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외로운 별 이야기

2010. 9. 16. 오후 11:38:15

글자

문제 & 해법

본부장은 공장 비축재고가 몹씨 걱정되고 의심스러웠던지 다음 날 본부직원 두 명을 내려 보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우리가 인수할 상품들 유통기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공장 창고에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상품들을 하나하나 생산일자를 확인해야 한다.
높은 곳에 적재된 것들은 지게차로 내려 놓고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빠짐없이 기록하여 PC로 깔끔하게 목록을 만들면 일단 확인작업은 끝난다.

냉장창고냉동창고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할 듯하다.
냉장창고는 보통 '섭씨 0~5도를 유지'하지만 상품에 따라 섭씨 10도까지 유지하기도 한다.
섭씨 5도 정도는 우유 햄 소시지류 등 육가공 식품들이고 10도는 채소 과일 등 농산물이 주류이다.
10도 정도의 창고에 들어가면 여름에는 매우 시원하고 추운 겨울에는 오히려 훈훈한 느낌이다.
그 때문에 장시간 소요되는 재고조사와 상품을 입고하고 출고하는 작업이 아주 수월하다.

그러나 냉동창고는 사정이 다르다.
대부분 냉동창고들이 보통 섭씨 영하 18도부터 25도 정도를 유지하며
백화점과 할인매장에서 흔히 보는 상품 판매용 소형 냉동고는 대부분 섭씨 영하 18도이다.
그러나 먼 지역 수송이 목적인 항구 등의 대형 냉동창고는 '섭씨 영하 22 ~ 27도'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처럼 상품을 단단하게 얼려야 중도에 혹시 있을지 모를 기계적 사고에 피해가 적기 때문이다.

만일 장거리 운행 중에 수송차량 냉동기가 고장나면 상품이 해동되어 모두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단단하게 얼린 상품은 급히 수리센터를 찾아  간단한 고장 수리하는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대형차량은 상품을 상차하고 하차하는 시간이 많이 소요돼 그 시간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냉동창고는 그야말로 엄동설한 보다 훨씬 더한 혹한의 온도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두툼한 방한복과 방한화로 무장해도 연속 10분 이상 버티기 어렵다.

그래도 냉동창고 근무자들은 그런 혹한 속에서 온종일 일 한다.
물론 자주 밖에 나와 몸을 녹이면서 하지만 그래도 일반 상온창고의 작업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그런 냉동창고에서  나와 본부직원은 재고상품을 인수하기 위해 유통기한 확인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감기에 걸려 콧물을 흘리며 비축재고 확인 작업을 끝내는데 만 3일이 소요되었다.
일반 온도 같으면 한나절이면 충분한 일인데 혹한의 냉동창고라서 그만큼 어렵고 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록한 자료를 정리하여 목록을 만드는데 또 하루를 보냈다.
그 목록을 근거로 내가 인수할 상품 즉, 생산한지 한 달 이내짜리와 그 이상의 상품들로 분류했다.
그랬더니 인수 가능한 한 달 이내 상품은 전체의 25% 정도......
나머지 75%는 영업부에서 판매가 어렵다고 기피하는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불량상품이었다.
그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그야말로 심각하기 이를데 없는 엄청난 금액임은 물론이다.

그날 오후 늦게 본부장이 내려왔다.
그리고 그날 밤 꼬박 새워가며 공장장과 과장 등 4명이 이마를 맞대고 고민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공장 측이 두 달 동안 나름으로 '부지런히 정리'한  상태가 그 모양인 것이다.
그럼 두 달 전 정리하기 전에는 어떠 했을까....공장장 표정은 보기 딱할만큼 침통했고 창백했다.
아마도 전의 부장과 과장이 공장장에게 허위 보고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 날 공장장이 보인 여러 행동을 보면 그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러한 공장장이 보기에 너무 딱했던지 본부장이 나에게 말했다.

"이형...! 상황이 이런데...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요?"

"....글쎄요.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영업에선 팔기 어렵다고 할 거고 보내면 100% 반품입니다."

"그래도...식자재나...실수요처 같은데....이형은 전국의 유능한 영업사원들을 많이 알고 있잖아요?"

"예, 알고는 있지요....그래도 량이 이렇게 많아서야.....처리한다고 해도 일부 밖에 어렵습니다"

"............"

"공장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아..예, 말씀 하세요."

