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4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2014. 2. 25. 오후 2: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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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4 연중 제7주간 월요일


그 뒤 예수께서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왜 저희는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
(마르9,14-29)

 

When he entered the house,

his disciples asked him in private,
Why could we not drive the spirit out?
He said to them,

This kind can only come out through prayer.

 

말씀의 초대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현세적 지혜와 구분된다. 그 지혜는 순수하고,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 속에서 심어진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치유해 주신다. 제자들이 자신들이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한 이유를 묻자 예수님께서는 오직 기도만이 그 영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우리는 가끔 하느님의 뜻에 따른 일과 인간의 욕심에 따른 일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러한 우리의 고민에 대한 좋은 답을 줍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일한다고 할 때 주관적 확신만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가만히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이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이르시는 부분을 묵상해 보면, 자신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진정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더욱더 근본으로 돌아가 성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외적인 성과나 사람들의 인정이 이러한 성찰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연히 펴 보게 된 『토마스 머튼의 영적 일기』라는 책의 한 대목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제의 마음에 있는 하느님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는 두 가지 특성은 감사와 자비다. 감사는 성부에 대한 사랑의 방식이며, 자비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다. …… 첫 미사 후 나는 생전 처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순진하고 기쁘게 하느님을 섬기는 것 외에 더 중요한 일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놀랍고도 특별한 방법을 찾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며 착각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되면 아무리 평범한 봉사라도 숭고해지고 비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봉사자들은 감사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는지, 작은 일을 하면서도 사심 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 늘 자기 자신을 각별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에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있답니다. 400년 전,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특히 조선이라는 나라로 온 뒤에 고향별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대까지 살아가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드라마이지요. 이 드라마를 제 누님과 조카애가 함께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간호하면서 “내 꿈은 백의의 천사 헬렌 켈러였다고, 이렇게 간호해주니 고마운 줄 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남주인공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이팅게일이겠지.”라고 하지요. 

이 장면을 보고서 누님은 너무나 재미있어서 막 웃었는데, 글쎄 조카아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곧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았답니다. 글쎄 헬렌 켈러와 나이팅게일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시각, 청각 중복 장애인으로 작가 겸 사회사업가였던 헬렌 켈러를 몰랐고, 또 크림전쟁에서 맹활약한 간호사인 나이팅게일을 모르니, 드라마를 보고서 어떻게 웃을 수 있겠습니까?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믿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또 모르면서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저에게 와서는 돈을 좀 빌려달라고 합니다. 빌려 줄 수 있습니까? 알아야 믿고 빌려 줄 수도 있겠지만, 전혀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믿고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와서 아들 안에 있는 더러운 영을 쫓아내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반문하시면서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가능하다.”라고 하십니다. 부족한 믿음, 이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제자들도 고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의심은 더욱 더 커졌겠지요. 바로 그때 이 아버지는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부족한 믿음도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단,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라도 알아야 합니다. 그 앎이 나의 믿음을 키워 줄 것이며,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알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삶이 고통스러운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태도가 바뀌고, 삶에 대한 대처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고통을 통해 결국 고통을 줄이게 되는 것이다(권지예).


 

 


줄과 콩나물 대가리

 


요즘에는 유치원은 거의 필수로 다니고 있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는 유치원 다닌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지요. 그러다보니 많은 것을 미리 배워서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았습니다. 한글은 어느 정도 알고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정말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줄과 콩나물 대가리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서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곧 단순히 줄과 콩나물 대가리가 아닌 오선과 음표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오선과 음표를 모르기에 줄과 콩나물 대가리를 가지고 어떻게 노래 부르냐고 불평했던 저처럼, 주님을 알지 못하면 그 큰 사랑을 가지고 오시는데도 계속해서 불평불만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아는데 최선을 다하는 오늘을 만들어 보세요. 불평불만에서 벗어나, 진실로 주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치게 될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십시오

 

-김대열신부-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 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야고보서3,17)
---
지혜롭다는 말을 묵상해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교만이 자리를 하기 때문이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말과 행동이 어떤 열매를 맺을 때,
먼저 하느님께 감사를 돌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혜롭다는 말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표현이 있습니다.
“약다”, “약삭빠르다”
많은 사람들이 약삭빠르다는 말을 지혜롭다는 말로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혹은 ‘지식이 풍부하다’는 말을 지혜로운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는 세상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야고보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먼저 순수하다 하였습니다.
지혜는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다 하였습니다.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 하였습니다.

순수하다는 말은 따뜻한 눈물과 옳음을 위한 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다는 말은 남을 해코지하면서까지 이기심과 안락을 도모하지 못하는 마음이고,
오히려 필요한 이에게 내어주고 져주는 의미를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편견과 위선이 없다 함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며, 거짓을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결코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지혜임을 믿습니다.
지혜를 청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무엇이 가장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해야만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결국 선을 선택한 사람들이며, 그 뜻을 따르고자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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