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소동(1차)
누구나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그만두고 싶은 일을 겪게 되는데
난 D사에서 25년 근무하다보니 3번이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원칙을 고집하다 있었던 일이지만 그때도 지금도 잘못했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물류본부장의 명퇴요구에 응한 것까지는 괜찮은데 사업 권고에 응한 것이 판단 착오였고 잘못이었다.
만 55세 정년퇴직을 1년 반 남긴 싯점에서
본부장은 본부에서 저지른 실수를 해결할 목적으로 나에게 명퇴를 요구한 후에 사업을 권유했던 것이다.
나는 본부장의 명퇴요구에 두말 않고 응했으며 물론 그러한 속샘이 있는 것은 몰랐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생각은 했었고 그럼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의 말을 믿기로 한 것이 잘못이었다.
지금부터 사직하기 전에 있었던 3번의 사직서를 내게 된 사연을 먼저 이야기 하고 나서
어떤 연유와 이유로 그리고 어떻게 왜 본부장의 명퇴 요구에 응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할 예정이다.
그런 순서라야 명퇴와 동시 이곳에 내려와 생각지도 않은 사업을 하게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그 일을 겪은 시기가 들쭉날쭉이라 헷갈리겠지만 양해를 부탁드릴 수밖에 없다.
냉동제품을 해동(解凍)시키면 안 되는 이유는 이미 설명했다.
제품이 녹는 사고는 수송차량 냉동기가 고장나도 발생하는데 그 경우는 피해가 매우 크고 심각하다.
지금은 차량과 냉동기 성능이 좋아 문제없지만 옛날에는 차량과 냉동기 제조기술이 약해 고장이 빈발했다.
중대형(5ton 이상) 이상 냉동차량에는 본 엔진 외에 냉동기 전용 엔진이 별도로 장착돼 있는데
당시 국산 냉동기는 새것도 성능을 믿을 수 없는 상태라 고물 냉동기 애로는 말하는 입이 아플 정도였다.
그래서 새것을 원했고 그 무렵 신규 창업하는 운수회사들이 많아 최신형 냉동기 탑재차량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회사는 왠일인지 그러한 새차들을 외면하고 폐차 직전의 고물차량 11ton 5대를 지입계약한 것이다.
그 5대 모두 13년 된 노후차량이고 냉동기 역시 완전 고물이라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났다.
게다가 그런 고물 차량을 신형차량을 보유한 회사들이 제시한 금액보다 20%나 더 비싸게 계약한 것이다.
그처럼 이상하고 요상한 계약을 한 사람은 그 당시 소속부서 부장이었다.
그 때는 물류가 영업부에서 독립하기 전이고 저온상품 판매를 시작하면서 저온물류센터가 막 생긴 때였다.
그 때문에 차량 고장이 잦아 제품 수송업무에 애로가 극심하여 부장에게 말해도 통하지 않았으며
운수회사 사장에게 애로를 말하고 항의하면 그는 즉각 부장에게 일러 바쳤고 난 그때마다 핀잔만 들었다.
부장은 사장의 사정이 어려우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정이 어렵다면 새차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서라도 더욱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그럴 때마다 나를 찾아와 해괴한 말로 조롱하며 비웃었다.
예를 들면 차가 오래되긴 했어도 워낙 잘 관리했기 때문에 왠만한 새차보다 성능이 더 좋다고 떠들어대고
차를 아는 사람은 차령이 아니라 성능을 보는데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새차를 좋아 한다는 식이었다.
한번은 심야에 졸며 운전하다가 고속도로 옆 논에 쳐박혀 제품 2/3가 못쓰게 된 사고를 냈는데
자기도 냉동제품을 잘 안다면서 모두 이상없어 판매해도 된다며 피해보상 문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차량 컨테이너가 충격에 찌그러졌고 그 틈새로 논물이 들어가 대부분 제품이 상했는데도 막무가네였다.
물론 부장이 봐 주어 단 한푼 피해보상 없이 넘어갔다.
그렇듯 K 사장에게 피해를 입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판매량이 계속 늘어 애로 역시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나는 부장에게 또 냉동차량 고장발생 일지를 들고가 보여주며 강력하게 신차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장은 간단히 묵살했다.
그렇다면 혼자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 소용없으므로 이제는 차량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그 운수회사와 맺은 제품수송계약서 약관대로 즉, 계약 원칙에 입각하여 운행을 지시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해동사고를 염려하여 차량이 지역 센터에서 돌아오면 아무리 바빠도 냉동기 점검시간을 꼭 주었고
그 때문에 배차시간을 맞출 수 없으면 별도 운임을 지급하며 다른 차량을 불러 대체 운행했다.
차량 5대 상태가 모두 그 모양이라 냉동기 점검을 생략할 수 없었고 점검시간을 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추가 운송비가 발생했고 그 경우는 운수회사 책임인데도 우리 회사가 부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냉동기 점검 때문에 별도 운행을 할 경우 운송비를 운수회사가 부담하라고 한 것이다.
