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외로운 별 이야기

2010. 10. 16. 오후 8: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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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 소동(3)


IMF가 맹위를 떨치던 90년대 후반
물류본부는 몇 년전에 센터를 통합하며 인력을 대폭 정리했기 때문에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센터 재고감사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만일 감사에서 지적을 받으면 당시 분위기상 센터장은 사직서를 쓸 각오를 해야 했다.

대개의 물류센터 감사가 다 그렇겠으나
센터에 보관되어 있는 실제 물량과 PC로 관리되고 있는 수량이 일치하는지 여부가 제일 중요하다.
그 당시 제품의 입출고관리 방식이 은행 통장의 입출금 또는 일반 가정의 가계부와 비슷했으며
즉 잔액(비축 재고)에서 입금(입고 물량)과 지출(출고 물량) 후 잔액(비축 재고)이 남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현금 대신 물량(상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차이고 상품도 사실상 현금이다.

그리고 또 제품의 유통기한이 매우 중요하므로 선입선출을 철저히 하여 전 제품이 양호해야 한다.
선입선출이란 생산 공장에서 센터에 입고된 순서로 제품을 출고하는 것을 말하며 
먼저 입고된 제품을 먼저 출고해야 오래되어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이 센터에 재고로 남지 않는다.
설사 제품 수량이 맞더라도 유통기한이 불량한 제품은 판매가 불가하여 재고부족과 같은 결과가 된다.

유통기한 관리도 쉽지 않지만 센터의 실재고와 전산재고를 정확히 일치시키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
많은 가정주부들도 가계부를 쓰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잔액이 틀리는 경험이 많을 것이다.
얼마 안 되는 가계부가 그런데 물류센터는 매일 수 십억원의 물량이 움직인다.
그리고 가계부는 찾다 못 찾으면 적당히 넘어가도 문제 없지만 물류센터 재고는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
물류부에서 대졸 신입사원 또는 경력사원을 채용할 때 면접자가 단골로 질문하는 문제가 있다.
먼저 일반직이 아닌 물류직이라고 전제한 다음

100  + 100 ㅡ 100 = (  ?  )      

정답은 < 100 > 이 아니라 < 100 이어야 한다 > 이다.

당연히 < 100 > 이지만 현장에서 일해 보면 < 100 > 이 아닌 결과가 매일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그날 최종 마감 실재고와 전산재고가 < 100 이어야 > 하며 틀리면 < 100 > 으로 맞춰야 한다.
따라서 면접자가 정말 물류 경력자면 그 질문에 그렇게 답할 수 있고
또 왜 < 100 이어야 > 하는가 질문에도 답할 수 있지만 경험없는 사람은 절대 정답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전 날에서 오늘로 이월된 어떤 제품의 재고가 < 100 > 일 때

그에 오늘 < 100 > 이 입고 되고  또 < 100 > 을 출고했다면 < 100 > 이 남고 내일로 이월된다.

그런데 작업 후 실재고를 체크해 보면 이상하게 < 99 > 또는 < 101 > 이 남아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까 어떤 제품이 < 1 > 박스 없어지고 반대로 다른 제품이 < 1 > 박스 더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까닭이 있으며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전산으로 출력한 출고 전표에 의하여 
A 상품 1박스를 출고해야 할 때 착각으로 B 상품 1박스를 출고하면 그러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 경우 전산 재고는 A 상품이 출고되어 수량이 1박스 줄고 B 상품은 출고가 없으므로 수량 변화가 없다. 
그런데 A는 출고가 안 되어 1박스가 남고 B는 출고하면 안 되는데 출고되어 1박스가 부족하게 된다.

그에 또 당초에 A 상품을 주문한 거래처에서
주문하지 않은 B 상품이 왔으므로 그 사실을 즉시 말해 주면 출고시에 착오가 있었음이 곧 밝혀지지만
하지만 대부분 거래처들은
B 상품이 주문한 상품이 아닌데도 A 상품보다 더 비싼 상품이면 모른체 받고 인수 서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출고 전표에 거래처 인수 서명이 있으면 주문 상품을 정확히 인계한 것이 되어 찾기 어렵다.

그 뿐만 아니다.
전표에 찍힌 숫자가 흐리거나 6을 8 또는 9로 잘못 보고 제품을 출고해도 2~3박스 부족하게 된다.
상품이 더 출고된 경우는 '절대' 말이 없지만 반대로 8을 6으로 보고 적게 출고히면 100% 항의가 온다.
아무리 똑똑한 대학생 알바들도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다 보면 피곤하여 실수를 하게 되고
물류센터 천정이 매우 높아 전등이 밝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다.

