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용지를 사장 앞에 내 밀면서
"하도 약속을 안 지키시어 구두가 아니라 서류로 받으려고 온 겁니다. 온 김에 공장을 구경한 거구요."
"??.....저희가…꼭 여기다 서명해서 약속해야 합니까? 김대리님은 한 번도 이런 거 없으셨는데요?"
"그럼... 내일부터 주문과 납품업무를 김대리하고 하시지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드릴까요?"
"??... 김대리님은 물류가 아니시고... 마케팅 아니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마케팅입니다....하지만 물류까지 다 해달라고 하시지요. 뭐."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전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죄송해요...정말 죄송합니다."
"좋습니다. 그러시면 이제 김대리 이야기는 저에게 하시지 않는 겁니다?"
"네, 약속드립니다. 절대로..."
"그럼..여기에 서명을 하십시오. 전 약속 잘 안 지키는 업체한테는 이렇게 서류로 받습니다."
"저희가 물론....약속을 많이 위반은 했어요...그렇지만...."
"걱정하실 거 하나도 없습니다. 억지로 하시라는 건 아니니까요.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전...?"
"여기에 서명 않는 대신 불량 날 때마다 사장님이 직접 우리 영업 쪽에 해명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욕 안 먹도록...사실 전 너무 바쁘고 힘들어 그 편이 더 수월하여 좋고 고맙지요."
"......저희가 어떻게....전국의 그 많은 영업파트에....?"
"우리 회사 영업파트가 전국에 수없이 많이 산재해 있다는 거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많은 곳에서 하루에 한번 이상 제게 전화 걸어 온통 난리 꽹가리를 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성깔있는 고참 영업사원들은 무식한 욕도 서슴치 않아요."
"죄송해요....힘드시고 바쁘신데 저희 때문에 더...."
"사장님, 전 죄송하다는 말씀 들을려고 온 거 아닙니다. 오죽하면 이 먼 길을 늦은 시간에 왔겠습니까?
전 내일 새벽에 출근해야 합니다."
"보셨듯이.... 말만 공장이지 형편없어요....앞으로 더 많이 노력할테니 제발 좀 봐 주세요."
"모두가 어렵다 하고 그래서 전에 우리회사 공장 관리과장이 봐 주다가 목 달아난 일 소문 들으셨지요?
하지만 그토록 어려우시면 제가 며칠 더 양보하지요. 그래도 열흘 이상은 제가 너무 힘들어 안 됩니다."
"?? 열흘요? 어휴...그건 너무 너무....."
"너무라고 하시지만 방금 말씀드렸듯이....전 매일 전국 수십 곳에서 욕을 먹고 곤욕을 치러야 합니다."
"그건 압니다. 그래도....."
"사장님, 전 마음만 있으면 못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공장에 와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여기 와 보니 그게 없어 보이더군요.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 9시 전인데 모두 다 퇴근했지 않습니까?
물론 9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지만요...."
"아, 그건.. 비싼 인건비 땜에요....많은 아줌마들 잔업수당을 주면 원가 코스트를 맞출 수 없어서요..."
"반장급 이상 되시는 분이 모두 몇 분입니까? 4~5명 쯤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네, 이분 부장님까지... 그쯤 돼요"
"그분들 4~5명과 사장님이 불량 원인에 대하여 연구하시면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반장급 이상이면 경험이 많은 분들이고 불량상품 문제도 생산품 전체가 아니라 일부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원료가 원인이 아니라 중간 제품 완성단계 처리과정의 문제라고 전 알고 있거든요?"
"네, 그래서 저희도 처음 성형처리부터 전 과정을 꼼꼼히 살피고 있는데도 꼭 몇개가 말썽을 부려서...."
"그 몇 개가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게 회사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니까요"
"네, 앞으로 좀 더 꼼꼼히 살피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기 사업은 사장님이 하시는 겁니다. 우리 회사를 위해서 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그건 그렇지만....."
"흔히 영업을 전쟁이라고 하는데 적에게 쏠 실탄에 불량품이 섞여 있으면 안 되지요.
