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외로운 별 이야기

2010. 10. 16. 오후 8:23:25

글자

사직서를 내는 방법밖에는


내가 공장에 내려가 3년 쯤 되었을 때였으며
당시 그 직원은 27세로 결혼하여 애가 있었고 형편상 가족과 떨어저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이 남쪽지방 먼곳이어서 한달에 두번 정도 다녀 온다고 했는데
그 때문에 비용이 필요하여 제품에 손을 댄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시챗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샘이다.
나는 아무나 쉽게 믿지 않는 대신 한번 믿으면 의심하지 않는 결점이 있었고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 직원에게 PC를 맡기고 1년 넘어 꼼꼼하게 점검했으나 업무적 실수와 오류 외에는 성실한 편이었다.
그리고 24~5세 어린 나이고 주위에 눈이 많은 터라 제품에 손을 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업무 경험과 책임감을 생각하여 왠만한 일은 저 스스로 하라고 맡겼던 것인데
이 머리 좋은 녀석은 겨우 몇 년을 참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몇 년 후 내가 정년 퇴직하면 데리고 있는 직원 중에 그 녀석이 제1의 센터장 후보였기 때문이다.
제품에 손 대지 않아도 나에게 배운대로 하면 용돈 정도는 충분하고 조금 더 노력하면 더 많을 수 있다.

물론 나는 모두 순수한 수입으로 하지 않고 그 대부분을 업무를 위해 사용했다.
나이가 많아 젊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며 대화를 하려면 잦은 술자리가 제격이고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젊은 그는 나와 달리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술자리도 최소한으로 가능하다.
내가 말은 하지 않았어도 그 정도는 그 녀석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물류본부 자체 감사를 받게 된 것이다.
감사도 센터장 업무 중에 중요한 일이고 직원들은 처음이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직원들을 불러 놓고

"본부 감사가 3일 후에 들어 온다는데 어떤가? 문제는 없겠지?"

".........."

"왜? 아무도 말이 없어, 문제 있나?"

"예.. 그게....."

"??? 자네 그동안 내가 물을 때마다 아무 문제 없다고 하지 않았나?"

"........."

난 뭔가 있음을 알고 즉시 센터 전 제품에 대한 재고조사에 들어갔다.
보통 때는 직원들이 했지만 그날은 나의 주도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정밀 재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끝난 조사결과가 너무도 엄청나 믿기지 않을 정도였는데
전산재고보다 실재고가 턱 없이 많이 부족하여 그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4천만원이나 되었다.
당시 내가 살던 영등포 아파트가 1억이 못되므로 대략 절반에 해당하는 큰 금액인 것이다.

세상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내가 그 꼴을 당한 것이다.
직원들도 너무나 어이없고 기가 막힌지 아무 말 못하고 사무실 천장만 보며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난 원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성격이고 얼굴 표정도 바꾸지 않지만 이렇다면 문제가 다르다. 
무엇보다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직원들을 꾸짖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해 봐야 소용없을 뿐더러 직원들도 크게 충격받아 어찌 했으면 좋을지 몰라 걱정하는 상황이다.
직원들을 보내고 그날 밤 꼬박 뜬 눈으로 보내며 고민했으나 그 상황에서 좋은 방법이 있을 턱 없다.
재고 감사 목적이 사람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 재고가 단 1박스만 부족해도 문제될 수 있다.

물론 내가 철저하게 업무에 임했다면 1박스가 아니라 단돈 만원도 부족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40만원 400만원도 아닌 무려 4천만원이니.......
이건 누구에게도 변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할 엄청난 편차이고 금액인 것이다.
게다가 해결할 수 있는 날짜가 불과 이틀밖에 없다.

