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외로운 별 이야기

2010. 9. 14. 오후 6:59:21

글자

나의 직장생활... 물류(物流) 이야기

아마 그 때가..1989년이지 싶다.
전국이 떠들석 했던 88서울올림픽 여운이 막 사라진 다음 해였으니까.
2박3일 교육과정의 회사 연수원에 한 눈에 봐도 60대 초반의 일본인 듯한 강사가 통역과 함께 들어왔다.


"한국물류(韓國物流)의 현실과 개선 방향"


그 강사가 강의할 주제이고 이번 교육의 핵심이었다.
번거롭기 그지없는 통역을 거쳐 꼬박 하루 반을 교육받았는데 그 때 받은 충격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거의 만 하루 반을 현재 일본물류의 실상과 한국물류를 비교하며 그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보냈고
남은 시간을 한국물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그의 견해로 마무리 했다. 
그 강사 이름이 '하라' 상이라고 했던가.. 그는 당시 일본의 저명한 물류전문가라고 했다.

내가 그의 강의를 들으며 크게 충격받은 것은 우리의 물류 현실이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한 때문이었다.
즉, 우리도 하고자 하면 얼마던지 할 수 있고 또 하나도 어렵지 않은 아주 쉬운 일인데도
그래서 일본은 새벽에 일어나 벌써 저 만치 멀리 가고 있는데 우리는 게을러 늦잠을 자고 있는 격이었다.
전혀 힘든 일도 아니고 일본은 진작부터 하고 있는 일을 우리는 아예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강사는 한 달 전에 입국하여 국내 몇 개 대기업을 돌며 국내물류의 실상을 면밀히 체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데이타화하여 일본의 동종업계와 비교하며 '물류혁신'이 왜 필요한지 알기 쉽게 설명했다.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D사의 년간 매출 순이익이 5%를 넘지 못해 겨우겨우 지탱하는 상황이었는데
그의 말대로 하면 특별한 투자없이 기존에서 20% 이상의 이익도 가능하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알기 쉽게 말하면 우리는 '비효율적 물류관리' 로 인하여 매년 15% 이상을 낭비하고 있는 샘이다.
그리고 그가 하나하나 지적한 우리의 문제점과 그것을 개선한 일본과 차이는 흔히 듣는 이론이 아니었다. 
분명한 현실적인 문제였고 우리도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당장 가능하고 또 실적으로 나타날 일이었다.
그 교육은 업무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수 십회에 걸쳐 올릴 이 이야기는 나의 직장생활 25년의 일종의 '회고록'일 수 있다. 
그 때문에 나의 모든 면들 특히 부끄러운 치부들이 적나라 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지식한 내 성격이 나의 인생 행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말해 줄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원칙을 중시했으며 납득되지 않으면 뜻을 굽히지 않았고 고집이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그랬지만 현실과 타협한 때도 많아 철저히 그렇게 살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회사 직무에 대해선 대체로 원칙대로 한 편이어서 순탄하지 않았고 애로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글도 그렇듯 순탄하지 못했고 애로가 많았던 직장생활을 글로 남기는 것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멋지고 보람되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글은 훗날 추억이 그리울 때 또 내 자식들이 좀 더 장성하여 읽기를 바라고 기록해 두는 것이며 
결코 자랑스럽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에 따라 유익한 점도 있지 않을까.
여하튼 내가 반생을 보낸 회사생활은 그야말로 나의 모든 것을 쏟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물류(物流)'가 뭔지 이해해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므로 간단히 소개하며 시작하겠다.


*************************


물류란 말 그대로 물건(상품)의 흐름을 뜻한다.
따라서 농부들과 어부들이 수확한 농산물과 수산물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일체의 과정이 물류이며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이 여러 경로와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도 물류이다.
다만, 그 중간 과정에서 도매 또는 소매 등의 영업행위는 아니며 '물품이 이동하는 경로만 물류'이다.

그리고 상품이 생산과 동시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고 여러 과정을 거치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상품이 '생산 당시와 똑 같은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소비자들이 좋아하고 제 값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상품이 여러 경로를 '이동할 때마다 본래의 상태를 온전히 유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또 '불필요한 경로를 줄이는 일''그에 따른 비용을 줄이는 일'도 물류의 중요한 부문이다.

또 상품을 일정기간 보관하는 방법에서 모두가 알다시피 상온(常溫)과 저온(底溫)으로 구분하는데.
상온(常溫)상품이란 '일상의 온도(섭씨 10도 이상)' 에서 보관하는 상품을 말하며
저온(低溫)상품은 '섭씨 0~10도 이하 또는 영하 온도' 에서 보관해야 하는 상품을 말한다.
그래서 상온상품보다 저온상품 물류업무가 훨씬 더 까다롭고 유통기한도 짧아 전문성이 더욱 요구된다.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만 이 글을 읽으면 알 수 있고 이해도 더 쉬울 것이다. 