지게차 작업 때문에 전등을 낮게 설치할 수 없고 잦은 전등교체가 힘들어 흐린 수은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매일 수많은 제품을 입출고하다 보면 오류와 착오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발생한다.
힘든 제품 이동 작업은 거의 지게차로 하지만 품목과 수량 확인은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반하여 전산 PC는 정확하고 융통성도 없다.

다만, PC 담당직원의 입력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찾고 수정하는 일이 또 매우 힘들고 어렵다.
내가 매일 늦게까지 일한 거의 대부분이 재고가 틀린 이유를 찾아 맞추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몇 년간 PC업무를 했던 예쁜 P 양을 다른 부서로 보내고 못생긴 K 양으로 바꾸기까지 했는데 
P 양에게 오는 전화가 너무 많아 업무집중이 안 되는지 오류가 많았고 집도 멀어 찾으라 할 수도 없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업무가 중요한 나로선 정확하게 일하는 여직원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K 양으로 바꾼 후부터 항상 붐비던 사무실이 한산해졌고 전화 밸 소리도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박스당 평균 4만원이고 파랫트 당 50박스 적재하면 200만원...그것을 입력오류로 더 보낸 일도 있었는데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물류센터 현장업무는 생각과 달리 그처럼 쉽지 않고 만만치가 않다.

제품 입출고와 상하차작업은 주로 아르바이트들이 하고
그들 대부분이 몸이 유연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대학생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더하기 빼기 숫자에 약하거나 쉽게 혼동할 리 있겠는가.
또한 A 제품을 B 제품으로 전표를 잘못 보거나 읽어 착각하는 일도 평상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매일 몇 건씩 누군가 꼭 실수를 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실수를 인정하는 녀석도 없고 뭐라고 한마디 하면 휭하니 가 버리는 것이다.
회사의 알바 일당이 너무 적어 그렇게나마 일해 주는 것이 고맙다고나 할까.
그리고 젊은이들 특유의 서두름 그리고 자신감과 순간적 방심으로 안전사고도 가끔씩 발생하곤 했다.

알바들 작업 지휘는 직원이 한다.
그 직원들의 주 업무가 알바들이 착오없이 작업하도록 현장 업무를 철저히 챙기고 살피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오와 오류가 매일 발생하는 것이다.
착오가 생기면 그 날 바로 찾아 수정해야 하며 그 시간 여하에 따라 나와 직원들 퇴근이 늦고 빨라진다.
만일 그 일을 바쁘거나 귀찮다고 다음 날로 미루면 다음 날 착오와 혼동되어 찾기가 더욱 어렵다.

센터장은 전국 각 지역 센터들의 주문을 사전 예측하여 차질없이 적정재고를 매일 비축해야 하며
센터에 비축 보관하는 제품을 온전히 관리하여 PC 전산재고와 언제나 정확히 일치시켜야 한다.
물론 상품을 잃어 버려 수량이 틀리면 그 상품을 변상해야 한다.
냉동식품도 박스 당 금액이 몇 만원에서 몇십만원까지 있어 센터 비축재고가 항상 몇 십억이 넘었다.
그 때문에 잘못 관리하면 월급과 퇴직금은커녕 자신의 재산마저 잃을 수 있다.

퇴직 몇 년 전부터 물류센터 규모가 3천평에 매일 2십여대의 크고 작은 수송차량이 출입하고 있었는데
항상 많은 인원들이 북적거리며 혼잡했고 실수가 잦아 상품을 잃어버리는 사고가 많았다.
끝내 찾지 못하면 생산공장 협조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약점이 있으면 업무에 어려움이 따른다.
흔히들 PC가 업무를 다 한다고 하지만 PC는 전표 뿐이며 상품을 보내고 들이는 일은 인력이 한다.
그 때문에 센터장은 PC와 센터 근무자 모두가 차질 없이 일하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센터에는 알바들 외에 직원이 여러명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센터장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업무가 원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이 없으며 퇴직하면 끝이고 금전적 배상책임은 센터장의 몫이다. 
그런 특성 때문에 센터장에게는 수송차량 운전기사 포함하여 센터 근무자들의 인사권이 있다.

그런데 몇 년을 함께 일해온 PC 담당직원의 배신으로
엄청난 금액의 재고부족 사고가 터졌고 그 변상과 함께 사직서를 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아니, 상황에 따라선 변상과 사직서 뿐만 아니라 어쩌면 형사 입건되는 고초를 겪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재고부족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갑작스런 감사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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