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 필연
사직 여행 중에 아내와의 통화에 의하면 회사에서 매일 전화가 오고 부장과 과장이 집에 왔다고 했다.
그 정황으로 볼 때 어쩜 사직서 수리가 안 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만약 다시 복귀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면 그에 대한 대책도 연구해 둘 필요가 있었다.
복귀하면 현재의 여러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에 또 시달리며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교체 시급한 수송차량 문제 그리고 상품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 작업 방법과 그 알바들 문제 등등.....
나의 업무는 위 3가지 난제 때문에 항상 골치가 아팠고 안 그래도 힘든 업무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온양에서 부산과 남해안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도 그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 며칠은 도고와 온양 그리고 수덕사 등에 머물면서 사직 후에 살아갈 일만 연구하며 푹 쉬었다.
그러다 전화로 아내에게서 그 말을 듣고 혹시 모를 복귀를 대비하여 부산에 내려갔던 것이다.
언젠가 부산 부두에서 대형 냉장고 회사들이 즐비한 것을 본 일 있었고
그들 냉동제품 전문회사들의 상하차 작업상황을 보면 혹시 좋은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그 예상이 적중하여 그곳 어느 운전기사에게 내가 바랬던 유익하고 중요한 정보를 들었다.
그때 부두의 냉동창고들도 우리처럼 인력에 의존한 수작업이었는데 그 운전기사는
카고트럭처럼 물품을 파랫트에 적재하여 지게차로 상 하차할 수 있는 냉동차량을 본 일이 있다는 것이다.
부산의 그 부두는 매일 전국의 수많은 대형 냉동차량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그래서 그러한 냉동차량이 많지는 않아도 분명히 있고 보았지만 어느 회사 소속차량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 시절 대형 화물차량에 물품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작업 형태가 어떠 했는지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그래야 지금부터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냉동차량은 차체가 직사각형의 크고 긴 컨테이너 모양으로 되어 있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윙바디라 하여 새가 양날개를 펴는 듯한 모양의 차체도 있지만 여기선 관계없어 설명을 생략한다.
카고트럭(탑 없는 트럭)은 지게차로 쉽게 물건을 올리고 내려 작업이 빨라 상하차작업 능율이 매우 높다.
그러나 냉동차량은 탑 때문에 지게차 상하차가 불가하여 작업이 매우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대형 냉동차량에 그 많은 물건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싣고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센터에선 11,5ton 냉동차량 한대에 4~5명이 제품을 싣고 내리는데 약 2시간 정도 소요되고 있었다.
작업자가 많아도 탑 때문에 작업 공간이 협소하여 오히려 방해만 된다.
그리고 또 뜨거운 여름철에는 장시간 작업하는 과정에서 제품 해동사고가 염려되는 것이 또 큰 문제였다.
하지만 대부분 알바인 상하차 작업자들은 작업을 빨리 끝낼 생각만 하고 해동 문제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주의를 주면 나가버리는데 회사의 인건비가 워낙 적고 알바 구하기가 어려워 방관하는 상태였다.
문제는 또 있었다.
여름철에는 냉동차량의 컨테이너 탑이 열을 받아 탑 내부 온도가 숨이 막힐 정도로 몹씨 무덥다.
따라서 냉동기를 미리 충분히 가동시켜 열을 식힌 후 상품을 상차하는 것이 옳바른 상차 방법이다.
그리고 차량 지입운행 계약서에 그리 하도록 명시되어 있어도 운전기사들은 냉동기를 틀지 않으려고 했다.
기름값을 아껴 자신들 용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다 운수회사 K 사장 빽파워가 그렇듯 강하여 내가 현장을 비우면 냉동기를 돌리지 않기 일쑤였다.
게다가 난 항상 바쁘고 공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터라 그러한 운전기사들을 철저히 감시할 수 없었다.
사실 그 3가지 문제는 근본적으로 회사 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니다.
그 못된 운수회사를 무조건적으로 감싸며 비호하는 부장이 그렇고.
회사에서 지급하는 알바 일당도 다른 회사들 평균보다 턱 없이 적어 알바 구하기가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
작업을 제대로 하라고 꾸짖으면 그 즉시 휭 하니 가 버리는데 그럼 작업이 어렵다.