사람은 너무 기 막힌 일을 당하면 오히려 담담해진다던데
우선 쉽게 예상되는 일은 잃어버린 제품 변상과 함께 불명예 사직이다.
그 긴긴 20여년을 가정을 팽개치고 온 힘을 기울였던 노력들이 말짱 헛일 허사가 되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회사는 어쩜 형사고발하여 결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무슨 창피고 그토록 싫어하는 자존심 구기는 일인가.
물론 나는 제품을 도둑질한 일 없으므로 형사고발해도 걱정할 일은 없다.
재고부족에 대한 변상도 퇴직금으로 변제하면 된다.
그러나 회사는 그 직원을 고발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는 형사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믿었던 배신감과 불명예 사직이 억울하여 녀석이 구속당하여 고생해도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시골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의 부인은 여느 여자들과 달리 혼자 농사짓는 시어머니를 도와야 한다며 시골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사문제는 내가 변상하더라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날 오후에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서울 본부 방향으로 출발하는 수송기사편에 내일 하차 후에 본부에 들러 전하라며 올려보냈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직 사유를 개인사정이라 하고 별도로 재고를 지키지 못한 책임 때문이라는 내용을 간략히 첨부했다.
자세한 내용은 본부에서 내려와 조사하면 밝혀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날 퇴근 무렵 공장장 사무실을 찾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동안 적극적으로 많이 도와 주었던 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다 듣고 나더니 어이없어 하면서

"그동안 회사를 위해 무지무지하게 고생하셨는데 이런 일이 다 생기는군요."

"그러네요. 바쁘게 다른 일을 많이 하다보니 정작 내 업무를 소흘히 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 직원을 탓하며 책임회피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책임이 나한테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내가 이형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고마운 말씀이지만....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시간이 많아도 불가능한데 그나마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공장장은 차량기사 전화를 묻더니 전화하여 본부 전달 서류를 다시 갖고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 기사는 그 서류봉투에 내 사직서가 들어 있는 것을 몰랐다.
다음 날 출근하니 공장장은 자기 사무실로 와 달라 하면서 어제 밤 간부들과 내 문제를 논의했다고 했다.
어떻게든 내가 불명예 사직이 안 되도록 도와주자고 결정했다는 것인데
그야 당연히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이었지만 공장이 도와 준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부족 금액 4천만원 중 3천만원은 그 공장 제품이라 가능하지만 천만원은 11개 OEM사 제품이기 때문이다.
OEM사마다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또 그들 중에 누가 물류본부에 고발할 수도 있었다.
유일한 방법은 개인적으로 천만원을 변상하는 길인데 갑자기 그런 거액의 현금이 집에 있을 턱 없다.
아무튼 소문나지 않게 해결하려면 친한 영업담당에게 부탁하여 매출전표를 찍고 곧 입금하는 방법뿐이다.

어쨌던 일단 아내에게 전화하여 사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뜻밖에도 천만원을 즉시 보내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감사 하루전에 가까스로 부족물량을 맞추었고 감사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것은 물론 두말 할 것 없이 공장장이 도와 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형이 공장을 도와 준 것에 비하면 이번의 그것은 새발의 피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공장에 와서 한 일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어쩌면 공장장 말이 사실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공장장과 과장은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달을 직원들 몰래 고생하며 신경을 써야 했다.
나에게 준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수율을 조금씩 낮게 조정하는 방법으로 해결한 것이다.

생산 수율이란 제품 생산을 위해 투입한 원료 대비 생산율이다.
즉, 어느 제품 1ton 생산에 필요한 원료가 1,2ton일 경우 1,25ton을 사용하면 수율이 낮은 것이 된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수치로 낮추어 조금씩 하다보니 거의 반년이 걸린 것이다.
아무튼 그 문제가 끝난 그날 공장장과 과장에게 크게 한 턱 샀다.

그리고 천만원 빚 때문에 아내가 1년 넘어 힘들게 보냈는데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지만 나의 회사생활에는 그렇듯 뼈아픈 큰 실수와 오점이 있었다.
감사를 이틀 앞둔 새벽에 재고조사로 전체 부족물량이 확인되자 사고를 친 그 직원 녀석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떨면서 제발 형무소는 가지 않게 해달라며 울면서 무릎꿇고 애원했다.

그동안 1년 넘게 남몰래 고민하면서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었다는 것인데
그렇듯 통사정하며 형무소에 잡혀가면 자살할 수밖에 없다는 녀석의 넉두리가 어쩜 사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순진한 녀석을 꼬드긴 영업사원이 더 괘씸했고 절대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변상을 해도 회사는 두 녀석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행히 공장장의 도움으로 사건이 표면화되지 않고 조용히 수습된 것이다.
어쨌던 그 사고는 두 녀석이 오랫동안 그 짓을 할 수 있도록 방치해온 나의 잘못에서 비옷된 일이었다.
결국 나는 PC담당을 바꾸는 것으로 매듭짓고 아무리 바빠도 업무점검을 꼭 하기로 했다.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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