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중반전의 승(勝)과 패(敗)

2010. 8. 22. 오전 1: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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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전의 승(勝)과 패(敗) 

 

꽁은 약간의 신체장애가 있어 군 입대를 면제 받았는데

그래서 우리가 학교와 군 생활할 때 사회에 먼저 일찍 진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목수였던 자형에게 열심히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나와 창이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꽁은 상당한 기술자가 되었고.

내가 취직이 어려워 전전긍긍할 때 그는 목수들 우두머리 도목수였다.

그래서 쥐꼬리 월급에 허덕일 때 꽁은 제법 큰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창과 나는 꽁의 그러한 성공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다 들리는 소문이 노가다 일을 한다는 정도라 그러려니 했었다..

노가다는 백날 해 봐야 몸만 상하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꽁은 창과 내 소식을 왠만큼 알고 지냈다고 한다.

고향 인근지방에서 지냈기 때문에 고향 출입이 잦았던 모양이다.

고향에는 이상하게도 창과 나의 일들이 비교적 상세히 알려지고 있었다.

 

꽁은 애초부터 다른 친구들은 경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직 창과 내가 대상이었다.

가진 것과 배움은 비교가 안 되지만 머리와 노력으로 결판 내겠다 했다고.... 

당연히 바둑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날이 궂은 장마철과 일이 거의 없는 겨울철엔 기원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것도 그냥 두면 정신이 헤이해 진다며 꼭 내기 바둑을 두었다는 것이다.

 

바둑을 아는 사람은 그 차이를 잘 안다.

얼마라도 내기가 걸리면 바둑돌을 놓는 자세부터 달라지는 것이다.

띠리서 기력이 쑥쑥 빨리 늘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꽁은 경제적 여유가 있어 내기 바둑에 부담될 일도 없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꽁이 바둑에 쏟은 열정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서울의 나와 창의 기력을 알 수 없어 언제나 궁금했었다고....

 

그래서 무조건 시간만 있으면 계속 두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가 사는 지역의 기원 사람들은 모르는 이들이 없게 되었고.

꽁의 상대 역시 한손으로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고 했다. 

한마디로 그 지역의 바둑 고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도 내기 바둑에 잘 응하려 하지 않는다는데

아무튼 지방이라 해도 그 정도 기력이면 대단한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제는 창과 내가 절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두어 보니 옛날처럼 막상막하 맞수라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명절에 창은 가족과의 불화로 고향에 오지 않았는데.

나는 궁금해 하는 꽁에게 창의 기력은 나 보다 더 강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것은 꽁의 분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자존심이 그렇게 말하게 했다. 

 

꽁의 표정은 금방 심각하게 돌아갔다.

그게 그럴 것이 자신은 이제 더 이상의 기력 향상이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우선 그 지방에 월등한 고수가 없으니 이제 누구에게 배울 것인가? 

바둑책을 보며 연구해야 하는데 그건 꽁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난 꽁의 심각한 얼굴을 즐기며 그건 네가 해결하라며 약 올리 듯이 말했다.

 

여하튼 상경 길 내내 복잡한 심정을 어쩔 수 없었다.

바둑도 바둑이지만 꽁은 큰 돈을 벌었다고 했다.

내색은 않았지만 그게 얼마나 부럽고 부담되고 뼈 아픈 소리인가? 

그는 물론 진작부터 일했고 기술을 배웠으니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가 늦긴 했지만 어쩜 노력을 더 많이 안한 것도 문제인 것이다.

그래도 꽁의 결혼이 창 보다 더 빠른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꽁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꽁의 부인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꽁은 과연 어떤 여자와 결혼 했는지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돈은 앞으로 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벌지 못할 때 꽁은 벌었지만 앞으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하튼 서울역에 내렸을 때는 이생각 저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창도 나에게서 그 말을 듣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벌었다면서 언제 어떻게 기력이 그 만큼 될 수 있는가?

우리가 경험하여 잘 알지만 바둑과 생업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회사생활이 차츰 나아지는 듯 했다.

그 땐 무대뽀 전통시절이었는데 400% 상여금이 갑자기 800%로 올랐다.

또 무대뽀가 바둑 애호가인 덕분에 프로기사와 대국할 기회까지 있었다.

 

대기업에 바둑 써클을 만들게 하고 프로기사들을 강제 배정한 것이다.

회사마다 한 두명씩 토요일 오후에 몇시간을 지도하도록 했다.

우리 공장에는 한국기원 소속 프로 四단 한00 사범이 배정되었다.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일반인은 모르지만 바둑 애호가들에겐 그들은 우상이다.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데 직접 지도대국을 받고 그것도 무료 아닌가.

 

그 무렵 시내 본사에서 온 중역(이사)은 바둑이 아주 강했다.

그리고 주말 써클 모임시마다 꼭 나를 찾아 같이 두자고 하는 것이었다.

한 사범도 우리의 게임에 관심을 두었고 복기하며 패인을 찾아 주었다. 

그 중역은 나의 부서 직계라인 본사 최고 수장이었다.

그 때문에 그 중역이 그 직위에 있고부터 회사생활이 순탄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역 도움으로 신규사업의 스태프 파트로 부서를 옮겼다. 

 

그때 회사에서 저온상품(냉장 냉동상품) 판매를 처음 시작했고

그 영업부서 지원업무인 물류업무를 내가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물류업무에서 20여년을 보내며

내 인생 중반의 열정을 모두 쏟아 불태웠다고 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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