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외로운 별 이야기

2010. 9. 30. 오후 8:21:57

글자

또 하나의 추억

OEM(주문자 상표 생산)사를 보통 협력회사라고 말한다.
당시 저온중앙물류센터에 11개 협력업체가 납품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유별한 업체가 있었다.
대개의 협력업체 사장들이 중년의 남자인데 그 업체는 40대 중반 쯤의 여성이었고
그래선지 직원도 꼭 필요한 몇 명 외에는 모두 여성이었다. 
주문할 때마다 너무 답답하여 책임있는 상급자와 통화를 원해도 항상 여자가 받은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창업 1년 남짖한 작은 업체이고 몇가지 품목을 생산하여 전량 우리 회사에만 납품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공장에 내려온지 얼마 후 본사 마케팅부에서 김대리란 직원이 찾아왔다.
자신이 그 업체와 납품거래 계약을 했다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중에 있으니 잘 봐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영업에서 판매할 신상품을 찾아 그 생산업체와 계약하거나 자체 신상품 개발연구는 마케팅부 소관이다.

"이 봐요 김대리님.... 지금은 그 업체가 나를 도와 줘야죠. 난 이 공장 하나만 해도 정신이 없어요. 
 내가 왜 정신이 없는지 모릅니까?"

"아뇨, 잘 압니다. 다만...."

"다만 뭐요? 그 업체는 불량품 때문에 상품이 부족해 난리란 말에요. 오늘도 그래요. 직접 전화해 봐요!
 센터에 납품차 들어 오는 전량이 양호해도 모자라는 판에 오히려 반송되고 있으니 이거야 원..."

"알았습니다."

"전화하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오늘 중으로 다시 좋은 제품으로 보내 준답니까?"

"그게... 어렵다네요. 기계 생산이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거라서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된답니다."

"제품을 손으로 만들든 발로 만들든 주문하면 차질없이 납품하겠다고 계약한 거 맞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급하다고 자꾸 윽박지르고 독촉하면 불량이 오히려 더 납니다."

"???...그럼....보내 주는대로 군소리 말고 받아라...그 때까지 눈치만 보면서 마냥 기다려라 그겁니까?"

"그게 아니라 우리 입장은 급하지만 그 회사 사정이 그렇다는 거지요."

"그럼.. 그러한 그쪽 사정을 영업부에 말해 주었나요?"

"예, 그 업체 상품을 주력 판매하는 영업 담당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요? 설명해 주니까.. 담당들이 그 회사 상품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하던가요?
 우린 지금 그 회사에게 당신들 회사 제품을 팔아 줄테니 제발 물건 좀 가져오시오…하는 거 아닙니까?
 세상에... 물건을 제값주고 사 주면서 1년이 넘도록 애걸복걸 사정해야 하다니...."

"..........."

"난 다름 아네요...항상 어리다 보고 내 손으로 직접 씻겨주고 옷입히고 밥먹여 주면
 어느 세월에 어른이 되느냐.. 그거에요. 창업한지 1년이 넘었으면 이제 어른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씀은 맞습니다...그렇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없는 여자가 운영하는 작은 영세업체라서...."

"김대리님....여자니까 좀 더 이해해 주고 양보하는 건 좋아요. 그러나 그건 일반적인 경우지요.
 이건 회사 대 회사의 이익이 걸린 거래이고 사업입니다...난 여자라고 봐 줄 일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올라가거든 강력하게 경고하세요. 계약을 지키기 어려우면 해약하겠다고.... 너무 힘들어 안 되겠어요."

"그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처음보단 많이 좋아진 겁니다. 좀만 더 참고 기다려 주시면....."

"내가 넘 심하다고요? 난 지난 1년간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겁니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워낙 영세한 업체라서.... 우리가 어렵더라도 시간을 더 주어야 합니다"

"....그럼.... 보름을 줄테니까... 그동안에 불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라고 하세요."

"?? 15일은 불가능해요. 최소 몇 달은 돼야...품질개선은 그렇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허참.... 마치 그 회사 직원 같이 말하시네? 우리 직원이면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전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상품을 차질없이 대 주기로 계약했으면 제 때에 척척 보내 줘야지요.
 대 주지 못해 여러 사람 골치 아프게 하고 회사 이미지도 흐리고...그리고 참을만큼 참았다 생각합니다" 

김대리는 더 이상 말 않고 올라갔다.
그는 내 말에 크게 실망했지만 어쨌든 그 업체는 현 상태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 업체 상품 때문에 영업 측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급히 해결해야 했지만 공장에 그 보다 더 큰 문제들이 많아 신경 쓸 수가 없어 미루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숨 돌리며 김대리에게 보름안에 해결하라고 요구한 것인데 몇 달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대리가 젊고 마음이 모질지 못해 강하게 밀어 붙이지 못한 때문이다.

그래서 공장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그 업체의 잦은 불량품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로 하고
전화로 그날 저녁 8~9시경에 공장을 방문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급한 업무를 대략 마친 다음 5시경 출발하여 그 공장에 8시 40분 쯤 도착했는데
공장은 작업이 모두 끝났는지 불이 꺼져 있었고 사무실에서 여사장과 아줌마 한 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난 시간 절약을 위해 휴게소에서 저녁식사를 간단히 한 상태다.

그녀들은 같이 식사하려고 기다렸다고 했지만 시간이 없다면서 현장안내를 부탁했다.
그런데 김대리 말대로 현장이랄 것이 없고 대형 믹서기 두 대 외에는 길고 넓은 작업대가 전부였다.
생산 책임자인듯 한 40대초 쯤의 아줌마가 열심히 설명하며 불량이 많은 변명을 하느라 애를 쓰는데......
사실 나는 그 공장 제품 생산에 간섭할 필요도 자격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마케팅부에서 일을 시원치 않게 하는 바람에 납품업무가 원할하지 못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열심히 설명을 듣고 매모하면서 궁금하면 이해가 될 때까지 물었다.
상품창고도 들러 재고상품 보관관리 상태도 둘러 보았고
수송차량 상태도 체크하려 했지만 차 키를 기사가 가지고 퇴근하여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밤 늦어 사무실에 들어가 미팅을 했다.

"사장님, 제가 왜 공장을 방문했는지 아십니까?"

"......제품이 안 좋아서.... 공장을 보시려고 오셨겠지요."

"그 말씀은... 제가 공장을 다녀가면 제품이 좋아질 것이다...그래서 왔다..라는 말씀과 같은데요?"

"그 보다는....영업에 지장이 많아 힘드셔서.... 답답하시니까....그래서..."

"예, 그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 때문이면 바쁜데 이렇게 먼 곳을 늦은 시간에 올 필요 없지요.
 그런 일은 마케팅의  김대리가 할 일이고요. 제가 온 건 그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서류봉투에서 서류양식 용지를 꺼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 날짜와 약속한 사장 또는 책임자 성명 그리고 날인을 요구하는 양식이었다.
즉, 흔히 사용하는 "각서" 양식을 "약속"으로 제목만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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