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의 집요한 방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C냉장㈜ 관리 책임자를 만났다.
그동안 준비해온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C냉장회사는 공장에서 40km 거리의 경부고속도로변에 있고 단일 냉장창고로는 당시 전국 제1의 규모였다.
물량이 대폭 늘어나 공장 창고가 포화 상태가 되자 그 C냉장회사를 이용하게 된 것인데
몇 년전부터 공장보다 C냉장에 비축한 상품이 더 많아 센터 사무실까지 옮겨 전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매일 한두 번씩 40km 거리의 공장과 C냉장을 왕복하며 힘들게 근무하고 있었으며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운전이 편하지만 톨게이트가 너무 멀리 있어 거리와 시간상의 잇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운행비용이 적은 지방도로를 주로 이용했다.
그 대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왕복 2차선의 구불구불하고 수많은 고갯길의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C냉장회사는 전체 약 만평 중 7천평이 냉동과 냉장이고 회사가 약 천평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육가공업체 대기업 L 사가 4천평을 사용하고 있어 대고객이었고 우리 회사가 두 번째 고객이었다.
그렇다보니 L 사의 원료와 상품을 수송하는 차량으로 온종일 북적이고 있었다.
그 C냉장회사의 관리책임자인 서모 이사가 자청하여 나의 퇴직 후 일거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다.
오랜기간의 거래로 친하게 지내는 L 사 관계자에게 부탁하여 대형수송차량 한 대를 내가 하도록 해 주면서
우선 한 대지만 상황을 봐가며 더 늘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1대로는 생활이 안 되어 운수회사 박사장의 협조로 센터에서 운행하고 있는 차량 2대를 인수했다.
그처럼 대형 냉동차량 3대면 돈은 벌지 못해도 일단 생활비와 아이들 학자금은 문제없을 것이다.
사직 후 15일이 되자 퇴직금이 나왔고 차량 인수금을 지불하면서 사업 준비를 위해 출근하지 않은 것인데
운수회사와 L 사 등 두 회사와의 수송계약과 운전기사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고
그 차량들이 운행 중이라 지장 없는 시간 틈틈이 정비공장에 들어가 차랑을 철저히 정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회사생활을 완전히 끝내야 했다.
C냉장 서 이사와 함께 L 사 부장을 만났을 때
그는 수의계약도 문제없다고 했지만 만일을 위해 입찰 형식을 거치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그리고 L 사 계약규정에 따라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기다리던 중 서 이사가 갑자기 뜻밖의 말을 했다.
L 사와 계약이 높은 사람 개입으로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린가?
그래서 L 사 부장을 만나려고 하자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여 참아달라며 극력 만류하지 않는가.
그 회사의 높은 누군가가 그의 친지 차를 대신 넣겠다 하여 그리 되었고
L 사 부장도 어쩔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며 매우 미안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난처하게 하면 다음의 기회마져 잃을 수 있다는데 어쩔 것인가.
나는 대형 냉동차량 3대를 인수하는데 1억 이상 들었다.
물론 차를 매도한 박사장이 그 사정을 잘 알아 매도를 취소하고 매입금을 되돌려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출한 차량 등록세와 취득세가 적지 않고 또 수송업 외에는 마땅한 할 일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센터 제품 수송 예정인 두 대는 계획대로 할 수 있고 문제는 L 사 예정의 1대 뿐이다.
그런데 마침 모 OEM사 공장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회사는 11개 OEM사 중에서 납품 물량이 제일 많은 업체였는데
그동안 센터에 자신들 차량으로 납품하던 것을 내가 하겠다고 하면 주겠다는 고마운 제의였다.
그리고 기왕에 하는 일이니 우리 센터 납품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납품 물량까지 모두 하라는 것이었다.
그 회사는 OEM 전문생산업체로 우리 회사 외에 다른 회사에도 그들 상표로 생산하여 납품하고 있었다.
난 물론 할 수 있지만 영세한 중소기업이라 대기업인 L 사보다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공장장이 먼저 호의를 배푸는 것인만큼 최소한의 수익은 보장해 줄 것이다.
그래서 그 공장을 방문하여 다른 회사 납품 실태를 점검하며 계약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우리 회사는 납품량이 많아 11.5ton 대형차량이 문제되지 않지만 다른 회사들은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그들 회사는 성수기 외에는 물량이 적어 년 중 약 절반은 5ton 차량이 적합했다.
그래서 두 회사를 묶어 수송하는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담당자들을 만났고 최대한 협조를 약속받았지만
그 문제를 확실히 하려면 5ton 차량을 구입해야 하고 내가 운전해야 비용이 절약된다.
그 상황에서 또 1년 전 IMF 때 명퇴 당하여 후렌차이즈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김 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장은 근무당시 직급이라 내가 부르는 호칭이고 지금은 그 회사의 이사였다.