*****************************   


나의 직장생활은 약 40여년.
D사는 예나 지금이나 J사와 함께 국내 굴지의 종합식품회사로 알려진 대기업이다.
나는 그 D사에서 약 25년을 근무했고 마지막 7년은 회사 사직 후에 물류법인회사를 창업하여 운영했다. 
그리고 회사생활 25년 중 마지막 6년을 가족과 떨어져 지방 공장에서 근무했는데.
나의 근무부서인 '저온물류센터'가 아파트 부지로 매각되어 지방의 그 공장으로 이전 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온물류센터가 지방 공장으로 이전할 때 당연히 나도 가야 했지만 바로 가지 못했다.
그 공장의 관리 책임자(관리부장, 과장)가 공장장을 앞 세워 내가 가는 것을 적극 반대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려가면 그 두 관리자가 그만 두겠다며 공장장을 협박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래선지 물류본부장은 나를 공장 물류센터로 보내지 않고 안양 '상온물류센터'로 발령했다.
나의 전문이 '저온상품물류'이고 '상온상품물류'가 아니어서 흔히 말하는 좌천이었다.  

그럼 그 공장의 부장과 과장 두 간부가 왜 무엇 때문에 사직서 운운하며 나를 반대했는가.
회사에서 그동안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먼저 그 설명을 해야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공장의 두 간부가 왜 사직서를 써 들고 반대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해될 것이다.
난 입사 후 몇 년을 자재과에서 근무하다가 신설부서인 '냉장 냉동상품 물류센터'로 옮기게 되었다.


물류업무(物流業務)와 물류센터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전 과정의 모든 업무가 물류업무임은 앞에서 말했다.
상품판매는 당연히 영업부가 하지만 '주문과 결재업무' 만 하고 상품의 수 배송은 물류센터에서 한다.
간단히 말해서 나의 주 업무인 물류센터 업무는 '생산공장과 영업부서 중간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즉 영업은 고객에게 주문받은 상품을 물류에게 고객이 원하는 날과 시간에 배송을 의뢰하고  
물류는 영업에게 의뢰받은 상품을 공장에 생산의뢰하여 생산되면 고객에게 배송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것이 뭐가 그리 대수로운가 할지 모르나 종전과 비교하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정도로 크게 다르다.
전에는 공장 임의대로 상품을 생산했고 영업 측은 그것을 판매하느라 매일 쩔쩔 매야 했다.
설령 공장에서 고객에게 인기없는 상품을 생산해도 영업은 무조건 그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회사차원에서 보면 영업부서보다 생산공장 파워가 더 강하고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물류시스템 가동 이후부터 공장은 고객이 원하는(영업에서 주문받은) 상품만 생산하게 되었다.
즉 영업측이 요구하는 상품만 생산해야 하는 '맞춤생산'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전에는 창고에 팔지 못한 재고가 항상 쌓여 있었으나 주문상품만 생산하여 남는 재고가 없다.
따라서 장기간 판매되지 못하고 창고에서 썩던 막대한 '재고금액 손실'이 없거나 대폭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공장파워의 우위가 영업 쪽으로 기울어 공장들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때까지 공장들은 매월 목표생산량(물량 : ton)이 책정되고 그것을 달성하면 성과급이 주어졌는데
공장 입장은 고객들이 원하는 상품 상관없이 무조건 중량이 많이 나가는 상품 생산이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생산하기 좋은 상품 몇가지만 집중 생산하면 목표달성하던 일이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고객이 요구하는 상품으로 목표 톤수를 채워야 성과급을 받는다면 성과급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문제는 이 시스템의 성공 여부가  '고객 수요예측의 정확성'에 있고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점이다.
만일 수요예측이 틀리면 전처럼 고객의 요구 상품이 부족하여 못 팔거나 남아서 창고에 쌓이게 된다.
그리고 정작 영업 측도 판매할 상품(고객수요)을 정확히 예측 못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시장 특성상 고객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엉뚱한 제품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정은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고 우리 회사도 전국 300여개소 대리점 모두가 예외없이 똑 같았다.

