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은 우리는 그런 일에 끼어 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적당히 얼버무리라고 했다.
공장장은 본부장과 입사 동기고 직급도 같은 이사였다.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없을지 몰라 미리 말하면 공장장은 몇 달 후 다른 작은 공장으로 발령받아 떠났다.
누가 봐도 좌천성 인사라 공장 직원들은 그 일 때문일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사실이야 어떻든 내가 공장에 내려가 하고자 했던대로는 아니지만 3명 모두 공장을 떠난 것이다.
공장의 생산체계는 내가 월간과 주간 그리고 일일 생산회의에 참석하면서 크게 변했다.
그동안 하루에 5~7가지 품목만 집중생산하던 것을 10가지를 생산해 보자고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그 결과 일일 생산량(톤수)이 큰 폭으로 떨어졌고 그 원인도 파악되었으며
그리고 생산 품목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나자 영업 쪽은 대환영이었다.
하지만 공장의 생산목표도 중요하여 계속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위생복을 입고 생산현장에 들어가 직원들이 작업하는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도대체 하루에 5~7가지 품목밖에 생산할 수 없는 원인이 무엇인가.
그게 품목을 바꿀 때마다 기계를 청소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라는데 그 일이 그처럼 어려운 일인가.
생산 설비담당 반장이 25년근속 최 고참이고 나이도 나 보다 두세 살 많은 말 그대로 배태랑이었는데
그래선지 젊은 과장과 대리들 심지어 공장장도 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기계 청소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왜 불가능하느냐 물었을 때 귀신도 못할 것이라며 비웃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라도 그렇다고 귀신을 끌어들일 것까지야....
그리고 그는 '직원들이 사람이지 쇠로 만든 기계가 아니다' 라면서 나를 몹씨 못 마땅해 했는데....
여하튼 기계청소는 기계 틈 사이에 낀 찌꺼기를 물로 깨끗이 씻는 작업이고
생산하다가 품목을 바꾸려면 기계와 배합통에 묻어 있는 원료들을 씻은 후 다른 원료를 넣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청소하고 성형기를 바꾸는데 기계마다 거의 한시간이나 걸리고 있었다.
그래서 기계 하나에 하루 두 번을 청소하면 약 두시간을 생산을 못하고 사람도 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3대의 기계가 6시간이나 생산을 못하고 있으니 결코 적은 물량이 아니다.
그 기계하나를 내가 청소해 보았다.
서두르지 않고 현장 아줌마들이 하는 속도로 했는데도 소요시간은 겨우 10분.
그리고 그 기계 담당 직원에게 내가 청소한 작업평가를 하라고 했더니 양호하다고 했다.
그 아줌마에게 앞으로 10분내에 하라고 하면서 못하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랬더니 그 아줌마는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반장님들이 빨리 하지 말라고 해서 그랬다는 것 아닌가.
그날 퇴근시에 공장장에게 현장 반장들과 회식을 부탁했다.
그 반장들 7명도 나처럼 자부심이 강하고 연배도 비슷했는데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대화가 원만하게 잘 되어 다음 날부터 현장 분위기가 급변했다.
특히 '이제는 아니구나' 위기감을 느낀 그 고참 반장이 열심히 움직이니 다른 반장들은 두 말할 것 없다.
그 결과 생산량이 늘었지만 그래도 바꾸기 전 상태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반장들은 더 빠른 방법을 찾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생산량이 바꾸기 전 수준으로 올랐고 품목도 배 이상 늘어 20개까지 가능해졌다.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동안 하루에 여러 품목을 생산할 수 없다 하여 며칠씩 기다려야 했던 영업측이 얼마나 좋아 했겠는가.
그런데 목표 생산량 달성 축하 회식 때 공장장이 뜻밖에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물론 내가 공장장에게 약속한 불량재고 처리는 한 달도 안 돼 완료했고
그리고 일부 처리 못한 것들은 원료 재활용 가능한 것 빼고 전량 폐기되었다.
