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반품업무 자체는 참을 수 있었다.
반품업무도 다른 업무 못지 않은 중요한 업무이고 누가 해도 해야 하는 회사의 일인데다
물류가 영업부에서 독립한 주 요인 중 하나인 잘못된 영업관행을 감시하고 비리를 봉쇄하는 역할도 있어
위세 등등한 대형 대리점 사장들과 고참 영업사원들을 리드하지 못하면 업무를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
그들은 영업부 매출에 크게 기여한다 하여 안하무인으로 행동했고 또 그러한 행동이 용납되고 있었는데
모두가 기피하는 반품업무이고 항상 젊은 신입사원이 하다보니 그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물류부가 독립한 효과도 없을 뿐더러 영업부와 거래처 유착관계를 끊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박과장이 나에게 반품업무를 맡긴 것은 그러한 잘못된 관행을 뜯어 고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설사 박과장이 대형 대리점 사장들과 고참 영업사원들 요구를 들어주라고 해도 내가 응할 리 없으므로
그 점에선 그들에게 대접받기 좋아하는 박과장이 분명히 실수했다.
당연히 나는 칼 같이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했고 그 때마다 그들은 박과장에게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물론 박과장은 나에게 봐 주라고 했고 그 때문에 여러번 트러불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따라서 반품업무가 아니라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 즉, 자존심을 억제하기가 너무도 힘들고 괴로웠다.
어쨌던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제일 후진 업무를 나이가 제일 많고 또 고참 센터장인 내가 하는 것이다.
윗쪽의 상온센터에 센터장 5명 모두 나보다 후배이고 직급도 아래다.
그리고 그 센터는 건물도 크고 훌륭한데다 센터장 사무실도 멋지고 여직원이 있어 업무처리가 수월했다.
그런데 나는 그 상온센터 아래 쪽에 있는 넓은 운동장에 반품을 쌓아 놓고 업무를 보고 있었으며
우천 상관없이 매일 산처럼 쌓인 많은 반품을 천막으로 덮었다 벗겨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무슨 작업도구를 보관하던 창고인 듯한 작고 허름한 건물이 내 사무실이었다.
상황과 형편이 그렇다보니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내 특유의 일에 대한 열정이 우러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 센터 소속이고 중요한 반품업무 담당이지만 센터장 회의와 회식 등 모임에는 배척되었다.
그뿐 아니라 5명 센터장은 물론 다른 직원들도 나와 이야기 하는 것조차 드러내어 못마땅해 했다.
한번은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황급히 천막을 덮는 일을 도와 준 직원이 야단 맞았다는 소문을 듣고
그 직원에게 미안하다 하면서 앞으로는 반품 작업장에 오지 말고 어떤 상황이 되든 모른체 하라고 했다.
반품은 매일 들어왔는데 센터가 큰만큼 반품량도 엄청났으며 특히 월말에는 말 그대로 눈 코 뜰새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한강 이남과 경기 남부지역 전체를 커버하는 초대형 센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말에는 일손이 너무 부족하여 박과장 허락하에 인근 아파트에서 알바 아줌마들을 불러야 했다.
보통 5~7명이지만 명절이 낀 달이거나 성수기에는 10명도 불렀고 한달 평균 일주일에서 열흘 쯤 일했다.
물론 박과장이 심술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들어 줄 리 없다.
안양도 서울권이라 알바 일당이 서울과 비슷한데도 30%나 적은 일당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과장에게 더 말해야 소용없는 일이므로 일단 센터 부근에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소장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 부녀회 회장을 소개받았다.
그 아파트에는 과천종합청사 직원들이 많이 살았고 그다지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었는데
다행히 일하는 시간 조정만 가능하면 일당이 적어도 괜찮고 인원수도 원하는대로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7명 모두가 한참 일 잘하는 40대 초중반이었다.
아줌마들은 처음에는 아무 말없이 부지런히 일만 했고 사실 일 배우느라 다른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일을 가르쳐 주는 일 외에는 다른 쓸데없는 말은 일체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묻는 말 대답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아 그게 아줌마들은 매우 답답했다는데
그 상황에서 내가 뭐가 좋고 즐겁다고 아줌마들과 희희낙낙하겠는가.