그 회사 사장 역시 회사를 사직하고 창업하여 기반이 잡히자 마침 명퇴 당한 김부장을 불러들였는데
창업 초기지만 다행히 체인점이 급증하여 배송이 어렵게 되고 또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난 물론 그 일에 자신은 있지만 김부장 말대로 추진하던 일을 집어치고 달려갈 수 없는 상황 아닌가.
김부장은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당장 집어치고 무조건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일이 뒤틀리면서 김부장 말대로 그가 오라 하는 서울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OEM 사 수송 건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L 사 때와 같이 또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그 OEM 사 공장장이 얼마나 미안했으면 그 먼 곳에서 황급히 달려와 백배사죄했겠는가.
사장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문제 없을 줄 알았으나 막상 보고하니까 대단히 꾸중하더라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너무나 어이 없고 기가 막혀 그를 탓하고 나무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변명이 매끄럽지 못하여 분명히 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날 저녁과 함께 마셨지만 조용한 카폐로 옮겨 또 마시면서 숨기지 말고 사실을 말해 달라고 했다.
비록 거래 관계지만 오랜기간 알고 지냈고 업무 문제라면 본의 아니게 속일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으나
이 문제는 나 개인의 일이고 평생을 고생하며 모은 전 재산이 걸린 일이라 속이면 난 거지가 된다면서
비밀을 지키고 절대 곤란하게 하지 않을테니 진실을 말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몹씨 괴로웠다면서 물류본부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나에게 수송을 위임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당장 중지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랜기간 고생하다 퇴직한 나를 도와 주면 좋아 할 줄 알았는데 그 반대라 이상하여 이유를 물었으나
이유는 알 것 없고 즉시 중지하지 않으면 협조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겠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얼굴이 화끈거려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그럴 수가...공장장이 없는 일을 있다고 할 리 없으니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L 사 계약 무산 건도 혹시? 서 이사는 워낙 능구렁이라 사실을 말하지 않겠지만 뻔할 듯 했다.
난 너무나 어이 없고 황당하여 화가 나면서도 그렇게까지 나를 미워하는 본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즉각 상경하여 본부장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었으나 약속을 지키려면 모른채 참아야 했다.
또한 센터 차량마져 시비 걸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최근의 일을 알고 있는 본부가 오래 전에 추진한 센터차량 건을 모를 리 없었다.
그 운수회사 박사장은 30대 후반으로 절대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닌데 그동안 아무 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 하는 것과 말하기 곤란하여 못하고 있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그의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전화로
"박사장, 본부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으면 말을 해야지 왜 말하지 않고 있는거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은요. 본부가 박사장한테 어려운 요구를 한 것 같은데..그럼 말을 해야지요. 아무 말 없었나요?"
"아..예...아닙니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그게 언젭니까? 그 말을 들은 것이?"
"한참 됐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리기가 너무 어려워서요. 죄송합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박사장이 미안할 일이 아니지요.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요. 그나저나 박사장이 피해를 보면 안 되는데..."
"그렇지만 그동안 많이 도와 주셨는데...센터장님 좋으실대로 하시면 전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아휴~ 이제 좀 살겠습니다. 그동안 고민하느라 잠도 못 잤습니다. 그런데 본부에서 왜 그러는 겁니까?"
나도 그 이유를 모르니 답답한 노릇 아닌가.
어쨌던 주변 사람들은 내막을 잘 모를 수밖에 없고 일을 잘못 추진하여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본부가 훼방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몇 명 없고 또 그들은 회사와 거래를 위해 함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에서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변명에 불과하여 나만 더 비참해질 뿐이다.
더욱 미치고 환장할 일은
본부장을 찾아가 따지고 항의하더라도 본부는 모르는 일이라고 오리발 내밀 것이 뻔하고 그것이 통한다.
내가 약속을 깨고 공장장과 운수회사 사장을 들이대면 그들은 사업을 위해 말한 일 없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운수회사 사장의 협조로 작은 손해로 끝난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그런데 김부장의 후렌차이 사업도 회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많지는 않지만 약간의 상품을 회사를 통해 판매하고 있고 앞으로 계속 늘리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부장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어쩜 또 같은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김부장은 회사에서 쫒겨난 것이 분하다며 그 따위 요구를 하면 단호하게 거절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가 이사로서 모든 업무를 주관하고 있지만 중요한 일의 결정은 사장이 하는 것이다.
그 무렵 서울과 수도권의 후렌차이 체인점 20여개소의 배송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축배를 든 그 다음 날
김부장의 축 늘어진 목소리 전화를 받았다.
그는 오전 내내 사장과 싸우고 집에서 전화하는 것이라며 계속 일을 할 것인지 생각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에 나는 놀라지도 기가 막히지도 않고 오히려 웃음이 나와 크게 웃었다.
김부장은 진짜 아무 일 없었는가 솔직히 말하라고 했지만 아무 일 없는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했다.
참으로 더없이 억울하고 통탄할 일이지만 그 이상 다른 말로 해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아 당분간 쉬며 천천히 다시 생각하기로 한 어느 날 또 전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