그러한 문제로 매일 골치 아파 머리를 싸 매며 힘들게 보내고 있던 차에 사직서를 내게 된 것이다.
그야 어쨌던 부산부두에서 들은 정보는 지게차 상하차가 가능하여 그러한 난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데
아직 어느 회사에 그런 차량이 있는지 몰라도 회사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 아니다.
문제는 그 차량을 찾았더라도 부장이 운수회사 교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불보듯 뻔한 현실에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와 걱정은 업무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 때의 일이다.
이왕에 내려 왔으니 주요 항구를 돌며 냉장창고에 들러 그런 차량 보유회사가 또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몇곳 항구도시 냉동창고 근무자를 찾아 물어보니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본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차량이 분명히 있는 것은 확인한 샘이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업무에 다시 복귀한 얼마 후 조직개편과 함께 그 부장과 헤어지게 되었다.
저온제품물류가 영업에서 독립하면서 조직체계가 크게 바뀌었고 부서와 상사가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회사 전체를 사장이 직접 관장하던 체제에서 사업본부제로 독립시켜 각각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사장은 사업본부만 커버하고 각 사업본부장이 본부 일을 전담하며 책임지는 체제다.
그렇게 되면 사원들에게는 인사권자인 본부장이 사장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 나는 영업부 소속에서 신설된 물류본부 소속이 되었고 이사급 중역이 물류본부장이었다.
그리고 그 본부장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호의적이어서 나로선 이번 조직개편이 대환영....
종전의 영업부는 영업본부 소속으로 되고 영업본부의 중요도 비중이 제일 높기 때문에 본부장이 상무였다.
그야 어떻든 나로선 내 업무에 실로 큰 장애물 한가지가 줄어든 샘이다.
즉, 그 보기도 싫은 운수회사 사장이 전에 부장 밑에 있을 때처럼 횡포를 부릴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부장은 영업본부 소속이라 물류본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나와 상관도 없다.
사업본부제는 회사내에 여러 회사가 또 있는 샘인데다 그 부장보다 상위인 이사가 본부장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조직이 개편된 이상 이제 수송문제 해결을 위해 그 운수회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지게차작업 가능한 냉동차량 보유 운수회사를 찾고자 수원의 전국운송협회본부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들은 알아 본 다음 곧 연락해 주겠다 했고 며칠 후 연락이 왔는데
그 운수회사 사장과 통화를 해본 결과 내가 그토록 찾던 대형냉동차량을 15대나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난 상하차작업 상황을 보고 싶어 어디로 가면 볼 수 있는가 묻고 곧 그가 말한 물류센터로 달렸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게차로 작업하는 냉동차량을 확인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가....
예상했던 이상으로 작업이 매우 원활하여 그 작업체제로 하면 3가지 난제들이 동시에 해결될 수 있었다.
난 그 사장에게 비밀을 철저히 지킬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현재의 수송계약을 파기하는 "운수회사 교체 기안서"를 작성하여 물류본부로 보냈다.
그런데 물류본부에 그 사장의 첩자가 있었던지 K 사장이 알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계약파기란 절대 있을 수 없다면서 웃기는 짓 그만하고 그만 꿈 깨라는 폭언까지 퍼부었다.
그리고선 또 태도를 싹 바꾸어
내가 원하는 그러한 냉동차량으로 한 대씩 순차적으로 바꾸겠으니 그 대신 시간을 넉넉히 달라고 했다.
그런 냉동차량 가격이 매우 고가라서 5대 동시 교체가 어렵고 지금은 그런 돈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사장님에게는 내가 하고자 하는 수송업무개선이 "웃기는 짓"이겠으나
우리 회사는 저온물류업무 발전을 위해 또 계속 늘어나는 판매량 때문에도 꼭 해야하는 중요한 일이며
그런 내가 사장님 사업에 방해된다면 "그 좋은 실력"으로 나를 이 자리에서 쫒아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버럭 화를 냈다가 곧 묘한 비웃음으로 바꾸더니.
"그래요, 그럼 해 봅시다. 지금 그말 분명 후회하게 될 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