계약서에도 계약차량이 운행 못할 경우 운수회사 비용으로 다른 차량을 보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회사는 다른 차량을 보내지 않고 버티다가 냉동기가 고장나 상품이 해동되는 대형사고를 냈다.
그 당시 11ton 차량에 박스당 평균 4~5kg 상품을 3~4,000 박스 상차했고 물론 억 단위의 큰 금액이며
박스당 평균 4만원이면 1억원을 훨씬 넘고 상품 해동사고는 당연히 운수회사 변상이다.
요즘은 하물보험이 있어 문제 없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나의 배차지시는 매일 해야 하는 센터장 고유 업무라 잘못이 아니다.
계약서 약관에 의해 정상적으로 배차했고 배차에 따른 운송책임은 전적으로 운수회사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냉동기를 점검하지 않고 운행하려는 그 기사에게 괜찮겠느냐고 물었었다.
그 기사가 냉동기 점검 문제로 자신의 회사 누군가와 한참 통화한 후에 상차대에 차를 주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내 옆에 있던 상차 작업자들 중에 기사가 괜찮다고 한 말을 들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엄청난 해동사고가 터지자 기사는 점검시간을 주지 않고 운행하라고 했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해동사고 수습결과가 뜻밖이었고 엉뚱했다.
운수회사 잘못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내가 잘못했다며 피해를 모두 회사가 떠 맡은 것이다.
냉동기 상태가 안 좋은 것을 알고도 점검을 하지 않은 차에 상차하라고 지시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인데
그래도 부장은 미안했던지 업무상 불가피한 점을 인정하여 문책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해동된 전 제품을 여러 대리점에 나누어 반품된 형식으로 정리했는데 당연히 회사의 손실이다.
그러나 운수회사 사장과 수송기사들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그들도 괘씸했지만 그렇게 조치한 부장에게 더 화가 났고 치미는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여직원에게 사직서를 타이핑하라 하면서
사직사유를 개인사정으로 하지 말고 부장 밑에서 일할 수 없기 때문으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사직서를 부장에게 직접 제출하면서 후임자 선임과 업무인계 기간으로 15일만 근무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부장은 껄껄 웃으며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내 앞에서 사직서를 찢었다.
그러나 난 사직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누가 그 소문을 냈을까... 아마 여직원이겠지만... 사직 사유에 대한 소문이 영업부 전체에 쫙 퍼졌다.
소문이야 어떻든 난 모른체 하며 묵묵히 15일을 근무했다.
하지만 부장은 내 후임자를 선임하지 않았고 관리과장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사직 사유를 개인사정으로 다시 써서 과장에게 주고 승용차에 옷가방을 싣고 여행을 떠나 버렸다.
아내에게 정확한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서 목적지가 있을 리 없다.
그저 김삿갓처럼 구름 가는대로 바람 부는대로 어디라 할 것 없이 정처없이 전국을 떠돌고 싶었다.
첫날 밤을 온양 도고 온천에서 자고 그 후에도 인근의 덕산온천과 수덕사 등을 다니며 머리를 식혔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후 부산으로 내려가 바닷가에서 며칠 머물다가 고흥반도와 완도를 거쳐 진도로 갔다.
그리고 목포 유달산으로 갔다가 화순과 광주를 거쳐 서해안을 따라 천천히 상경했다.
그처럼 남해안을 일주하면서 약 20일간의 사직 여행을 끝냈는데....
그 당시는 휴대폰이 없던 때라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그만...아내에게는 며칠에 한 번씩 전화했다.
물론 20일동안 머리만 식힌 건 아니다.
마지막 15일을 근무하며 사직 후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생각한 것을 구체적으로 점검했다.
부장이 사직서를 찢었지만 그와 더 일하고 싶지 않아 사직하기로 작정하고 사직서를 다시 제출한 것이다.
그리ㅗ 한달 쯤 푹 쉬며 향후계획을 점검하기로 했으나 막상 점검이 끝나니까 더 쉬고 싶지 않았다.
부장과 과장이 집으로 찾아와 사과했다는 말을 아내에게 들어 알고 있었으며
부장은 꼴도 보기 싫지만 과장은 평소 나에게 잘 해 주었던 터라 집에 도착한 후 미안하다는 전화를 했다.
과장은 부장이 내 업무 전반을 소신대로 하라고 약속했다며 제발 마음을 풀고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소신대로 해도 좋다...실로 뜻밖이지만 부장이 그리 약속했다면 굳이 사직을 고집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내 없는 동안 센터업무는 완전 개판되었을 터......
개판이란 개의 낮짝 즉 얼굴이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러한 개 낮짝은 잠시 물과 비누로 씻어주면 되고 힘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때의 센터는
미친뇨자 헝크러진 머리칼처럼 마구 뒤엉켜 있어 어지간한 나도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거의 두 달을 제대로 잠 못자며 죽을 고생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