눈치 빠른 아줌마들은 일 시작한지 며칠 안 되어 분위기가 어딘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일보다 떠들기를 더 좋아하는 그 농땡이 친구가 자세히 말해 준 듯했다.
아줌마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딱딱한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는데
그 아니라도 계속 일하다 보면 업무도 익숙해지면서 점점 친숙해져 스스럼 없이 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그리고 전보다 업무량이 많이 늘어났어도 아줌마들이 크게 도움되어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중에 특히 두 아줌마를 잊을 수 없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고맙고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 두 아줌마는 힘들어 하던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알바를 구하는 일은 물론 내가 장시간 자리를 비워도 모든 작업을 문제 안 되게 잘 처리 해 주었으며
월말에 바쁠 때는 골치 아픈 반품서 작성 작업을 집에 가져가서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매월 작업이 끝나 급료받는 날은 나의 퇴근시간을 기다려 꼭 한 턱을 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월급 날 한잔 할 때 그 아줌마가 뜻밖의 말을 했다.
지금 위쪽 본 센터가 굉장히 어렵다고 하던데 센터장님 경험이 그렇게 많으시면 모른체 하실 게 아니라
그 얄밉고 잘난 박과장 콧대를 실력과 능력으로 팍 꺾어 버리시는 게 어떠냐고
센터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해결이 안 되고 몇 달이 지나도록 밤 늦게까지 쩔절매고 있지 않느냐고
그런데 그것을 내가 해결해 주면 얼마나 멋지고 톨쾌한 일이냐는 것이었다.
"???.... 아줌마... 그거 순수한 아줌마 생각에요? 아님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제 생각도 그렇구요.. 여기 제 친구들도 모두 그래요..센터장님 실력이 아주 대단하시다 들었거든요?
저희들이 봐도 반품작업장에서 이런 험한 일이나 하고 계실 분이 아니신 것 같구요....."
난 그 때 취기가 많이 올라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순간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이 무슨 말인가.
이 아줌마 말은 내가 다른 직원들과 무엇이 다르며 과연 박과장에게 불만할 수 있느냐 그런 말 아닌가?
꼭 그런 말은 아니라도 그동안 윗쪽 상온센터를 방관해 온 것은 사실 아닌가?
그런가…
그럼 지금같이 이렇게 해선 안 되는가....
아줌마에게 갑자기 찔린 가슴이 아프면서도 어쩐지 내 특유의 열정에 시동이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두 아줌마가 반품업무를 깔끔하게 해 주겠다고 하여 마음 놓고 본 센터에 올라 갔다.
그 무렵 본 센터는 다음 날 출고상품 피킹작업을 매일 오후 4시부터 시작하여 밤 9~10시에 끝나고 있었다.
그리고 전날 밤에 피킹해 놓은 상품을 아침 7시반부터 오후 4시까지 출고해야 오후 피킹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센터 근무자 50명 가까운 인원이 매일 14~15시간씩 3개월 넘어 완전히 파김치가 된 상태였다.
영업과 물류는 원래 국경일과 토요일이 없어 평일과 똑 같거나 오히려 더 바쁘다.
그런데도 특근 수당이나 야간 수당은 없고 저녁 한끼와 소주 한잔이 전부다.
하지만 센터 관리자 박과장 입장에서 약 50명이 한달이면 그 비용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나는 본 센터처럼 늦게까지 하고 싶어도 운동장에 전등시설이 없어 어두워지면 그 시간이 퇴근시간이었다.
그래서 먼저 퇴근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왕따 당하는 처지에 어쩔 것인가.
처음 예상과 달리 센터가 조기에 안정이 안 되고 세 달 넘어 장기화되자 박과장은 고민이 매우 클 것이다.