"제가 내려 온 날 말씀드렸지요? 전 공장을 도우러 왔다고요... 공장장님 절 도우실 용의 있으십니까?"

"무슨 말씀 입니까? 당연히 도와야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어떤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그럼...본부장님도 계시는 자리니....그 말씀을 믿고 이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생산체재를 제가 하자는데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가능하십니까?"

"??.. 생산 기계설비를 늘려 달라 그겁니까? 그건 제 임의로 못합니다. 막대한 예산이 딸린 문제라...."

"예산이 걸린 일은 일단 뒤로 미루고요. 우선 공장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그런 일은 제가 책임지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절대 염려 마세요"

"며칠 전 공장장님도 들으셨듯이 직원들 반발이 매우 심할 거 같아서요... 전 그것을 걱정하는 겁니다."

"물론 알고서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센터장님이 그날 하신 말씀 백번 옳고 전 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자료의 이 부분....75% 중에서 약 20% 쯤 되는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이것들이 걱정인데요"

"허! 그럼... 전체 불량 75%에서 20% 빼고 나머지 55%는요?"

"그것들도 사실 죽어라 하고 열심히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지만... 일단 해 봐야지요...."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하시다가 안 되는 건 제가 책임질테니 제발 좀 어떻게 해 봐 주세요..." 

"부탁 말씀 아니라도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할 작정으로 있습니다.
 그리고요....앞으로 공장에서 월별 주간별 일별 생산 계획을 짤 때 저도 꼭 참석하게 해 주십시오.
 가능한 건 왜 가능하고 불가능한 것은 왜 안 되는지 그걸 알아야 영업 쪽을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얼마던지요. 그리고 그거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내일부터 당장 그리 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또...현재 공장 전 직원들 의식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교육을 했으면 하는데요...?"

"그것도 당장합시다. 그래야겠지요. 어렵지 않아요. 교육 때문에 공장을 하루 세우라면 세우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능한 빨리 먼저 현장 관리자들만 두시간 정도 하는 걸로 해도...."

"그렇게 합시다. 아무튼 돈 안드는 일은 아무 때 어떤 일이던지 협조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는 공장에 내려가기 전에 전국의 주요 실수요처와 케터링 파트 영업사원들과 많은 협의를 했다.
공장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므로 문제 상품들 처리에 있어 시장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전국에 알고 지내던 영업사원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두 명에게 촛점을 두었다.
서울 쪽과 부산 쪽에 각 1명씩 영업지역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멀리 떨아진 두 곳을 생각한 것이다.
두 지역은 대형 공단들이 많아 일반 시장을 흐리지 않는 구내 식당들 밀집지역이기도 하다.

그 두 사람은 판매가격만 맞추어 주면 물량은 얼마던지 처리할테니 걱정말고 빨리 서둘러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유통기한이 너무 짧으면 안 되니 하루라도 빨리 서두르라는 것이다.
그들도 정보가 빨라서 내가 공장에 갈 것을 알고 있었고 공장에 그런 상품이 많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출 실적도 올리고 나를 도와 주어 앞으로 여러모로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보내 주는 상품과 수량 여하에 따라 영업실적에 큰 영향을 받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본부장이 올라간 후 공장장이 나를 만나자고 했다.
그러더니 매우 분하다는 투로 전임 부장과 과장을 욕하며 식식거렸다.
상품이 엉망인 것도 큰 문제지만 내가 조사한 목록 수량과 공장 전상상의 수량에 차이가 매우 큰 듯....
즉, 전산상의 수량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은 누군가 그 물량을 어딘가로 빼 돌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게 누구 짓이겠는가.

그들이 그 많은 상품을 영업 쪽 누군가를 통했을 것이 분명하므로 그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부탁이었다.
그러니까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면 자신을 배신한 두 간부 직원을 형사고발하겠다는 것인데
그 때 과장은 이미 퇴직금이 지급되어 회사에서 제재하기는 늦었고 형사고발만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부장은 다른 계열회사에서 근무 중이므로 퇴직금 압류와 형사고발 모두 가능한 상황에 있었다.
물론 누가 그짓을 했는지 또 어떻게 빼 돌렸는지 밝혀 내는 일은 나로선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형사 고발을 한다면 간단한 일 아니다.
나는 그들을 내 손으로 사표내게 하는 것이 목표였지 형사고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말할 것 없이 즉각 구속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본부장에게 전화로 그 일을 보고하며 어찌하면 좋을지 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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