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생 초반전(初盤戰) !

2010. 8. 22. 오전 12: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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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초반전(初盤戰) ! 

 

바둑!

애호가들은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나와 바둑은 그야말로 특별하여 인연이 유별을 넘어 신비하다고 할 정도다. 

바둑과의 인연....

그것이 인연인지 내가 그것을 활용한 것인지는 딱히 말하기 애매한데

내 인생에서 바둑을 뺄 수 없고 이 글을 읽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둑은 초반의 포석과 중반의 세력(勢力)운영이 중요하다.

고수들은 초반 포석에서 승패가 거의 결정되는데

중수들은 중반 쯤에서 그리고 하수들은 끝까지 가야 결판나는 게 보통이다. 

우리 인생도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그리고 계획 인생을 사는 사람과 그때 그때 임기웅변 사람의 차이는 많고 크며

마지막 한 번의 기회와 실수로 인생이 뒤 바뀌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바둑이 꼭 그렇다.

그래서 바둑은 마지막 한 수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 끝내기 한 수 때문에 승패가 뒤 바뀌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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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희로애락에 대하여.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말 하겠으나.

나는 기쁘고 행복했던 기간은 약 10% 이고 20% 정도가 고통과 슬펐던 기간

그리고 남어지 70%를 보통의 기간으로 본다.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 중에서 기쁨과 행복을 알게 또는 느끼게 해 준사람은 극히 적은 수이며

고통과 슬픔을 안겨 준 사람이 그 보다 훨씬 더 많다고 본다. 

전자의 사람들에는 특별히 기쁘거나 행복은 아니라도.

크던 작던 나에게 직접 도움을 주었거나  간접 도움을 준 사람도 포함된다.

또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경우도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이고 친척인 '창' 이 바로 그 경우다.

창은 나이가 나와 같은데 생일이 빨라서 학교는 1년 선배다.

그리고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의 2녀 4남중에 2남이고

창의 아버지가 나의 재종(6촌) 형님이라 창은 나에게 7촌 조카가 된다.

 

나는 동네 친구들에 비해 별로 어렵지 않게 자란 편이지만

그러나 창은 그런 나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동네 제일 부자집이었다.

따라서 나보다 어려웠던 다른 친구들은 말할 나위 없다. 

동네 친구 중에 형편이 몹씨 어려워 초등 밖에 못 다닌 '꽁' 이 있었다.

학교를 못 다닌 때문인지 항상 창과 나에 대한 대결의식이 강했다.

바둑을 두면 온갖 꽁수와 암수를 써서라도 꼭 이기려고 기를 썼다. 

 

★ 창 : 그의 이름 끝자이고 기풍(棋風)도 창처럼 뾰죽하여 얻은 별칭.

★ 꽁 : 성이 공 씨인데다 바둑 둘 때 '꽁수' 를 좋아 하여 얻은 별칭. 

 

우리 세 명은 10대 중반일 때 바둑실력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난형난제였다.

그런데 창은 학교와 학년이 높아 체면과 자존심상 지면 곤란한 입장이었다. 

나 또한 자존심이 창 이상이라 지면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괴로워 했다.

꽁도 바둑만은 창과 나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꽁의 바둑실력이 만만치 많아서 창과 나는 항상 골치를 앓아야 했다.

당치도 않은 우월감이 꽁에게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꽁과 비슷한 형편인 동네 친구들이 꽁 편을 들면서 창과 내가 지면 약을 올렸다.

 

창과 나는 매일 학교를 가야 한다.

그런데 꽁은 온 종일 바둑판과 씨름을 하고 있어 그것이 걱정이었고 문제였다.

하지만 창과 나는 불만을 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나는 창에게도 '면도날' 을 갈았다.

창은 바둑책이 있었는데 얌체처럼 자기 혼자만 보며 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옛날 책이라 손때가 꼬장꼬장 했는데 당시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책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지만 나는 친척인데 빌려 주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물론 경쟁 때문이지만 그렇더라도 나한테까지 그럴 수 있는가?

난 두번 다시 빌려 달라 하지 않았다. 

사실 별 것도 아닌 헌 바둑책 한권이다.

그것이 결국 창과 나 사이에 평생을 건 오기와 고집 싸움의 원인이 된 것이다.

물론 창과 나는 서로 터 놓고 경쟁하자고 말한 일은 없다.

 

그 때 난 중3, 창은 고1.

바둑 때문에 시작된 고집 싸움은 나의 고교 졸업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른 친구들도 물론 바둑을 두었지만 우리 셋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창과의 싸움은 창이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일시 중단.

하지만 다음에 만날 때를 대비하여 게으름을 부려선 절대 안 되었다.

난 꽁과 1년을 더 싸우다 입대했는데 그로서 청소년기의 1라운드는 끝났다.

 

그 경쟁은 제대 후 사회생할에서도 계속되었다.

힘든 서울생활의 고달픔을 기원을 찾아 바둑으로 풀면서 보낸 것이다.

그에는 물론 꽁과 창에게 지기 싫은 고집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생활은 자존심과 고집으로 될 턱이 없다.

창은 서울로 시집간 큰 누나집에 머물면서 필요한 도움을 다 받고 있었다.

나에겐 무척 힘든 취직도 창은 누나가 있어 별 어려움 없었다.

 

나는 취직과 숙식 등의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창은 직장이 마음에 안 든다며 그만 두고 몇 달씩 놀아도 문제가 없었지만.

나는 하숙집에서 쫒겨나면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서울에서 같이 지내고 있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창을 만나 한 판 두었는데. 

어쩐 일인지 창이 전 보다 훨씬 강해서 난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내가 살기 위해 일하느라 정신없는 동안 창은 바둑만 둔 것이 틀림 없었다.

두 판을 연거푸 형편 없이 패하고 나니 더 두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의 만남이라 식사라도 해야 했지만 난 급한 약속 핑게를 대고 혜어졌다. 

그리고 며칠을 뜬 눈으로 밤을 새면서 어떻게 하면 창을 이길 것인지 연구했다.

그러나 일 하면서 실력을 단 기간에 늘릴 수 있는 길은 없다.

게다가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창과 격차는 좀처럼 줄이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그리고 창 역시 계속 둘 것이 뻔하다.

그러면 나는 창보다 두배 이상 노력을 해야만 겨우 따라 붙는 정도일 것이다.

내가 창을 제치고 앞서려면 3배 이상 피나는 노력을 해야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나의 사정과 여건은 어림 없었다.

그래서 자주 만나자고 말은 했지만 그 후 오랜기간 연락을 끊고 지냈다.

만나면 바둑을 둬야 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은 이상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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