생산계획 짤 때마다 영업이 원하는 상품만 생산토록 하여 인수했고 난 그것을 10일이상 보유하지 않았다.
즉 지역센터장들에게 생산일자 10일이내의 신제품을 보낸 것이다.
그렇듯 공장의 저온물류중앙센터 업무를 정상화시키는데 걸린 기간이 꼭 3개월.
그동안 물론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전국 지역 센터장들의 수요예측 정보를 믿을 수 없어 각 지역 영업지부까지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보의 정확성이 생명인데 지역센터장들이 대부분 젊어 경험 부족으로 실수가 많았다.
그런 실수는 영업사원들도 마찬가지여서 전국의 주요 대리점들은 사장을 직접 상대하여 정보를 얻었다.
또 전에는 창고에 상품이 항상 꽉 채워 있었지만 지금은 헐렁하여 냉동창고 온도관리가 아주 양호해졌다.
창고에 물건이 꽉 차있으면 냉류 흐름이 원활치 못해 냉동기 고장이 자주 발생한다.
요즘 냉동기는 간편한 전기식이지만 당시는 물로 냉각시키는 수냉식이었으며 걸핏하면 고장났다.
그리고 수냉식은 항상 몇 개의 커다란 휀이 돌아 먼지가 날리는데 전기식은 창고내의 공기가 깨끗하다.
수냉식 냉동기 원리는 강력한 컴프레셔로 냉매를 농축기에서 압축시키면 액체가 되는데
그 액체가 팽창변을 지나면서 팽창과 동시 기화 즉, 기체가 되고 라디에터의 미세한 관 그릴을 통과한다.
차가운 그 기체가 그릴을 통과할 때 그 뒤에서 휀이 돌면서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원리다.
그때 주변의 공기 온도 차 때문에 라디에터 그릴에 성애가 끼는데 그 성애를 제거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성애가 예상되는 시간이면 자동으로 라디에터에 물이 뿌려지고 그릴의 성애가 녹아 아래로 흐른다.
그리고 그릴 아랫 족에 녹인 물을 밖으로 흐르게 하는 파이프가 있고 코일을 감아 항상 뜨겁게 하는데
파이프가 차가운 냉동창고 내부 천정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얼어 막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밖으로 물을 배출하는 그 파이프가 얼어 성애를 녹인 물이 나가지 못한 대형 사고가 있었다.
밀폐된 냉동창고에 높은 천정에 매달린 냉동기에서 창고바닥으로 장시간 물이 쏟아졌으니 어찌되겠는가.
그 사고는 회사에서 냉장 냉동식품 판매를 시작한 초창기 옛날에 있었다.
당연히 500 여평 넓이에 3층으로 쌓아 비축해 놓은 상품 약30%가 훼손되었고 피해가 막심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사고 때문에 냉동기를 배워야 했고 그 이후 직접 냉동기를 관리하면서 사고는 한번도 없었는데
매주 일요일에 쉬지도 못했지만 어쩌다 쉬더라도 한번쯤은 센터에 나가 냉동기 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그 당시 갑자기 창고가 마비되고 비축재고 상품이 30%나 없는데도 영업 측은 인정사정없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당시 부서장인 영업부장이 그 사고를 이용하여 실속을 챙기는 구역질나는 행태를 보고는....
그 이야기는 다음에 쓰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공장이 일단 안정되자 그때부터 OEM 협력사에게 납품받고 있는 상품에 집중했다.
OEM이 뭔지 모르는 사람 없겠지만 '주문자 상표 생산'을 말한다.
당시 영업부에서 판매하는 저온상품의 70%를 이곳 공장에서 생산했고 30%는 OEM 협력사 상품이었다.
그런데 그 30% 상품이 복잡하게 11개 OEM사에서 품목을 나누어 생산하여 납품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업체들 모두 작고 영세하여 상품을 주문하고 납품받는 나로서는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영업에선 상품이 부족하다 난리치는데 멀리서 싣고 온 상품이 당사 품질검사에서 불합격이 많은 것이다.
