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외로운 별 이야기

2010. 9. 14. 오후 10: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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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下克上) 사건

난 처음에 안양 상온물류센터에서 6개월 정도만 기다리면 될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6개월이 2년으로 연장된 것은 내가 저지른 하극상 사건이 원인이었다.
내가 없는 공장의 저온중앙물류센터는 예상했던 대로 6개월 쯤 지나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6개월 쯤은 내가 만들어 놓은 메뉴얼대로 하면 문제가 있더라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만
다가오는 년중 최고 성수기 겨울철에는 그에 맞는 메뉴얼이 아니면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여름에서 가을까지 곤욕을 치른 지역센터들이 슬슬 찬바람이 불자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년말 기결산 목표에 신경 써야 하는 영업 측도 크게 걱정하며 물류에게 동조할 수밖에 없다.
지난 6개월간 많은 결품(재고 부족)과 유통기한 불량으로 영업 손실이 많았던 영업과 지역센터들이
마지막 년말 특수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서 공장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전국에서 빗발치는 전화에 시달리던 공장장이 더 버티지 못하고 나를 보내달라 요청해 온 것이다.

그래서 물류본부장은 나를 보내고자 했으나 상온물류센터 관리자 박과장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박과장은 그 당시 나와 사이가 좋았으나 그 전에는 전혀 아니었다.
오래 전에 나와 크게 다투고 싸운 일 때문에 내가 처음 그 센터에 갔을 때는 나를 마치 원수 취급했다.
사실 박과장과 문제는 싸울 일이 아니었고
업무적인 견해 차이로 충돌한 불상사였지만 그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일방적인 박과장의 잘못이었다.
따라서 애초에 그가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물러섰으면 아무 일 없었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강한 자존심과 상급자임을 내세워 끗발로 내리 찍듯이 나를 짓밟으려고 했다.
나로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 강력히 항의하는 중에 급한 성격의 그가 결정적 실수를 한 것이다.
당신(나)은 필요 없으니 지금 당장 사직서 쓰고 그만 두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그러한 그의 망발에 순간 격분하여 폭발했다.
나에게 사표쓰고 회사를 그만 두라는 말은 아무리 화가 나도 일개 과장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야, 이 개 ×× 야! 이 회사가 니 거냐? 니가 사장이냐? 별 웃기는 자식 다 보겠네 이거?
 니가 뭔데 나한테 가라 마라냐? 너도 나와 똑 같은 직원이야 임마..저런 게 과장이라고... 저걸 그냥 팍..."

상온과 저온 두 개 센터의 수 십명 직원이 보고 듣는 앞에서 그렇듯 무지막지한 욕을 퍼 부었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마치 저 개인 것인양 사표쓰고 나가라고 큰소리쳤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박과장은 비록 상급자였지만 나 보다 입사가 형편 없이 늦고 나이도 어려 짬밥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더라도 욕설을 그렇게 마구 퍼 부었으니 나도 잘 한 것 없었다.
이유가 있더라도 직속 상급자에게 그처럼 무지막지하게 퍼 부운 폭언은 하극상이 분명한 것이다.

