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초반 포석 일단 성공적

2010. 8. 22. 오전 1: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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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포석 일단 성공적

 

조카 며느리는 매우 상냥하고 멋진 미인이었다.

그랬으니 창이 부모 형제들을 등지며 단호하게 그 길을 갔을 것이다.

그 점은 나도 충분히 공감하며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창도 미남형이고 대학출신이다.

그 시절에는 그냥 제발로 찾아 오는 아가씨를 고르기만 해도 될 정도였는데

나는 추남에다 학벌도 떨어져 애초부터 가당치 않은 무모한 욕심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리 포기하는 것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

힘들어도 내 자신을 위한 일이고 한 평생을 같이 살고 늙을 배우자인 것이다.

난 부모님의 강경 반대를 물리친 창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긴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창에 비해 결혼 조건이 모두 다 형편 없는데 그래도 무조건 도전해야 하는가? 

젠장! 해 보자! 

대붕을 못잡으면 학 그도 어려우면 꿩이라도 잡을 터!

도전해 보지도 않고 말죽거리부터 머리 쳐 박고 엎드릴 것은 없지 않은가? 

 

언젠가 M사 공장 앞을 지나다 수 많은 아가씨들이 퇴근하는 것을 본 일 있는데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그녀들 모두 멋지고 예뻤다.

그런데 M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 입사가 그야말로 하늘 별 따기라고 했다. 

하숙집에 그 공장 사원이 몇 명있었는데 그들 말에 의하면.

그 공장 직원만 약 2천명이고 사무실 여사원도 400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제대 후부터 몇 년째 근무중인데 월급은 작은 개인회사인 나 보다 적었다.

 

결혼상대를 찾는 일이라 월급은 감수할 수 있는데 하늘 별 따기인 입사가 문제였다.

높은 사람 빽 없으면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는 회사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연줄의 이력서들이 항상 인사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했다. 

그야 어쩄던 일단 공장 퇴근시간을 기다려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전에 본대로 멋지고 예쁜 아가씨들이 끝 없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일단 먼저 입사부터 하고 다리 꼬아 넘어뜨리는 일은 나중에 연구해도 되는 일이다.

 

그날 저녁 정성을 기울여 이력서를 작성하여 그 직원에게 접수를 부탁했다.

현재 놀고 있지 않으니까 반 년에 안 되면 1년도 좋으니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그리고 입사 추천자란에 연필로 그 직원 이름을 적었는데 난 빽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음 날 그가 퇴근해 들어오자 마자 

이력서 내용이 모두 거짓 없는 사실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어떤 내용을 의심하는지는 모르나 난 물론 거짓으로 쓴 것은 없었다.

 

그럼 내일 인사계장을 만나 보라고 하지 않는가.

조금의 거짓 없이 모두가 사실이면 계장이 면담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직장 일이 바빠서 도무지 낮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겨우 그 공장 퇴근시간 직전에 도착하여 계장을 찾았다.

계장은 운전면허증을 보자 하더니 그 자리에서 이력서를 다시 작성하라고 했다.

어제 쓴 내용을 기억하고 있고 그대로 쓰는 것이라 어렵지 않았다.

 

계장은 곧 나를 인사부장에게 데리고 갔다.

50대 후반의 근엄한 타입의 부장도 한 가지 더 확인해도 되는가 물었다. 

뜻 밖에도 바둑 1급이 사실인가 묻더니 옆방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이력서 취미란의 바둑 1급.. 그 무렵 나의 기력은 기원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방은 별로 크진 않았으나 훌륭한 소파와 탁자에 고풍의 바둑판이 있었으며

부장은 백통을 나에게 밀어 주고 흑통을 잡더니 먼저 돌을 놓았다. 

그날 부장과 나는 두 판을 두었다.

첫 판은 사뭇 긴장하여 두었지만 두 판째는 분위기가 편해져 부담없이 두었다.

부장은 나 보다 한 급수 아래.. 그러나 몇 집을 지고 이기는 것으로 끝냈다.

 

이상이 내가 25년을 근무한 M사의 입사 스토리이다.

그리고 목적한 결혼 상대 찾는 일은 실패했는데 그 일은 앞으로 소개하겠다.