따라서 귀신이 아닌 이상 전국 어디서 언제 어떤 상품이 얼마나 팔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시스템이 바뀐 후부터 영업부는 '무조건' 시도 때도 없이 맏겨 둔 것처럼 상품배송을 요구했다.
만일 요구한 상품이 없어 배송하지 못하면 '영업목표달성 미달책임'을 물류파트가 떠 안아야 했다.
그래서 물류파트에 수요예측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했고 저온상품부문에서는 내가 그 책임자로 있었다.
물론 난 귀신은 못되었지만 비교적 예측이 잘 맞는다 하여 직속상사와 영업에게 왠만큼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IMF 때 40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50대인데도 살아 남았다.
전에는 물류업무가 영업부 소속이었는데 공장은 항상 영업 쪽에 왜 빨리 못파느냐 큰 소리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시장이 급속도로 변하면서 고품격 양질의 물류서비스가 요청되어 영업에게서 독립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국내에서 신물류시스탬을 도입한 선두 그룹이었고 처음인 터라 애로가 무척 많았다.

앞에서 간략히 언급했듯 저온상품은 햄 우유 신선육 등이 주류지만 야채 과일도 저온상품으로 분류된다.
냉동상품은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고 종류도 수없이 많아 구태어 소개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상온제품 물류보다 저온상품 물류업무가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롭다.
나는 회사에 저온물류부서 창설 때부터 근무하면서 저온물류서울중앙센터 센터장으로 있었다.
그리고 전국 주요 지역 포스트에 20여개 지역센터들이 있고 그 센터에 상품을 보내는 것이 주 업무였다.

나의 주 업무가 영업파트 직접 상대가 아니라 지역센터들이 요구하는 상품을 적시에 공급하는 것이지만
그래서 매일 20여개의 센터에서 주문을 받아 여러 대의 대형 냉동차량으로 수송하는 것이 일상 업무지만
주문받을 상품을 사전 예측하고 각 공장에 생산 의뢰하여 항상 적정재고를 비축해야 하는 일이 어려웠다.
갑자기 언제 어디서 무슨 상품을 얼마나 주문할지 모르므로 모든 정보에 집중하며 대비해야 하는데 
이유 불문하고 중앙센터 재고 부족으로 지역센터들 주문에 응하지 못하면 내 책임이었다.

적정재고(適定在庫)란 무엇을 말하며 왜 유지하기 어렵고 힘든가.
보통 품목과 규격별로 전월 일일 매출 최고치를 기준하여 그에 약 20%를 UP한 물량을 적정재고로 본다.
즉, 전월 일일 최고치가 100 이고 매일 100을 생산하고 또 매일 입고 가능하면 120 정도가 적정재고다.
그러나 매일 생산과 입고가 불가능하면 수송(센터 입고) 가능일자까지 고려한 수량이 적정재고가 된다. 
즉, 격일이면 240, 3일에 한번 수송이면 360 이 되는데 그 이상 보유하면 '과다재고'가 되는 것이다.

공장이 멀리 있고 1회 납품량이 소량일 때는 매일 생산 가능해도 운송비 문제로 매일 입고가 곤란하다.
반대로 수송비는 문제없는데 공장 사정으로 매일 생산이 어려워도 마찬가지다. 
그런 문제들은 주로 OEM 협력업체들에 있는데 그러한 특성들을 감안하여 적정재고를 산정해야 하며
대부분 OEM 협력사들 여건이 열악하여 주문 약속일자를 못지키는 경우가 많아 그 점도 고려해야 한다. 

어느 회사든 특히 제조업 기업들에 제일 중요한 부서는 영업파트 일 것이다.
영업을 잘 해야 그 이익으로 회사가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처럼 극심한 경쟁사회에서는 매월 목표실적 달성은 피를 말리는 전쟁이나 다름 없다.
그렇다 보니 우리 회사 영업사원들은 휴일도 없이 새벽에 출근하여 밤 늦도록 근무하는 것이 예사였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근무하면 물류센터도 그에 맞추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물류가 상품공급을 잘못하여 목표달성을 못했다는 덤탱이를 쓰지 않으려면 더욱 그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상품이 없어 팔지 못했다 소릴 듣지 않으려고 항상 생산공장과 연결하며 대비했는데
영업 측은 물류와 생산공장에 인정사정 두지 않았고 사실 그들도 사정봐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적보다 전략과 화력이 우수하고 강해야 한다.
만일 탱크를 오늘 요청했는데 다음 날 도착했다면 이미 다 죽어 버려 그 탱크는 아무 소용없다.
또 상대는 기관포를 쏘는데 소총 밖에 없다면 싸움이 안 되고 패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영업 측이 원하는 상품의 적시 적소 공급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실로 중대한 일이 되는 것이다.
물류를 뜻하는 'LOGISTICS' 어원도 1차세계대전 때 물자보급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따라서 무기(상품)를 생산하는 공장은 물론이고 
그 무기를 적시에 또 적소(원하는 곳)에 공급해야 하는 물류의 책임도 더 없이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외로운별-1.인생행로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