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한송이 꽃을
그 해 일요일과 8월15일 연휴에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오랜만의 고향이어서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그런데 형수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우 놀라신 듯 허겁지겁 나를 찾으셨습니다.
오랜만의 고향이어서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그런데 형수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우 놀라신 듯 허겁지겁 나를 찾으셨습니다.
삼촌 애인이라는 아가씨가 지금 집에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깜작 놀라 집에 가 보니 C양이 어떻게 찾아 왔는지 와 있었습니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지고요.
깜작 놀라 집에 가 보니 C양이 어떻게 찾아 왔는지 와 있었습니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지고요.
그 뿐이 아닙니다.
무더운 여름 저녁이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집안에 바글바글 모여 있었습니다.
완전히 동네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 저녁이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집안에 바글바글 모여 있었습니다.
완전히 동네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동네 입구의 동구나무 아래는 동네 어른들 쉼터인데
C양이 그 곳에서 택시를 내려 내 이름을 대면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씨가 누구이고 왜 찾느냐 물었더니 서슴치 않고 내 애인이라고 하더랍니다.
C양이 그 곳에서 택시를 내려 내 이름을 대면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씨가 누구이고 왜 찾느냐 물었더니 서슴치 않고 내 애인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랬으니 동네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합니다.
당시 내 고향의 개념으로는 C양의 그런 행동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파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생긴 모습과 차림새가 나에게 과분하여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겠지요.
당시 내 고향의 개념으로는 C양의 그런 행동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파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생긴 모습과 차림새가 나에게 과분하여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겠지요.
그래도 제일 크게 놀란 사람들은 저의 가족입니다.
물론 나 역시 놀랐는데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행동하는 C양의 태도가 그랬습니다.
심지어 저녁을 안 먹었다며 입이 엄청 짧은데도 아무 것이나 잘 먹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물론 나 역시 놀랐는데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행동하는 C양의 태도가 그랬습니다.
심지어 저녁을 안 먹었다며 입이 엄청 짧은데도 아무 것이나 잘 먹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난 너무도 어이가 없고 당황하여 한동안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형수님은 안 쓰던 사랑방을 치우고 닦아내며 급히 청소를 합니다.
형님은 그 방은 누추해서 안 된다며 인사가 아니니 읍내 여관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런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형수님은 안 쓰던 사랑방을 치우고 닦아내며 급히 청소를 합니다.
형님은 그 방은 누추해서 안 된다며 인사가 아니니 읍내 여관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에 C양은 방이 많은데 왜 여관에 가느냐며 집에서 자겠다고 합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에 이건 난리가 보통이 아닌 사라호급 큰 태풍이 불어온 것입니다.
그렇게 다음 날 우리가 떠날 때까지 온 동네가 들썩 거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에 이건 난리가 보통이 아닌 사라호급 큰 태풍이 불어온 것입니다.
그렇게 다음 날 우리가 떠날 때까지 온 동네가 들썩 거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고향에서의 내 혼인 길은 C양 때문에 완전히 막힌 샘입니다.
그러나 C양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키득거리며 웃기만 했습니다.
그 상황에선 어떤 말도 소용 없고 그저 비위를 맞추며 다독이는 것이 최선이었지요.
그러나 C양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키득거리며 웃기만 했습니다.
그 상황에선 어떤 말도 소용 없고 그저 비위를 맞추며 다독이는 것이 최선이었지요.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여 또 한번 놀랐습니다.
C양이 서울역에서 어딘가 전화했는데 설마 엄마가 대문 앞에서 가디릴 줄은 몰랐습니다.
C양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고 계셨는데 전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C양이 서울역에서 어딘가 전화했는데 설마 엄마가 대문 앞에서 가디릴 줄은 몰랐습니다.
C양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고 계셨는데 전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난 허락받고 내 고향에 왔다는 말이 거짓일 거라며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C양은 조금도 걱정 말라고 이번 여행은 엄마에게 허락 받았다고 했지만 말입니다.
난 대체 무엇이 어떻게 돌아 가는 것인지 전혀 짐작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C양은 조금도 걱정 말라고 이번 여행은 엄마에게 허락 받았다고 했지만 말입니다.