내가 먼저 상대에게 쏜 실탄이 불발탄이면 상대가 늦게 쏜 실탄에 난 죽습니다. 안 그래요?"
"네, 맞습니다."
"사장님이 만든 총알을 가지고 우리 영업사원들이 매일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불량품을 여느 가정집에서 구매해도 문제가 되는데 대기업 구내식당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곳 영양사가 무시하고 넘어가 주면 다행이지만 시비를 한다면.... 그 결과 거래가 끊긴다면...."
"그래선 안 되지요, 앞으론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십시요. 저 같으면 밤에 잠이 안 와서 편히 다리 뻗고 못 잘거 같은데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아직 이익이 별로 없어 잔업수당 부담이 넘 커 못했어요."
"그럼 간부들 몇몇과 실험 분석을 통해 원인을 찾으시면 어떨까요.
간부들은 회사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원인을 찾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양해를 구하고요.
물론 낮엔 바빠서 시간이 없으니까 연구는 일과 후에 해야겠지요.
매일 하는 일이라 모르는 일 하는 것도 아니고....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
"그 분들이 수당을 꼭 요구하면 제품에 문제가 있으니 주고라도 해야지요. 사업이 그렇지 않은가요?
누가 봐도 최선을 다 하는데도 그렇다면 전 이해합니다.
그 경우엔 더 기다려 달라면 기다려 줘야 하구요.. 하지만 사장님은 이제까지 그게 아니었잖아요?"
"......네, 알겠어요...낼부터 그렇게 할께요...그래도.. 여기다 서명해야 돼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사장님이 그처럼 걱정을 하시니까 제품을 생산하는 현장 총책임자로 양보하지요.
누굽니까? 만일 약속을 못 지키면 저한테 욕 먹을 것을 각오해야 할겁니다."
"그럼 제가...."
"직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제품생산은 제가 담당해요. 사장님 제가 서명할께요"
"서명하시면 철저히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제품생산 책임자시면....공장장님이시군요?"
"네, 근데 여기선 부장이라고....."
"예, 알겠습니다. 암튼 부장 대우 받으시는만큼 책임도 크다는 건 잘 아실 줄 믿고요.
제가 좀 오버하더라도 양쪽 두 회사를 위한 일로 양해해 주시길 바라고 외람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회사가 어려우니까 무급으로 잔업은 물론 필요하면 휴일에도 일하겠다는 각오와 성의는 있으시겠지요?"
"네, 잘 알고 각오도 성의도 있는데요...여자고 가정이 있으니까....가정을 생각 안 할 수 없어서요"
"...제 말씀이 좀 심하더라도....사장님, 참고하세요. 요즘은 가정일에서 자유로운 여성분들 많습니다.
우리 공장에도 많이 계세요. 현장 총괄업무는 그런 분이 하셔야 하지 않나...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부장님에게는 서운한 말씀이겠으나 현실이 그렇습니다. 사장님은 이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셨을 겁니다.
부장님은 이 회사의 제품생산 책임을 맡은 이상 제품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제 말씀은.. 제품에 문제가 있는데 그 해결을 위해 머리 싸매고 노력할 수 없다면...그 이야기 입니다."
"저도 마음만은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 개인 사정이 허락치 않으니까....."
"가정은 당연히 누구에게나 중요하지요. 그럼 현장 책임자를 바꾸어 달라 사장님께 제가 요청드릴까요?"
".........."
"그건 곤란하시겠지요? 저도 그런 청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공장 제품 때문에 제가 지금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제품 생산을 책임진 부장님께서 개인 사정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 하신다 하면......
전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이대로 올라가 이제까지처럼 속수무책으로 매일 욕을 먹어야 합니까?"
"이제....센터장님 말씀을 잘 알았습니다. 책임감을 갖고 해 달라시는 말씀...고맙게 듣겠습니다."
"사장님, 제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오늘 내려온 목적도 그것을 보다 더 확실하게 하겠다는 것이구요.
그럼, 밤도 깊었으니 사장님과 부장님을 믿고 이만 올라가겠습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오니 새벽 2시였다..
다소 심하게 했고 그래서 잔뜩 겁 먹은 표정이었으니까 효과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어떨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