 힘을 얻을 것입니다.

 

한 10년 전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집을 방문했다가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많은 화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난을 비롯해서 많은 꽃과 나무들은 답답할 수도 있는 집을 아름다운 실내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고, 또한 이 집안의 공기를 상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집처럼 꽃과 나무를 방에 키워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화원에 가서 꽃나무를 구입해 방의 한구석을 채웠습니다.

그냥 보기만 할 때에는 단순히 예쁘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규칙적으로 물을 주면서 보살피다니 정이 생기더군요. 잎 모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염려가 되고, 꽃이 피면 기쁜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렇게 화초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솟아났습니다.

화초를 키우면서 제가 느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단순히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화초를 가꾸어나가면서 화초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는 것처럼,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그들에게 받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야 하고 또한 윗자리에 올라가려 하기보다는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 진정한 사랑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시간 날 때만을 이용해서 화초를 가꾼다면 어떨까요? 즉, 내가 한가할 때에만 물을 주고, 나에게 시간이 많이 허용될 때에만 햇빛을 볼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그 시간이 일 년에 몇 차례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자신이 이 화초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화초가 원하는 물과 햇빛을 적당히 제공하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남이 기준이 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원칙을 항상 지키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서도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당신을 따르는 군중들의 아픔을 먼저 보시고 “저 군중이 가엾구나.”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이 사랑이 놀라운 기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닌 남을 위한 사랑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위한 사랑만을 일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에 기적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의 제1원칙인 ‘사랑’을 우리의 제1원칙으로 지금 당장 세워야 할 때입니다.
화가 났을 때 말하라. 그러면 평생 최고로 후회하는 연설을 하게 될 것이다.(앨브로즈 비어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양승국신부-

 

<병실 사도직>

 

오늘도 길고도 지루한 투병생활로 힘겨워하고 계시는 환우 여러분들, 얼마나 고생들이 많으십니까? 때로 왜 하필 이 몹쓸 병이 내 인생에 끼어들어 나를 못살게 하는가, 부르짖으며 눈물도 많이 흘리셨겠지요? 때로 하느님께서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 치유의 주님이시라면서 어찌 이리도 참혹한 현실을 내게 겪게 하시는가, 원망도 많으셨을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오랜 세월 꽤나 끔찍한 병치레를 해봐서 환우들이 오늘 겪고 있는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도 어두운 터널 속에서 답답해하던 그 시절, 참으로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정말 힘드시겠지만, 때로 지금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만큼 고통이 끔찍하고 그로 인한 십자가가 혹독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드셔도 이 한 가지는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끝이 보이지 않아 괴로우시겠지만 이 고통에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 비록 더디게 오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오신다는 것, 그분께서는 기필코 내 인생에 개입하실 것이라는 것, 머지 많아 이 서러움의 뜨거운 눈물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주실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우리에게 살짝 보여주십니다. 빵 일곱 개로 사 천명 가량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언젠가 큰 축제를 치루면서 천 명 정도 손님을 맞이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점심식사 한 끼 대접하느라 공동체 모든 식구들은 며칠 내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시장 봐와야지, 찬거리 다듬어야지, 요리해야지, 식탁 차려야지, 설거지해야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 일곱 개로 가볍게 천명 이 천명도 아니고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진리의 말씀에 목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군중들은 사흘 동안이나 굶어 정신조차 혼미했었는데, 겨우 빵 7개로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요? 우리의 미약하고 작은 나눔이 큰 축제로 변화되는 곳,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선행이 엄청난 사랑으로 확장되는 곳, 우리의 작은 희생과 고통에 대한 인내가 하느님 나라의 풍성한 결실로 성장하는 곳...

 

많은 환우들께서 품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투병생활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투병하느라 돈이란 돈은 다 까먹고,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고...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고통을 잘 참아 견딜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꺼이 우리의 병과 맞설 때,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모든 환우 여러분들, 여러분의 삶에 분명히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환우 여러분도 병실 안에서, 병과 함께 훌륭한 사도직에 참여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여러분 주변 사람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여러분들이 감사와 사랑을 표현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환우 여러분을 위해 간병하느라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자주 해드리는 것, 너무나도 훌륭한 사도직입니다. 여러분의 치료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의료인들에게 환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 역시 좋은 병실 사도직입니다. 여러분이 시시각각 온 몸으로 체험하는 고통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 역시 정말 좋은 사도직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김효준 신부-

 

제자들에게는 사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배를 채워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 준 것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일곱 개의 빵과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져온 것도 제자들이었고, 예수님께서 축복하신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도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지만 한 가지 능력만은 탁월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몸으로 옮기는 순명하는 자세입니다. 머리로 먼저 계산하기보다는 몸으로
우선 따르는 실천하는 자세입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가정과 직장, 이웃과 성당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쌓여진 일 전체를 보면 손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나하나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일 수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주님 손 안의 쓰임이들

-김찬선신부-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려고 할 때
누구나 드는 생각은 그것의 터무니없음과 무모함일 겁니다.