인사부장이 베테랑급 운전자에 바둑 고수인 나를 입사시킨 이유는 있었다. 

나는 그 다음 날 입사하여 전에 근무한 회사 직무인 자재과로 배속 되었는데. 

업무와 상관 없이 부장은 신입사원 연수교육 때마다 언제나 나를 불렀다. 

그는 운전면허가 없었고 교육기간 내내 회사와 연수원을 동시 출근했던 것이다.

 

부장은 사원연수교육 때 교육을 주관하며 대부분 연수원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물론 부장 강의시간 외에는 별실에서 나와 바둑을 두었던 것이다.

요즘 같으면 어려운 일이지만 그 당시는 그런 부장을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그 부장은 M사 회장과 친척 뻘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년이 가까운데도 어쩐 일인지 중역 발령이 없어 불만이 많은 듯 했다.

그리고 결국 나의 입사 1년 후 그 부장은 정년 퇴직했다.

 

공장 간부들 중에 나의 바둑 친구는 또 있었는데 인사과장이 그 한 사람이었다.

그는 40대 중반이었고 부장과 기력이 비슷하여 서로 강력한 적수였다.

물론 그 과장도 내가 회사생활하는데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공장 총책임자 공장장과도 가끔씩 두었는데

그렇듯 고위급들과 친하게 지낸 탓에 좋은 일도 있었지만 힘든 일도 있었다.  

부장 퇴직 후 직속상사인 자재과장이 왠지 나를 잡아 먹지 못해 안달한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나 그 과장은 나를 노골적으로 미워했다.

난 그 부장에게 어떤 말도 한 일 없었고 또 부장 역시 나에게 물어 온 일 없었다.

그런데 부장이 퇴직하고 나니까 하찮은 일에도 트집잡는 것이었다. 

난 그 무렵 결혼 상대 찾기에 실패하여 낙심천만 해 있던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울적해 죽겠는데 견디다 못한 나는 바둑의 초 강수를 던졌다.

원래 내 성격에 맞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었던 일을 해 버린 것이다.

 

공장장은 상무급 중역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그 상무에게 불려가 바둑을 두었고 상무가 약간 강했다.

그 공장장을 찾아가 사정상 그만 두게 되었다며 사직인사를 한 것이다. 

상무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구체적 사직 이유를 물었다.

난 그냥 조용히 나가고 싶다고 했지만 대략 감을 잡았는지 기다리라고 했다.

다음 날 자재과장이 나를 부르더니 마지 못한 말로 오해했다며 사과했다. 

이렇듯 회사생활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순탄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여러 명의 중간 간부들 경계대상 0순위 인물로 찍혔다..

그 때 난 하급 직원이라 잘 몰랐지만 누군가 악질적으로 모함했던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가끔씩 창의 집을 찾았다.

그동안 예쁜 첫딸을 낳았는데 창에게는 딸이지만 내게는 손주 딸이다.

거참, 그 손주 딸을 창보다 내가 더 예뻐하고 귀여워 했다. 

그런데도 창의 고향집에선 계속 얼음장 처럼 차갑고 냉냉했다.

그러나 처가에선 어쩔 수 없었는지 결혼식을 올리라고 허가했고

결혼 비용을 부담하여 결혼식까지 올려 주었다.

 

이 때 창과의 바둑은 단연 내가 우위였지만

그러나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혼 문제에선 완전 KO패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 결판난 것은 아니며 7전8기라고 하지 않는가? 

결혼 문제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런데 나는 나이만 먹고 있는데 창은 더 나아가 조그만 집을 구입했다.

그 때도 구입자금이 많이 부족하다 하여 군말 없이 거금을 빌려 주었다.

 

중반의 바둑 전적은 표면상 1대1 무승부 그러나 질면에선 비교 안 된다.

그리고 내가 방황하며 바둑을 멀리 했을 때 창은 다시 바둑에 열중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까맣게 잊고 지냈던 꽁이 문제가 된 것이다.

 

명절에 고향에 들렸다가 꽁의 실력이 막강함에 크게 놀란 것이다.

서로 엇 비슷한 맞수였지만 어쨌던 2 대1로 졌으니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놀란 사람은 꽁이었으니 그야말로 희한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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