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대에게 한송이 꽃을

2010. 8. 22. 오후 5:16:36

글자
그대에게 한송이 꽃을
 
 
그 해 일요일과 8월15일 연휴에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오랜만의 고향이어서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그런데 형수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우 놀라신 듯 허겁지겁 나를 찾으셨습니다.
 
 
삼촌 애인이라는 아가씨가 지금 집에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깜작 놀라 집에 가 보니 C양이 어떻게 찾아 왔는지 와 있었습니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지고요.
 
 
그 뿐이 아닙니다.
무더운 여름 저녁이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집안에 바글바글 모여 있었습니다.
완전히 동네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동네 입구의 동구나무 아래는 동네 어른들 쉼터인데
C양이 그 곳에서 택시를 내려 내 이름을 대면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씨가 누구이고 왜 찾느냐 물었더니 서슴치 않고 내 애인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랬으니 동네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합니다.
당시 내 고향의 개념으로는 C양의 그런 행동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파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생긴 모습과 차림새가 나에게 과분하여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겠지요.
 
 
그래도 제일 크게 놀란 사람들은 저의 가족입니다.
물론 나 역시 놀랐는데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행동하는 C양의 태도가 그랬습니다.
심지어 저녁을 안 먹었다며 입이 엄청 짧은데도 아무 것이나 잘 먹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난 너무도 어이가 없고 당황하여 한동안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형수님은 안 쓰던 사랑방을 치우고 닦아내며 급히 청소를 합니다.
형님은 그 방은 누추해서 안 된다며 인사가 아니니 읍내 여관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에 C양은 방이 많은데 왜 여관에 가느냐며 집에서 자겠다고 합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에 이건 난리가 보통이 아닌 사라호급 큰 태풍이 불어온 것입니다.
그렇게 다음 날 우리가 떠날 때까지 온 동네가 들썩 거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고향에서의 내 혼인 길은 C양 때문에 완전히 막힌 샘입니다.
그러나 C양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키득거리며 웃기만 했습니다.
그 상황에선 어떤 말도 소용 없고 그저 비위를 맞추며 다독이는 것이 최선이었지요.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여 또 한번 놀랐습니다.
C양이 서울역에서 어딘가 전화했는데 설마 엄마가 대문 앞에서 가디릴 줄은 몰랐습니다.
C양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고 계셨는데 전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난 허락받고 내 고향에 왔다는 말이 거짓일 거라며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C양은 조금도 걱정 말라고 이번 여행은 엄마에게 허락 받았다고 했지만 말입니다.
난 대체 무엇이 어떻게 돌아 가는 것인지 전혀 짐작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C양은 가방을 집에 들여놓고 바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허락을 받았으니 집에 안 들어 가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이 여기까지 돌아간 이상 이제는 나도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C양은 그 날부터 진짜 내 애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급속도로 타오른 불꽃은 이제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때문에 결혼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것을 전제 했음은 두 말할 필요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꿈 같은 시간이란 그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C양네 택시가 모두 11대였는데 매일 3~4대씩 정기운휴로 쉬면서 정비를 했습니다.
그 중에 이상 없는 차를 가고 싶은 곳을 마냥 돌아 다니며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해가 저물며 추운 겨울이 왔는데
그렇게 돌아 다니길 좋아하던 C양이 추위에 약한지 따뜻한 곳만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겨우내내 데이트는 거의 내 하슥방에서 하다시피 했고요.
 
