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바둑
'꽁'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잊을 수 없는 내기 바둑을 둔 일 있었는데
방문에 대한 일도 잊을 수 없으며 그 이야기를 두번에 나누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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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때가 28~9세?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혹한의 그해 년말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들뜬 마음으로 경부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고향 친구'꽁'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꽁은 고향에서 조금 더 아랫쪽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오랜만의 고향인데도 창 밖을 보며 눈인사로 지나쳐야 했다.
고향집에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이러진 않을텐데.....
어머니는 겨우 회갑을 넘기시고 제작년에 돌아가셨다.
막내인 내 결혼을 꼭 보고 싶다 하셨는데.....
그래선지 고향이 더욱 아프게 와 닿으며 자꾸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꽁은 미리 연락한 터라 역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방이지만 읍단위 지역이라 시가지가 제법 넓었고 집은 시내에 있었다.
그런데 집이 매우 허름했다.
"얌마! 넌 목수잖어? 확 뜯어 고치지 그래? 남의 집만 짖지 말고.."
그건 중이 제 머리 못 깎아서가 아니라
후에 여유 있을 때 다시 짖는다며 건물보다 넓은 대지를 보고 산 것이다.
목수인 자형이 시키는대로 했다는데 꽁도 그런 집이 마음에 들리 없다.
"그래도 너 정말 대단하다! 난 여태 집은 커녕 결혼도 못했는데 말야."
꽁의 부인은 전형적인 시골타입이었다.
평범한 외모에 키가 작고 뚱뚱했는데 애 둘을 낳고 몸이 갑자기 불었다고 했다.
그래서 꽁과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꽁은 180 이 넘는 키다리 전봇대였고 동네 친구들 중에서 제일 컸다.
난 173cm 인데도 한참 올려 봐야 하니 170도 안 되는 창은 말할 것 없다.
그런데 살이 너무 없어서 뼈에 가죽을 씌운 듯한 깡마른 인상이었다.
그리고 굵은 뼈에서 나오는 완력이 매우 강해 팔씨름은 누구도 당하지 못했다.
아무튼 부인의 키가 꽁의 가슴이니
부부가 같이 걸으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시골 여자들의 숫기 때문일까?
나와 대화는 커녕 얼굴을 마주치기조차 싫다는 듯 계속 피하기만 했다.
뭔가 한답시고 시장 또는 부엌에 들어가 대화는커녕 통 볼 수조차 없었다.
옛날식 집이라 부엌이 넓으면서 컸고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는데
저녁 밥상도 꽁과 둘이서 먹으라며 부인은 방에 들어 오지도 않았다.
우리가 식사 후 바로 기원을 간 것도 어쩜 부인의 주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야! 애기 엄마가 나 온 것을 싫어 하는 거 아니냐?"
"아녀! 절대 아녀! 그 무신 씰데 읎는? 내가 니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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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의 단골 기원이고 주인과 친하다는데 저녁시간이라 손님은 몇명 뿐이었다.
꽁과 딱 한판 두었을 때 남자 두 명이 들어 와 우린 각각 그들과 두게 되었다.
즉, 주인이 혼자 바쁘니까 우리가 그들을 상대해 주는 것이다.
나의 상대는 30대 초 중반인데 나에게 기력을 묻더니 무조건 4점을 깔았다.
대개 고수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가끔씩 날카로운 수를 보였지만 실수가 많고 잦아 쉽게 내가 이겼다.
상대는 두 번째 판을 두며 심심하니 기료(棋料:기원 이용료)) 내기를 제의했다.
그러한 내기 제의 역시 하수가 고수에게 먼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응했는데 기료 다음엔 담배 그 다음은 커피 내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세 판을 다 이기다 보니 이젠 미안해서 그만 두자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난 오랜기간 바둑을 두면서 이런류의 사람들을 수 없이 많이 겪었다.
그래서 이제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잘 안다.
예상한대로 지금까지 내기한 모두를 마지막 한판으로 묶어 결승하자고 제의했다.
보통 흔히 하고 있는 내기 방식이지만 그러나 그런 내기는 문제가 있다.
쌍방의 승패 횟수가 같다면 최종 한판으로 한 쪽에 떠 넘기는 결승 방법이 맞다.