나는 하루 중에 가장 바쁜 시간대를 택하여 전체적인 업무처리 상황을 체크하며 입출고 작업을 도왔는데
그렇게 일주일 쯤 도와 주면서 작업 상황을 세심하게 살펴보니 문제점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문제점의 정확한 원인을 알면 대안을 찾는 일은 나에게 어려운 일 아니다.
그러나 상온센터 배태랑급 센터장들이 5명이나 버티고 있는 상황 아닌가.
상온센터 비전문가인 내가 일주일만에 찾은 문제점을 10여년 경력의 그 센터장들이 모를 리 없다.
그래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그 대안으로 했을 때의 문제점을 면밀히 점검했다.
물론 지게차를 운전하여 상품을 피킹하고 상차하면서 꼼꼼히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반품업무를 마감하고 마침 바쁘게 돌아가던 피킹작업을 도와주다 차 마시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박과장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내게로 왔다.
다소 어색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커피를 권하며 수고가 매우 많으시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난 이미 마음을 비우기로 한 터라 같이 인사하며 통합 후 업무 안정이 너무 늦어짐을 걱정했다.
"예, 힘들어 죽겠습니다. 이 센터장님 어떻습니까? 해 보시니까...무슨 문제점 같은 건 보이지 않던가요?"
"허참.. 여기는 배테랑 상온 센터장이 무려 5명이나 있는 곳인데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합니까?"
"그렇긴 하지만.. 옆에서 제3자가 더 잘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내가 엉뚱한 말을 하더라도 비웃지 않고 들어 주겠습니까? 그렇담 한마디 할 수 있지요...."
"아! 있기는 있군요.. 어서 말하세요. 절대 비웃지 않을테니까."
나는 생각해 두었던 것 중에서 딱 한가지만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얼굴이 금방 확 붉어지면서 다짜고짜 내 팔을 잡더니 소고기구이집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는 그냥 센터 관리자일 뿐이지만 그래도 몇 년 물류밥을 먹었다고 맹탕 무지랭이는 아니었다.
내가 한 말이 얼핏 안개속 같아서 알아 듣기 쉽지 않을 수 있었는데 금방 알아 들은 것이다.
그날 저녁 모처럼 비싼 소고기와 술을 얻어 먹으며 내가 생각했던 다른 문제들도 모두 말해 주었다.
그는 연신 무릎과 손벽까지 치면서 아주 좋은 방법이라며 내일 당장 시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박과장은 오전 1차출고작업이 끝나자 전체회의를 열고 내가 제안한 방식으로 작업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내가 현장을 관리하며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며 그날부로 반품과 본 센터 업무 겸직을 지시했다.
그렇게 작업한 결과 첫날 작업시간이 1시간 넘어 단축되었고
그 작업방식에 익숙해진 일주일 후에는 2시간이 줄어 7시 약간 넘어 하루 업무가 끝나게 되었다.
종전의 퇴근시간 9~10시에서 7~8시로 빨라진 것인데 그것은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큰 효과였다.
전 직원이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태라 업무 개선에 적극 노력한 결과였다.
박과장은 토요일에 일찍 작업을 마치고 축하파티를 열었다.
이제 겨우 센터 통합목적인 본래의 기능을 하게 되어 정상적인 업무가 가능하게 된 자축파티인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물류본부장과 부장 과장 등 간부 몇몇까지 내려왔다.
정말 너무도 힘들고 지겨웠던 지난 4개월이었던 것이다.
그날 비로서 박과장과 나의 화해가 진정으로 이루어졌다.
본부장도 물론 우리의 화해를 만족해 하면서 전 직원들에게 축하 박수를 제의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박과장은 본부장에게 자기가 이 센터에 있는 한 나를 공장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공장의 저온물류센터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큰 초대형 상온센터는 더 중요하지 않느냐 하면서......
본부장은 나에게 공장에 안 가고 남겠는가 물었을 때 난 회사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 센터가 5개 지역센터를 통합한 첫 광역센터라 매우 중요하다면서 본부장은 박과장 건의를 수용했다.
그래서 나의 지방 공장근무가 지연된 것인데 여하튼 그날 나는 많이 취했고 너무너무 행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