여하튼 그는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여러 부하 직원들 보는데서 개망신 당했다.
그리고 한번도 듣지 못한  무지막지한 나의 욕설에 직원들도 어리벙벙해 하며 크게 놀랐다고 했다.
직원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항상 타이르던 내가 상급자에게 그처럼 무지막지한 욕을.....
직원들은 그랬을 것이다.
오랜 회사생활 중에 난 한번도 누구와 싸우거나 험한 욕을 한 일 없었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박과장의 부당한 요구에 스트래스 받았던 것들이 그날 그 일로 터진 것인데
그는 걸핏하면 센터 관리자 체면을 내세우며 아른바 이쁜 놈 봐주기식의 부당한 업무를 요구했다.
그리고 난 그의 그러한 요구 때문에 다른 업무까지 차질을 빚어 그게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서 상사는 항상 직원들이 보다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챙겨주어야지 군림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엉터리 요구를 많이 하는 편이었고 그 때도 그 일 때문에 더 참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러 하다.
변덕스런 시장동향에 따라 특정 상품이 한시적으로 선풍적으로 잘 팔릴 때가 가끔씩 있는데
상품이 있는대로 얼마던지 '제값에 현금'으로 팔 수 있어 자금력 약한 대리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주문이 동시다발적이고 주문량도 엄청나게 많아 공장에서 주문일에 생산을 다 해낼 수가 없다.
갑작스럽게 원료 확보도 쉽지 않고 또 생산기계의 케파(용량) 한계로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센터에 극히 제한된 재고 밖에 비축이 안 되는데도 전국 사방에서 주문이 폭주하는 것이다.
그 경우는 골고루 조금씩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 원칙인데 특정 대리점에 많이 주라고 한 것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은 금방 다른 대리점에 알려지게 되어 물류센터 입장이 난처해진다.
왜냐면 냉동상품 시장이 작은 편이라 같은 지역 상인들에게 상품 정보가 금방 누설되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편향적으로 상품을 공급한다며 강력한 항의가 빗발치고 실제로 그러한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철저하게 공평한 공급 원칙을 고수해온 나에게
박과장이 그동안 자신과 친한 대리점 사장에게만 더 많이 주도록 부당한 요구를 여러번 했던 것이다.
그래도 과장 체면을 생각하여 어려움을 무릎쓰고 몇번 해 주면서 제발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선 한번만 더 해주라며 계속 요구한 것이 몇 번이던가?
그래서 약속대로 이젠 안 된다고 거부한 것인데 과장을 무시한다며 핏대를 올려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평소 그 대리점 사장에게 술잔이나 얻어 먹는 것이 틀림없다.
그동안 장기간 물류업무를 보면서 제일 어렵고 난처한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다.
물론 내게도 거의 하루에 한 두건씩 그런 은근한 접대 제의가 들어 오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나도 궁하게 지내는 터라 누구든 현금  아닌 먹거리를 사들고 오면 고맙게 받았다.
현장에는 항상 20명 가까운 직원이 힘들게 일하고 있고 출출할 때 간식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좋은 곳에서 나 혼자 대접은 일체 사양했다.
오랜기간 그렇게 했더니 상대들도 내가 좋아하는 담배와 직원들 마시라고 음료수를 사 들고 왔다.
담배도 물론 직원들과 나누어 피웠다.
그렇듯 매사를 확실하게 하면서도 박과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하는 일이 꼭 한가지 있었는데
그 일을 누가 고자질했는지 그가 알게 되어 문제가 엉뚱하게 커졌다.

야간 작업이 거의 일상적인 상황인데도 박과장은 직원들 저녁값을 지불해 주지 않았다.
센터 앞 단골 식당에 매월 외상 값이 50만원이 넘었는데 그게 몇 달 밀리다 보니 큰 금액이 되었다.
직원들이 일하느라 먹은 것이므로 당연히 두 개 센터 관리 책임자 박과장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돈이 없다며 한푼도 내지 않고 모른체 했다.
직원후생비 명목으로 매월 얼마인가 나오는데도 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여하튼 저녁을 먹어야 야간 일을 하는데 아무도 돈을 주지 않으니 비상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센터 수송 차량이 지방에 내려갔다가 빈차로 돌아올 때 하물을 실어 주고 운임을 받는 방법이지만
차량 운행 경비를 제하고 남은 돈을 외상 값을 갚으라 했고 난 그 돈을 구경조차 한 일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회사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또 회사 자산 운영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어차피 운행 빈도와 상관없는 전세 차량이고 지방 수송 후에는 그 먼 거리를 공차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선 피해가 없더라도 그런 운행을 못하게 규제했다.
물론 허용하면 중이 절보다 잿밥에 눈독 들이는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그리고 박과장도 내심으론 알고 있으면서 자신이 식대를 주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체 하는 것 같았다.
그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
바로 코 앞에 있는 식당 외상값을 매월 누가 어찌 해결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그런데 그는 계속 모른체 하고 있다가 하극상 사건이 터지자 즉각 그 사실을 이용했다.

몹씨 분했던 모양으로 그 '수송차량 운행 비리' 사실을 물류본부장에게 고발한 것이다.
그 사실을 여직원이 내게 알려 주며 어쩜 본부장이 센터에 올 것 같다고 했다.
난 식당의 외상값을 갚기 위한 차량 운행에 대하여 그는 알아도 고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여하튼 직원들은 나 개인적인 착복이 아님을 다 알고 있는 터라 고발한 박과장을 모두가 욕했다.

나는 본부장이 오거나 말거나 새벽 출근으로 아침을 못 먹은 빈속에 술잔을 마구 털어 넣었다.
그러면서 본부장이 오는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회사가 어렵다고 해도 직원들이 일하느라고 먹은 저녁값은 해결해 줘야 일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한 그 일도 해결하지 못하는 본부장이 무슨 할말이 있을까?
본부장이 센터에 도착했다며 여직원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르러 왔을 때 나는 만취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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