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또 한 판의 바둑

2010. 8. 22. 오전 12: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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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판의 바둑  

 

옛말에 궁하면 통한다 하지 않던가.

그 후 직장을 옮기게 되어 하숙집도 옮겼는데 바둑에 미친 집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난 당시 4~5급 정도였는데 주인은 거의 1급 수준인 강 2급. 

당연히 그의 상대가 안 되는데도 주인은 퇴근해 오면 꼭 나를 불렀다.

직업이 전당포 감정사라 자리를 뜰 수 없어 직장에선 바둑 둘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틈틈이 바둑책을 보고 연구한 것을 나와 실전을 통해 허와 실을 검증한다 할까.

 

물론 4점짜리 접바둑이지만 나로선 고수에게 교육받는 실로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 하숙집에 있었던 약 10개월 동안 나의 기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했다.

4점 바둑에서 맞바둑 호선의 흑까지 따라 붙으려면 기원에서 1년을 살아도 어렵다. 

기원에서는 고수들이 주인처럼 매일 장시간 두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 또 직장 상사를 따라 회사를 옮기면서 하숙집도 옮겨야 했다.

새로 옮긴 직장은 번화한 곳이어서 기원이 곳곳에 있어 그게 또 좋은 기회가 되었다.

퇴근 후에 특별한 일 없으면 기원에서 보낸 것이다. 

기력이 많이 향상되었으면 키재기(실력 대결)를 해 보고 싶어 지는 건 당연.

오랜만이지만 이번엔 창에게 내가 먼저 연락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안부 몇마디 후 다짜고짜 기원으로 직행한 것은 이상할 게 없다.

 

결과는 어쩜 그렇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한 판을 두고나니까 이번에는 창이 그만 두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는 그동안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느라 전혀 두지 못했다며 더 두기를 포기했다. 

나도 당시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서로 거리가 너무 멀어 평일엔 어려워 주말에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창은 같은 회사에 같은 부서 여직원이라 하니 더 들으나마나 뻔한 일이다.

 

창이 짧은 시간에 날 잡기 어려움을 확인한 이상 이제 급히 서둘 일 없었다.

마침 오랜기간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혜어지고 모든 것을 때려치 듯 지내고 있을 때.

창에게서 급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교제하던 그 아가씨와 갑자기 결혼했다고.

그런데 결혼이 너무 이르다며 고향집에서 극열 반대하여 고민이 태산이라는데

자신을 돌봐 주던 누나도 역시 펄펄 뛴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살 순정 처녀와 27세 고집 청년의 활할 타는 불을 누가 끌 수 있겠는가?

창은 작은 절간을 찾아 말 그대로 달랑 물 한그릇 떠 놓고 식을 올렸다고 했다.

거참,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런 결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콧구멍 만한 삭월세 단칸방을 얻어 지금 같이 지내는 중이라는 것이다.

저런... 세상에 !!!

난 외식 예정을 바꾸어 절대 안 된다는 신혼방 구경 좀 하자며 창의 등을 떠 밀었다.

 

창의 신혼방은 허름한 개인집 처마를 이어 낸 우리 고향에서 말하는 골방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바둑만 생각하며 만났던 터라 빈손으로 간 상황인데

방도 그렇고 방에서 훤히 보이는 부엌도 텅비어 있고 세간살이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 부부는 직장에 다녔지만 누나와 부모에게 모두 드린 터라 무일푼이었다.

한 달치 삭월세도 직장 친구에게 빌렸다고 했다.

난 그 정경에 콧등이 찡하여 도저히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창은 그래도 오랜만이니 한수 하자며 바둑판을 꺼내 먼지를 닦는데.

나는 잠간 같이 나갔다 오자고 하면서 창을 끌고 나갔다.

많지는 않았지만 예금을 탈탈 털어 주며 당장 필요한 것을 사라고 명령했다. 

20살의 어리디 어린 예쁜 부인도 이제 내 조카 며느리 아닌가.

집안 아저씨가 왔다고 뭔가 챙기는 모양이지만 쥐뿔도 없는 부엌에서 무슨....

창은 완강히 거부했지만 내 성질을 아는 터라 결국 받더니 곧장 집으로 갔다.

 

그리고 셋이서 함께 시장을 보는데.

재래시장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겨 3륜 소형용달에 실었다.

그런데 내가 준 절반 돈으로도 제법 한 차가 되었다. 

남은 절반으로 쌀과 연탄을 샀다.

고기도 사서 어설프기 그지 없는 솜씨로 요리하여 치른 그 날밤의 축하파티.....

그 때의 묘한 음식 맛.....난 지금도 그 맛을 잊지 않고 있다.

 

거참! 창의 그러한 신혼생활이 행복일까? 불행일까?

양 쪽 어른들의 추상 같은 반대를 뿌리친 결혼이라 양가에선 아주 냉정했다.

양가 부모들은 형제들 접촉까지 엄하게 막았다. 

그래서 창 쪽에서 방문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리고 창의 중 고생의 어린 처제들만 부모님 몰래 드나들고 있었다.

창 부부의 직장 동료들 출입도 사정이 그렇다보니 방문을 사절했다고 했다.

 

나는 물론 시간만 나면 찾았는데 갈 때는 뭔가 한가지라도 꼭 준비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임신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굶으면 안 되므로 먹거리를 부족하지 않게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직계는 아니지만 27살에  얼마 후면 할아버지가 되는 것 아닌가.....^^

조카며느리는 창이 질투할 정도로 내게 잘 대해 주었다.

대개의 여자들은 남자끼리만 장시간 즐기며 보내는 바둑을 매우 싫어 한다.

 

담배 연기만 자욱히 뿜어 댈 뿐 재미가 하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난 여러집을 다녀 봐서 그것을 잘 안다..

그런데 이 예쁜 조카 며느리는 내가 가면 항상 예스이고 오케이며 띵호와였다. 

물론 바둑은 창보다 내가 훨씬 강했다.

결혼은 창이 먼저 했고 저렇듯 멋지고 예쁜 여자와 했으니 나의 완패였지만....

늦는 건 괜찮은데  마음에 드는 상대 찾기가 아무래도 바둑 같진 않을 것 같다.

 

여하튼 그동안 생각하지 않던 겷혼 문제를 나도 그 때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능한 조카 며느리 정도는 되는 여자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여러가지 여의치 못한 사정과 형편을 극복해야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결혼은 노력하면 가능한 바둑과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평생을 혼자 살기 싫으니 결혼을 해야 하고 또 상대도 스스로 찾고 싶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혼에 성공하면 일생일대의 중요한  한 판의 바둑을 이기는 것이다.

따라서 제일 먼저 포석을 멋지게 빈틈없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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