난 대체 무엇이 어떻게 돌아 가는 것인지 전혀 짐작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C양은 가방을 집에 들여놓고 바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허락을 받았으니 집에 안 들어 가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이 여기까지 돌아간 이상 이제는 나도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허락을 받았으니 집에 안 들어 가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이 여기까지 돌아간 이상 이제는 나도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C양은 그 날부터 진짜 내 애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급속도로 타오른 불꽃은 이제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때문에 결혼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것을 전제 했음은 두 말할 필요없습니다.
그리고 급속도로 타오른 불꽃은 이제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때문에 결혼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것을 전제 했음은 두 말할 필요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꿈 같은 시간이란 그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C양네 택시가 모두 11대였는데 매일 3~4대씩 정기운휴로 쉬면서 정비를 했습니다.
그 중에 이상 없는 차를 가고 싶은 곳을 마냥 돌아 다니며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C양네 택시가 모두 11대였는데 매일 3~4대씩 정기운휴로 쉬면서 정비를 했습니다.
그 중에 이상 없는 차를 가고 싶은 곳을 마냥 돌아 다니며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해가 저물며 추운 겨울이 왔는데
그렇게 돌아 다니길 좋아하던 C양이 추위에 약한지 따뜻한 곳만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겨우내내 데이트는 거의 내 하슥방에서 하다시피 했고요.
그렇게 돌아 다니길 좋아하던 C양이 추위에 약한지 따뜻한 곳만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겨우내내 데이트는 거의 내 하슥방에서 하다시피 했고요.
그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 어느날 갑자기 약 보름 쯤 시골 고향에 다녀 오겠다 하더군요.
가족들이 모두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몹씨 서운하긴 했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기에 잘 다녀 오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몹씨 서운하긴 했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기에 잘 다녀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좀 찜찜한 것은 시골이라 전화를 자주 못 할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숙집 아줌마에게 알아봐 달라 했더니 집안에 일이 있어서라고 하더랍니다.
그렇다면 신경 쓸것 없고 잘 다녀 오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숙집 아줌마에게 알아봐 달라 했더니 집안에 일이 있어서라고 하더랍니다.
그렇다면 신경 쓸것 없고 잘 다녀 오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거의 한 달만에 만날 수 있었는데 C양이 많이 야위어 있었습니다.
마치 병을 앓고 난 사람 모습이더군요.
그리고 C양은 전과 달리 어딘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병을 앓고 난 사람 모습이더군요.
그리고 C양은 전과 달리 어딘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같으면 일찍 들어가라는 말을 싫어 했는데 이젠 먼저 들어간다 말까지 합니다.
내가 결정적으로 의심한 것은 대학을 포기했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는 명문이 아닌 대학들은 등록금만 내면 되므로 C양은 포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내가 결정적으로 의심한 것은 대학을 포기했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는 명문이 아닌 대학들은 등록금만 내면 되므로 C양은 포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난 C양에게 캐묻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 건 분명했지만 나 말고 다른 남자 문제는 아니란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지 몰라도 힘들어 하는 그 일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 건 분명했지만 나 말고 다른 남자 문제는 아니란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지 몰라도 힘들어 하는 그 일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화가 없어도 참고 기다렸습니다.
난 그 때까지 먼저 C양 집에 전화를 한 일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야 좋을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C양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난 그 때까지 먼저 C양 집에 전화를 한 일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야 좋을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C양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아주 큰 일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물어 볼 사람이 없어 혼자만 꿍꿍 거리며 앓고 지낼 수 밖에요.
하숙집 아줌마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러나 물어 볼 사람이 없어 혼자만 꿍꿍 거리며 앓고 지낼 수 밖에요.
하숙집 아줌마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요.
나는 어지러운 생각과 걱정만 하기 보다는 회사일에 푹 파 묻혀 열중하며 지냈습니다.
연락할 형편이 되면 하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C양은 며칠에 한번 쯤 더러는 일주일이 넘어도 연락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연락할 형편이 되면 하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C양은 며칠에 한번 쯤 더러는 일주일이 넘어도 연락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난 만나면 C양의 변명에 순진한 척 깜박 속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일체 부담되는 말은 하지 않고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C양은 그런 나를 반신반의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 일체 부담되는 말은 하지 않고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C양은 그런 나를 반신반의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난 처음으로 C양이 화장실 간 틈을 타 핸드빽을 열어 봤습니다.
