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본부장의 야망과 대실수
물류가 영업에서 독립하여 겨우 안정되었지만 업계 최초라 경험이 없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는데
아무튼 물류업무 안정은 전 직원 특히 현장 직원들이 헌신적으로 희생한 결과이고 매우 값진 것이다.
그 기간의 두 본부장도 그 덕분에 즉 '신물류'를 정착시킨 공로로 더 큰 사업부 본부장으로 영전해 갔다.
그런데.....
그 두 본부장은 이사급 중역이었는데 이번의 신임 3대(三代) 본부장이 부장도 아닌 차장인 것이 문제였다.
그가 전임 본부장 못지 않은 실적을 욕심낸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러나 새 사업에 도전하면서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 못한 것은 본부장 자질이 의심되는 중대한 실수였다.
한번도 해본 일 없는 신규사업을 하려면 정확한 정보와 그에 따른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임 본부장은 신규사업 즉, "물류대행사업"을 잘 모르면서 도전한 것이다.
아니, 본부장과 본부 간부들은 잘 안다 생각하고 도전했겠지만 내가 볼 때는 무모한 도전 다름 아니었다.
더구나 입찰공고문에도 명시돼 있고 또 사업설명회에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도 입찰에 응했는데
내가 아는 한 그 당시 우리 회사는 N사와 H 사가 요구하는 제반 업무를 충족시킬 수 없는 여건에 있었다.
우선 당시의 회사는 냉동제품(영하 18도 이하)만 판매하고 있어 냉장제품(섭씨 0~10도) 전문가가 없었다.
처음 저온제품을 시작했을 때는 냉동 냉장제품을 병행 판매했다가 몇 년 후 냉장을 계열사에 이관했으며
그리고 20년 이상 지나 당시 근무자들이 모두 퇴직하여 냉장제품 물류 경험자는 나 혼자였다.
따라서 냉장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터라 점포 배송용 중 소형(2,5 ~ 5ton) 냉장차량이 한대도 없었다.
그에 또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필요할 때마다 배차 가능한 중소형 냉동 냉장차량을 보유한 운수회사가 없다.
지금은 대 중 소형의 냉동과 냉장차량 전문 운수회사가 많지만 그 때는 한 회사도 없었다.
따라서 매일 들쭉날쭉인 주문량을 차질없이 배송하려면 지입차량을 최대치 주문량에 맞춰 계약해야 하는데
주문량이 적은 날은 배차를 못하는 차량이 다수 발생하여 심각한 적자 요인이 된다.
그처럼 그 당시는 사회 전반적으로 식품의 냉장보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으며
햄 소시지 우유 등 육가공 외에 과일과 채소류는 일반차량에 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영국계 유통회사 T 사는 과일과 채소류 배송시에 섭씨 10도 이하로 유지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물론 어느 일부가 아니라 농장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수 배송과 유통과정 전체이다.
그 훨씬 이전에 나는 미국계 유통회사 W 사와 프랑스계 C 사 또 M 사 E 사 등이
과일과 채소류 등의 수 배송을 어찌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그들 점포 입출고 상황을 알아본 일이 있었다.
특유한 나의 호기심 때문이었으나 한 회사의 저온물류 담당자 입장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이름 없는 작은 국내 회사와 연계한 W 사 C 사 등은 예상했던 대로 냉장배송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었고
그들 업체보다 국내 물류 기반이 월등한 E 사 역시 배송차량문제로 많은 애로를 겪고 있었다.
농산물을 납품하는 농가들도 저온창고 시설을 엄두도 내지 못해 상온에서 분류 포장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물류센터에 납품하는 차량도 거의 모두 일반 카고트럭이었다.
그리고 농가들이 영세한 때문보다 과일과 채소를 왜 냉장차량에 실어야 하는가..라는 인식이 더 문제였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데도 N 사와 H 사는 무조건 저온차량 수 배송을 요구했고 회사는 그에 OK 한 것이다.
전임 두 본부장의 목표가 26개 지역센터를 7개로 통폐합하여 안정시키는 일이었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신임 본부장 O차장은 그들이 이룬 업무기반을 활용하여 새 사업인 '물류대행업'에 도전한 것이다.
그럼 '물류대행업'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물류업무를 수행하는 조직(부서)이 없는 회사의 물류업무를 돈 받고 대행해 주는 사업이다.
회사는 그 때까지 사내물류(社內物流 : 본사와 전 계열사 물류업무)만 해 왔으나
이제는 영역을 넓혀 사외물류(社外物流 : 타 회사 물류대행) 사업까지 하겠다는 의욕적인 도전이었다.
그러니까 그동안 경험하여 축적한 물류업무 노하우를 활용하여 대외 물류대행사업까지 하겠다는 것인데
바로 전임 본부장이 시기가 아직 이르다며 보류했던 사업이었다.
