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기억에 남는 일 (1)
이 이야기는 영업부 소속 시절 이야기 할 때 했어야 하는데 더 늦으면 잊어버릴 것 같아 하기로 한다.
저온물류 초창기 무렵은 영업부도 판매거점 확보와 시장확대를 위해 주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매월 목표 매출이 큰 폭으로 올라 전 직원이 새벽 출근하여 밤 늦게까지 고생이 극심했다.
그래도 남자들은 승용차가 있어 나은 편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사원들 애로가 말할 수 없었는데
업무시작이 7시였으니 한두 시간의 원거리 출 퇴근자들 고충이 어떠 했겠는가?
게다가 영업부서 운영은 거의 군대식이었다.
직급과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매우 엄격했으며 고객 서비스 특히 친절교육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흔히 보는 90도 허리 꺾기 인사법도 그때 처음 등장했다.
그 당시는 또 '고객만족' 이 일반적이었지만 회사는 한 단계 UP된 '고객감동'을 교육하고 있었다.
회사는 그런 식의 연수교육을 매년 2~3회 실시하면서 시장을 급속히 넓혀 나갔다.
생각하면 매우 힘든 회사생활인데도 대우가 비교적 좋아 힘들다고 사직하는 이탈자는 거의 없었다.
기본급이 타 회사보다 많은데다 각종 성과금과 인센티브 제도가 아주 매력이었다.
다만, 대부분 20대들이라 휴일과 여유시간이 너무 없는 것이 불만이라 할까......
월 매출목표를 달성하면 꼭 회식을 했고 연말에도 송년행사겸 회식을 성대하게 했다.
항상 팽팽한 긴장속에서 지내야 하므로 쌓인 스트래스를 완전히 풀고 재충전하기 위해서였다.
장소는 인원이 많아 주로 예식장을 빌려 했으며
그 때마다 모두가 마음껏 먹고 마시며 노래와 춤 그리고 장기자랑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행사가 부담스러워 참석하지 않고 싶어도 행사 때마다 초청되었고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여사원들의 파트너를 해 주며 낭패스럽고 짓궂은 장난을 다 받아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사원들이 파트너로 나를 많이 택한 것은 업무가 다르고 나이도 많아 오해와 잡음이 없기 때문이다.
말 많고 스켄들과 루머가 판치는 영업부에서 그날 파트너로 제격인 것이다.
당시 영업부는 대리 과장은 물론 부장도 요상한 소문들이 심심치 않았다.
내가 데리고 있던 여사원 P 양은 그러한 부서내의 요상한 소문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것은 그냥 소문이고 어떤 것은 사실이라는 것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라 쓸데없는 소문과 오해를 싫어하는 여사원들은 그럴 염려없는 나를 선택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들 일부는
한창 분위기가 달아 오르면 여사원에게 야한 밀착을 서슴치 않는 짓궂은 남자 영업사원들을 흉내내어
사정없이 야한 짓을 하는 바람에 즐거워 할 수도 난처해 하기도 곤란하게 하는 일이 많았다.
그때 곤혹스러워 하는 내가 남자들에게 당하고 황당해 하는 여사원들 모습이라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회식 때마다 처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젊은이들은 의례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1차 회식이 끝나면 대부분 많이 취해 녹초가 되었고 그 때부터 여사원들도 과감하게 변신하는 것이었다.
술에 약하거나 못해도 예외 없었다.
고참 담당들과 젊은 과장과 대리들이 무조건 인정사정없이 의무적으로 마시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잔뜩 취한 상태에서 한 사람씩 나와 장기자랑을 해야 재미가 더 있기 때문인데
대개 노래와 춤을 추지만 최고 인기는 당연히 피트너와 선정적인 요상한 행위였다.
하지만 파트너 선택권이 여사원에게만 있고 파트너로 지정받은 사람은 무조건 그에 응해야 했다.
만일 여사원이 그러한 룰을 못한다며 거부하면 영업사원 자질에 문제 있다고 협박?하여 굴복시켰는데
회식 행사를 통해 영업활동에 꼭 필요한 배짱을 키우는 교육이라는 것을 여사원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사원들은 거부할 수 없다는 핑계로 그런 여흥을 더 반기며 즐기는 듯 했다.
그동안 쌓인 스트래스를 모두 풀겠다는 듯 신나게 흔드는 막춤은 현란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런데 파트너가 되어 그에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맞출 수 있겠는가.
그러나 모두가 웃고 즐기는 시간이므로 난 평소의 체면을 접고 분위기에 편승하여 재미있게 해 주었다.
여사원이 너무 취해 다리가 풀려 휘청거리면 등에 업어 한바퀴 도는 것으로 통과하고.....
그렇게 뒷풀이를 모두 끝내고 나면 나 역시 항상 피곤하고 많이 취한 상태라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잊을 수 없는 또 한가지 (2)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 당시 영업은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이었다.
매일 아침 조회가 끝날 때마다 사무실 건물이 들썩 거릴 정도로 크고 우렁찬 구호를 외치는데
조회를 아침 7시에 시작하므로 한두 시간씩의 원거리 출근자는 아침도 못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보통의 구호가 아니고 악을 바락바락 쓰며 심장 깊은 곳에서 쥐어 짜내는 우렁찬 괴성이었다.
<목표 달성!>
<불가능은 없다!>
<전쟁에 2등 없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의 식품코너 입구는 매우 중요하다.
그 때문에 그 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업체간 경쟁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은 매장측에서 개입하여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 그 당시는 그 문제로 시끄러웠고 말썽이 많았다.
간혹 경쟁사와 유혈 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그것이 두 회사 집단 난투극으로 확대되어 우리 사원이 사망한 사고까지 있었다.
매장의 좋은 위치를 서로 선점하려는 영업사원간 싸움이 결국 외 딴 장소에서 집단 패싸움을 하게 되었고
우리 사원들은 단순 주먹싸움으로 알고 갔으나 상대들은 각목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각목에 당한 것이다.
두 회사는 사고를 조용히 수습하기로 합의했다 하고 회사장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난 장지까지 다녀왔다.
회사는 그 사고 이후 무술 고단자 여러 명을 영입했으며
사내에 무도관을 만들어 고인의 영정을 걸어 놓고 영업사원 모두가 틈틈이 무술을 연마했다.
그래선지 어쨌던 그후부터 그러한 큰 싸움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