내가 핸드빽을 열어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고 한번도 만진 일 조차 없었습니다.
난 처음으로 C양이 화장실 간 틈을 타 핸드빽을 열어 봤습니다.
내가 핸드빽을 열어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고 한번도 만진 일 조차 없었습니다.
혹시 했던 예상대로 무슨 약봉지가 있더군요.
약 이름은 알 수 없고 병원 이름과 위치 그리고 전화 번호를 급히 암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C양 몰래 그 병원을 찾아 간 것입니다.
약 이름은 알 수 없고 병원 이름과 위치 그리고 전화 번호를 급히 암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C양 몰래 그 병원을 찾아 간 것입니다.
그 병원은 종로 5가에 있었는데
5층 건물에 세 들어 있는 병원이지만 50대의 그 전문의는 유명한 박사라고 했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 박사가 무슨 일로 왔느냐 묻기에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5층 건물에 세 들어 있는 병원이지만 50대의 그 전문의는 유명한 박사라고 했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 박사가 무슨 일로 왔느냐 묻기에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양해를 구하더군요.
그리고 한참 후에 돌아 온 그 의사는 나에게 뜻 밖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기는 C양 아버지와 고향 친구라고요.
그리고 한참 후에 돌아 온 그 의사는 나에게 뜻 밖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기는 C양 아버지와 고향 친구라고요.
그리고 의사의 양심상 젊은이를 속일 수 없다면서 말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친구 딸을 위해 부탁하고 싶고 선택은 내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을 말 해준 자기가 앞으로 곤란하지 않도록 해 주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 딸을 위해 부탁하고 싶고 선택은 내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을 말 해준 자기가 앞으로 곤란하지 않도록 해 주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C양은 그동안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이 의사가 치료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약으로 처방해 오다가 얼마 전 수술했지만 현재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반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요.
현재로선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심리 불안은 더욱 악화 원인이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동안 약으로 처방해 오다가 얼마 전 수술했지만 현재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반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요.
현재로선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심리 불안은 더욱 악화 원인이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 날 난 병원을 어떻게 나왔는지 모릅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들이 마구 달리는 인도 난간에 걸터 앉아 있더군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들이 마구 달리는 인도 난간에 걸터 앉아 있더군요.
그리고 집까지 그 먼길을 터벅터벅 차를 타지 않고 오랜시간을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C양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C양이 나의 방문을 거부한 때문인데 어떤 말과 설득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난 거의 미쳐 돌아가 방에 틀어 박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C양이 나의 방문을 거부한 때문인데 어떤 말과 설득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난 거의 미쳐 돌아가 방에 틀어 박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숙집 아줌마를 통해 안 것이지만
내가 병원을 찾아간 일을 그 박사가 C양 부모에게 알려 주었고
그 사실을 C양 부모님이 실수하여 C양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C양은 부모님이 일부러 나에게 알려 주었다며 펄펄 뛰며 온갖 난리를 쳤다는군요.
그 사실을 C양 부모님이 실수하여 C양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C양은 부모님이 일부러 나에게 알려 주었다며 펄펄 뛰며 온갖 난리를 쳤다는군요.
사실 난 부모를 통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빽을 열었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하튼 그 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했다는데 난 어느 병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꼭 C양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여하튼 그 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했다는데 난 어느 병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꼭 C양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의사를 찾아가 사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입원 병원을 알려 주면서 모든 병원을 다 뒤져 직접 찾은 것으로 하라 하더군요.
그랬더니 입원 병원을 알려 주면서 모든 병원을 다 뒤져 직접 찾은 것으로 하라 하더군요.
당시 서울에는 큰 종합병원이 몇 개 없었으니까요.
난 그 병원을 찾아 갔지만 C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난 그 병원을 찾아 갔지만 C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C양에게 한 번 경을 친 엄마는 먼저 C양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그리고 흉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지 절대로 들여 보내면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고집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흉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지 절대로 들여 보내면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고집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이 다 갈 무렵
하숙집 아줌마에게 연락을 받고 C양 빈소를 찾았습니다.
하숙집 아줌마에게 연락을 받고 C양 빈소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흐느끼는 C양 부모님과 오빠와 언니 앞에서....
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정 앞에 한송이 꽃 밖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