 
그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 어느날 갑자기 약 보름 쯤 시골 고향에 다녀 오겠다 하더군요.
가족들이 모두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몹씨 서운하긴 했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기에 잘 다녀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좀 찜찜한 것은 시골이라 전화를 자주 못 할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숙집 아줌마에게 알아봐 달라 했더니 집안에 일이 있어서라고 하더랍니다.
그렇다면 신경 쓸것 없고 잘 다녀 오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거의 한 달만에 만날 수 있었는데 C양이 많이 야위어 있었습니다.
마치 병을 앓고 난 사람 모습이더군요.
그리고 C양은 전과 달리 어딘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같으면 일찍 들어가라는 말을 싫어 했는데 이젠 먼저 들어간다 말까지 합니다. 
내가  결정적으로 의심한 것은 대학을 포기했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는 명문이 아닌 대학들은 등록금만 내면 되므로 C양은 포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난 C양에게 캐묻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 건 분명했지만 나 말고 다른 남자 문제는 아니란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지 몰라도 힘들어 하는 그 일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화가 없어도 참고 기다렸습니다.
난 그 때까지 먼저 C양 집에 전화를 한 일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야 좋을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C양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아주 큰 일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물어 볼 사람이 없어 혼자만 꿍꿍 거리며 앓고 지낼 수 밖에요.
하숙집 아줌마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요.
 
 
나는 어지러운 생각과 걱정만 하기 보다는 회사일에 푹 파 묻혀 열중하며 지냈습니다.
연락할 형편이 되면 하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C양은 며칠에 한번 쯤 더러는 일주일이 넘어도 연락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난 만나면 C양의 변명에 순진한 척 깜박 속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일체 부담되는 말은 하지 않고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C양은 그런 나를 반신반의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난 처음으로 C양이 화장실 간 틈을 타 핸드빽을 열어 봤습니다.
내가 핸드빽을 열어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고 한번도 만진 일 조차 없었습니다.
 
 
혹시 했던 예상대로 무슨 약봉지가 있더군요.
약 이름은 알 수 없고 병원 이름과 위치 그리고 전화 번호를 급히 암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C양 몰래 그 병원을 찾아 간 것입니다.
 
 
그 병원은 종로 5가에 있었는데
5층 건물에 세 들어 있는 병원이지만 50대의 그 전문의는 유명한 박사라고 했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 박사가 무슨 일로 왔느냐 묻기에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양해를 구하더군요.
그리고 한참 후에 돌아 온 그 의사는 나에게 뜻 밖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기는 C양 아버지와 고향 친구라고요.
 
 
그리고 의사의 양심상 젊은이를 속일 수 없다면서 말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친구 딸을 위해 부탁하고 싶고 선택은 내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을 말 해준 자기가 앞으로 곤란하지 않도록 해 주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C양은 그동안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이 의사가 치료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약으로 처방해 오다가 얼마 전 수술했지만 현재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반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요.
현재로선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심리 불안은 더욱 악화 원인이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 날 난 병원을 어떻게 나왔는지 모릅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들이 마구 달리는 인도 난간에 걸터 앉아 있더군요.
그리고 집까지 그 먼길을 터벅터벅 차를 타지 않고 오랜시간을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C양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C양이 나의 방문을 거부한 때문인데 어떤 말과 설득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난 거의 미쳐 돌아가 방에 틀어 박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숙집 아줌마를 통해 안 것이지만
내가 병원을 찾아간 일을 그 박사가 C양 부모에게 알려 주었고
그 사실을 C양 부모님이 실수하여 C양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C양은 부모님이 일부러 나에게 알려 주었다며 펄펄 뛰며 온갖 난리를 쳤다는군요.
 
 
사실 난 부모를 통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빽을 열었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하튼 그 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했다는데 난 어느 병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꼭 C양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의사를 찾아가 사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입원 병원을 알려 주면서 모든 병원을 다 뒤져 직접 찾은 것으로 하라 하더군요.
당시 서울에는 큰 종합병원이 몇 개 없었으니까요.
난 그 병원을 찾아 갔지만 C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C양에게 한 번 경을 친 엄마는 먼저 C양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그리고 흉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지 절대로 들여 보내면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고집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이 다 갈 무렵
하숙집 아줌마에게 연락을 받고 C양 빈소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흐느끼는 C양 부모님과 오빠와 언니 앞에서....
 
 
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정 앞에 한송이 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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