그 상품을 믿고 있는 상태에서 불합격이라 하여 반송되면 영업 측의 주문에 차질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그때마다 영업은 오두방정 육갑까지 떨며 별별 욕을 다 하지만 상황이 그런 것을 어쩔 것인가?
그래도 상황이고 나발이고 이유없다며 불만의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이제 겨우 한숨 돌리게 되자 그동안 미루었던 OEM 11개 협력사를 한 회사씩 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OEM사들은 강원도 울진부터 울산과 남해안 전남 고흥반도 그리고 충남 서해안 등에 멀리 산재해 있었다.
그 때문에 나의 고충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는데
매일 같이 신경을 써야 하는 공장 말고도 그 여러개 OEM사들을 또 접촉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직접 방문해 본 결과 OEM사들은 어느 곳 할것 없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여건과 환경에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무시할 수 없어 서로에게 좋은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현재 공장에서 하고 있듯이 OEM사도 월별 주간별 생산 계획량을 미리 세워 보내주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보낸 생산계획인만큼 그들이 생산한 상품 전량을 납품받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힘들지만 그들은 납품량 차질이 대폭 줄게 되고 생산원가도 대폭 낮아져 크게 도움된다.
그들은 그동안 내가 언제 무슨 품목을 얼마나 요구할지 몰라 항상 전전긍긍했던 터였다.
추측과 예상이 잘 맞으면 다행이고 낭비가 아니지만 틀리면 헛일을 한 것이 되어 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애당초 계획생산을 하게 되면 그러한 원가 상승과 낭비가 없어 그들의 이익이 늘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때까지 긴급생산에 의지해 왔는데 계획생산으로 전환하면 당연히 이익이 커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공장에서 고생한 이유가 그 때문인데 그러한 사정은 OEM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가 생산계획을 미리 주었는데도 납품시기를 못지키거나 불량품이 나면 엄격히 책임을 추궁했다.
그래도 협력사들은 매우 만족해 했으며 수정할 사정이 발생하면 즉시 연락하여 납품차질을 미리 예방했다.
그렇다 보니 내 사무실 전화들이 온종일 불이 났다.
일반전화 3대와 휴대폰 또 보조 사무원 휴대폰도 있지만 피크타임 때는 모자라 통화가 어렵다고 난리였다.
대형 수송차량 7대도 24시간 운행하고 있었는데 센터와 통화하기 너무 힘들다며 불평이 자자했다.
그렇듯이 난 항상 바빴는데 업무를 이른 아침 6시30분에 시작하여 저녁 8~9시쯤에 끝났다.
그러나 월마감 작업 때는 더 늦어서 매월 27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일주일은 아예 퇴근하지 못했다.
그 달에 있었던 모든 업무를 취합 정리한 자료를 월초에 본부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마감자료를 근거하여 OEM사들 납품 대금이 결재되고 차량 운송비와 알바들 인건비가 지급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감자료가 정확해야 하는데 낮에는 업무를 해야 하므로 밤새기 밖에 시간이 없었다.
본부에서는 내가 마감자료를 보내면 의심하지 않고 무조건 결재했다고 한다.
나의 업무를 관리 감독하는 직속 상사 과장이 나의 업무가 워낙 많고 복잡하여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내가 근무하는 현장사무실 운영비를 동전 한잎 보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약 1년 가까이 보낸 결과 몸이 바짝 마르고 건강이 크게 쇠약해졌다.
당연한 일이다.
아침 거르기를 밥먹듯이 하고 점심은 먹는 편이지만 저녁은 거의 술이고 그 때 먹는 안주가 저녁이었다.
토요일 일요일은 물론 국경일도 쉬지 못하는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정말 내 스스로 생각해도 25년 회사생활에 그 기간처럼 열정적으로 일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게 원인이었을까?
그 때까지 한번도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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