그런데 이 경우는 세 판 모두 내가 이기지 않았는가?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자신이 지면 세 번에 잃은 것 두배 난 세 번에 딴 것만 주기로 하자고 수정했다.
돈은 몇 푼 안 되지만 하수에게 지고 비용까지 물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제 그의 진짜 본 기력이 나오겠지만 나는 지더라도 세 번 딴 것만 잃는 것이다.
내리 4판을 지고 나서 즉, 나의 기력을 잘 알고서의 도전이고 금액도 전보다 몇 곱절이다.
하지만 그와 계속 더 두는 것이 지겨워 그가 포기하기를 바라고 대폭 올려 수정 제의했다.
그가 지면 6배를 내고 내가 지면 4배 금액으로 올리면 하겠다고 한 것이다.
즉 그는 그 때까지 잃은 것의 두배를 나는 그에게 딴 것에 한번 것을 보태어 4배가 된다.
어차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내기라면 하루 일당은 돼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요즘 가치로 환산하여 그가 지면 7만원 쯤되고 난 5만원 약간 넘는 금액이다.
그런데 그는 주저하지 않고 좋다고 응하며 먼저 돈을 꺼내 바둑판 밑에 묻는 것이었다.
얼굴도 밝아 자신있다는 표정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이해를 위하여 당시의 내기에 대한 관행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애호가들이 기료를 내며 기원을 찾는 것은 자신보다 강한 고수와 두기 위해서이고
내기 바둑은 몇 판을 지도하는 댓가 형식으로 고수가 제의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고수의 제의를 하수는 거부하기 어렵고 또 두면 당연히 지게 마련이다.
왜 하수인가? 고수보다 수가 약하니까 하수인 것이다.
접바둑 고수들은 정확한 치수로 두지 않으므로 하수들에게 거의 패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개의 고수들은 자신의 내기 제의를 거부하는 하수와 대국을 기피한다.
즉 맨입은 곤란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내기 제의는 고수들 권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상대는 새까만 하수 주제에 나에게 먼저 제의해 온 것이다.
어쩌면 그때 꽁의 상대도 이 사람과 일행이라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지 모른다.
나는 잠시 꽁의 뒷모습을 본 후 그 와의 내기 바둑을 시작했다.
그의 기력이 진짜가 아님을 짐작하긴 했지만 한 두급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바둑을 기도(棋道)니 뭐니 하지만 치사한 얌체 사기꾼들이 많다.
진짜 기력을 대폭 낮추어 속이며 내기를 하고 다니는 비열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바둑에서 한 두급 차이 특히 3급이상 고급에서는 한점이 매우 크고 대단한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나와 비슷한 한 급정도 아래였고 두 점이 정확한 치수였다.
그런데 4점을 접고 두는 것이다.
그런만큼 마지막 판의 그의 손가락 끝은 첫 수부터 예리한 칼 바람이 휭휭 불었다.
그러나 나는 잠시 생각한 후 그대로 진행했다.
객관적 입장의 기원원장은 한 쪽이 기력을 속인 내기를 무효화 시킬 수 있는데
그는 다소 모호한 1급 차이가 아닌 3급이나 속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중단해야 하고 미치지 않은 이상 계속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난 그 미친 놈이 되기로 한 것이다.
몇 판의 내 바둑을 우습게 보고 실실 웃는 꼴에 그만 배알이 뒤틀린 때문이다.
또 그 때는 초반 포석이 끝난 상태라 이제와서 속았다고 말하기도 싫었다.
4점이하 접바둑은 사실 나의 전문이다.
원래 강하다 듣는 터에 접바둑 전문 하숙집 주인에게 10개월간 단련받은 터였다.
그렇더라도 오늘 이 경우는 당치도 않은 무리에 또 무리임이 틀림없었다.
바둑을 오래 둔 고수들은 대부분 접바둑을 잘 둔다.
특히 몇 십년 해 묵은 고수들은 짧은 기간에 올라 온 동급들과 비교하면 안 된다.
오랜기간의 실전 경험으로 그만큼 전략 영역이 넓고 수가 다양한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접바둑 기력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나의 바둑도 제법 오래된 바둑이고 접바둑에 자신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 사람과 같은 강수에게 4점바둑을 둔 일 없었고 그후 오늘까지도 없다.
오늘까지 없는 것은 물론 이 사람에게서 얻은 경험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