산술적으로 빵 일곱 개는 일곱 사람분이고,
사람의 손에 들린 빵 일곱 개도 일곱 사람분입니다.
빵 일곱 개는 일곱 사람 이상 먹이게 할 능력이 없고,
사람도 빵 일곱 개를 그 이상으로 늘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터무니없지 않고 무모하지 않을 수 있음은
주님의 손에 들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과소평가는
빵의 숫자만 보고
나, 인간의 능력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과소평가는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시각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하지 않으십니다.
너무나 그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없는 데서 모든 걸 이루신 하느님께서
왜 하나를 가지고 무언들 못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은 또한 과대평가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힘이 대단해도 하느님 능력에 비할 바 못되고
아무리 많은들 하느님의 한 말씀에 사라질 것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능력과 가진 것의 숫자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시고 태도를 보십니다.
하느님을 믿는지.
이웃을 사랑하는지.
능력의 하느님을 믿고 사랑의 하느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 이웃 사랑은 사천 명이 아니라 사만 명도 가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것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잘것없는 우리를 당신 손에서 크게 쓰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손 안의 ‘쓰임이’들이 되기만 하면 됩니다.

 

 모성적인 마음

-이민순 수녀-

 

이 기적사화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공동체의 상황과 시대의 혼란과 백성들의 갈망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사천 명가량의 사람이 사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닌다는 것은 불안한 사회와 메시아에 대한 갈증 때문일 것입니다. 유랑생활을 하던 제자들은 어느 정도의 빵과 물고기를 포함해 비상식량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수님의 ‘너희에게’ 라는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예수님은 비상식량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한테 무엇이 필요한지 모성적인 마음으로 미리 헤아리고 채워주십니다.( 2 – 3절 )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마음에도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판단하기 전에 자상하게 헤아리고 도와주는 사랑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가난한 사람 앞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처럼 나한테 있는 것을 모두 내어놓지는 못합니다. 먼저 나의 몫 ( 만일의 사태까지 대비할 만큼 )을 떼어놓고 나머지를 내어놓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한테 ‘가난한 과부의 헌금’  ( 12,44 )처럼 가진 것을 모두 다 내어놓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백배의 보상 ( 10,30 )으로 사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일곱 바구니나 남도록 풍족히 되돌려주실 것입니다.

실제 내 삶에서 온 힘을 다해 남을 도왔을 때 느끼는 기쁨과 나의 것을 모두 주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하느님께 최선을 다했다는 행복감으로 연결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내 앞에 선물로 보내주시는 약한 사람을 만나거든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듯이 봉사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나눔의 신비

- 김미자 수녀-

 

일곱 개의 빵과 작은 물고기 몇 마리는 사천 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그러나 사천 명이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고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이런 기적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예수님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놀라운 일을 해주십니다.

우선 예수님은 “저 군중이 가엾구나
?….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각자의 처지를 보고 측은히 여기시며 우리를 늘 좋은 길로 이끌어 주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지만 우리의 협조가 있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기여해야 할 고유한 몫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내놓았고 예수님께서는 감사기도와 축복으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십니다. 그것도 풍성하게 베풀어 주십니다. 사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일곱 바구니나 남을 정도로 말입니다. 자신의 것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어서 이 많은 군중에게 소용이 없겠다고 포기해 버리면 기적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으며 초라하지만 자신의 것을 나눌 때 이 나눔의 행위 안에서 신비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물질뿐만 아니라 재능
?·?시간?·?지식?·?성품이 비록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내놓는 비움의 행위 안에 예수님께서 축복을 베푸시어 풍성하게 열매를 맺어주십니다. 나는 무엇을 나누고 내놓을 수 있을까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2014년 2월 17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14.02.18조회 552014년 2월 16일 연중 제6주일14.02.18조회 1762014년 2월 15일 연중 5주간 토요일14.02.18조회 1392월 14일(금)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14.02.15조회 2822014년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14.02.14조회 1142014년 2월 12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14.02.13조회 752014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14.02.12조회 752014년 2월 10일 월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14.02.11조회 852014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14.02.11조회 1092014년 2월 8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14.02.11조회 4142014년 2월 7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14.02.08조회 732월 6일 목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14.02.06조회 1062월5일 연중제4주간 (수)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14.02.06조회 582014년 2월 4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14.02.04조회 862014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14.02.04조회 762014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14.02.04조회 742014년 2월 1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14.02.04조회 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