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8일 연중7주간 금요일

2014. 2. 28. 오후 9:13:46

글자
     혼인과 이혼 <연중 제7주간 금요일>(2014. 2. 28. 금) (마르 10,1-12)

    2월 28일의 복음 말씀은 마르코복음 10장 1절-12절, '혼인과 이혼'입니다.

    혼인과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일'이고, 그래서 신성한 일입니다.

    '이혼'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혼 불가 원칙을 고수하면 보수적이라고 말하고,

    조금이라도 관대한 태도를 취하면 진보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대립입니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라는 말에서 바로 연상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수난을 만류하다가 혼나는 장면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혼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속세의 풍조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혼을 해도 되는가? 하면 안 되는가? 에 관한 논쟁은

    이미 예수님의 답변으로 끝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번복할 수 있는 권한이 교회에는 없습니다.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혼인과 가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태도이고,

    믿음 없는 모습입니다.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혼인과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은

    신앙과 직결된 일입니다.

    단순히 관습이나 문화나 제도의 문제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혼을 해버렸고,

    원상 복구가 불가능해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혼을 취소하고 다시 재결합하라고 강요해야 하나?

    (강요한다고 재결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이혼을 한 것이 아니라 당한 사람은 억울하지 않은가?

     

    단순히 이런 문제 하나 때문에 신앙생활을 정상적으로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잃은 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아 헤매시는 착한 목자이신 분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니 교회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교회도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병의 치유와 비슷합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미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방책만 말하고 치료 방법은 말하지 않는 것,

    또는 왜 병에 걸렸느냐고 병자를 꾸짖기만 하는 것은

    정말로 사랑 없는 태도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고 보속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혼하면 안 된다." 라는 말씀만 하시고,

    이미 이혼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처음에 질문한 사람들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라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누군가가 이미 이혼한 사람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 물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라고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당에 묶여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교회가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은

    이혼을 정당화시켜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혼을 하고 조당에 걸려도 교회가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노력하는 것은 이혼을 했더라도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또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혼을 하더라도'가 아니라 '이혼을 했더라도'입니다.

    조당을 풀기 위한 방법들을 찾는 것은

    이혼을 허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다고 해서

    병에 걸려도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계시니까 죄를 지어도 된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죄인이 된 다음에야 구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오신 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려고 오신 분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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