그런데 마침 국내 굴지의 공기업 N회사에서
물류 전문업체의 업무대행 입찰공고를 냈고 O차장이 용감?하게 도전하여 낙찰에 성공했으나
사업 내용을 잘못 파악한 결과 낙찰가가 턱없이 낮아 사업 수익을 내기는커녕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 당시의 진행 상황과 과정이 복잡하여 알기 쉽게 요약하면....
공기업 N 사는 초거대 조직인데도 자체 물류 조직(부서)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류업무 그것도 난이도 높은 저온물류 조직과 업무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고
그 일을 대행해 줄 물류전문업체를 선정하는 입찰공고를 낸 것이다.
계약기간은 첫해를 1년으로 하고 매년 재계약시마다 거래조건을 조정하면서 1년씩 연장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N 사가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업무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낙찰받은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말해서 그 일을 쉽게 보고 입찰가를 턱 없이 낮게(내정가의 1/3 수준) 써 낸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야말로 저온물류의 무지를 드러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실로 부끄럽기 그지 없는 창피한 일이었으며
만일 나에게 조언을 구했으면 그런 상황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온도 쉽지 않지만 저온물류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여 어렵고 신중을 요한다.
이론상으론 상온이나 저온 모두 왠만큼 전문지식과 경험만 있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비록 많이 부족하긴 해도 그 정도 일이면 10여년을 머리 싸 매고 골치를 앓지 않았다.
저온물류는 그렇듯 누구나 이론만 배워 알면 곧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천변만화 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창의력과 순발력 또 장기간 경험이 없으면 원할히 수행하기 어렵다.
몇 년 전에 정부는 경제 강국들의 압력으로 유통시장을 개방했으며
미국계 W와 프랑스계 C 또 M 등 세계적 유통회사들이 들어와 국내의 E 사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에 또 영국계 유통회사 'T' 사가 국내 S 기업의 'H' 로고를 빌려 대구역 근처에 1호 점포를 오픈했는데
향후 1년 안에 약 20 개 점포 그리고 5년 이내에 5~60여 개 점포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 H 사에 농, 수, 축산물을 납픔 계약한 N 사가 물류조직이 없어 대행공고를 냈고 회사가 낙찰한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농, 수. 축산물의 수 배송을 당시의 국내 수준으로 하려고 했으나
H 사는 선진국 레밸의 저온 수 배송을 강력히 요구했고 회사에 그런 경험과 준비가 되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미 낙찰한 상태이고 계약대로 업무를 시행해야 할 일자가 되어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엉망이고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어 H 사와 N 사가 요구하는 수 배송이 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항의가 빗발치자 당황한 본부장은 대구지역 물류센터 직원 대부분을 투입하여 수습하려 했지만
대구센터 역시 빠듯한 인력으로 간신히 버티던 상태라 인력이 너무 부족하여 업무가 마비되었다.
그에 대한 영업부 항의와 H 사에 지원나간 상온물류 직원들도 일 처리를 잘 못해 H 사 항의는 계속되었다.
그래도 N 사와 계약을 취소할 수 없는 것은 억대의 입찰보증금을 위약금으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 금액은 사장 결재를 받아야 하고 본부장이 문책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우물쭈물 하다가 불과 일주일만에 3천여만원의 적자를 내어 본부장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에서 매일 회의를 열며 타개책을 모색했지만...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계약을 취소하는 길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계약 취소는 타당한 사유 아니면 징계를 피할 수 없고 보나마나 피해배상과 함께 불명예 퇴직이 뻔하다.
이번의 물류대행 계약은 개인과 개인이 아닌 국내 유명 재벌그룹과 공기업간 계약인 것이다.
또한 정상적인 모든 절차를 밟아 변명할 여지도 없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 계약을 파기하면 회사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게 돼 있다.
그 때문에 사업을 추진한 신임 본부장과 참모급 간부들은 어떤 형태로든 문책과 징계를 피하기 어려웠다.
결과가 그렇게 될 것을 모르고 그들은 여러 회사를 물리치고 낙찰에 성공했다며 좋아 했었는데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없고 매일 이마 맞대고 궁리해도 뾰족한 좋은 수가 없었다.
평소 그들은 물류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엘리뜨임을 자처했다.
하지만 그들은 현장을 잘 몰랐고 그런데도 잘 안다고 착각했다가 큰 코를 다치게 된 것이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월 억대가 넘는 적자는 예삿일이 아닌데도 계속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거래조건 경신이 1년 후 재계약 때나 가능하여 그 때까지 십 몇억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니 애초에 본부장에게 입찰을 권유한 참모급 간부들이 얼마나 죽을 맛이겠는가.
본부장 지시로 참모들이 입찰정보를 수집하여 추진한 결과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