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근무 요청
센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있더라도 후임자가 할 일이고 빨리 오지 못하는 사정도 내가 걱정할 일 아니다.
명퇴 당하여 쫒겨난 처지 아닌가.
또한 그 때문인지 본부는 20여년을 근무한 3명을 목자르면서 공장도 해 준 송별회를 해 주지 않았다.
만약 송별회를 해 주었다면 그때 후임자와 상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며칠 전에 잠시 들렸다가 차 한잔 마시고 곧 가버렸으며 업무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젯밥에는 관심있는지 부수입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에
센터장 업무가 원래 그렇듯이 업무를 편하게 하면 입도 편하여 땡전 한푼 없다고 말해 준 것이 전부였다.
그는 40대 중반에 센터장 경력 10년 쯤의 중고참인데도 저온상품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고
업무 스타일이 나와 정반대여서 그동안 내가 해온대로 하지 않던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위인이었다.
그러나 본부장은 그를 적임자로 생각한 듯 하고 사직 예정일도 지나 그의 요청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답을 주저하자 본부장은 다급한 말투로 대단히 죄송하지만 꼭 와 주셔야 한다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대답하고 나서 센터 직원에게 전화했더니 아무 일 없다고 했다.
후임자가 그 날도 출근하지 않았지만 업무는 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럼 본부장은 왜 센터로 오라고 한 것일까.
돌발적이고 긴급한 일만 없으면 며칠 정도의 통상적인 업무는 직원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일주일 이상 길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내가 공장과 전국에 산재해 있는 11개 OEM사의 월간 및 주간 생산계획을 사실상 주관하며
전국 각 지점의 주요 영업담당들과 필요한 정보를 항시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별것 아닌 일 같아도 오랜 경험과 경륜이 없으면 센터장이라 하여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매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것도 모두가 자신들의 유익 때문이지 센터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이 자신들 영역에서 한가닥씩 하는 전문가들이라 상대하기 쉽지 않은데
특히 상품 입출고 업무가 허술하거나 빈틈을 보이면 그 약점을 이용 당할 수 있어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 때문에 퇴직한 센터장도 여러 명 있었다.
OEM사들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납품을 하루 이틀 지연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센터장은 그때마다 전국 지역센터장들에게 통보하여 주문과 수송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조치해야 하는데
영업사원 입장은 거래처에 이미 배송을 약속했고 상사에게도 일매출 보고를 한 상태다.
수송차량도 당일 배차계획에 따라 새벽에 차고를 출발하여 센터에 도착했고 상차 준비 중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업시원들은 배송 약속과 매출 보고를 수정하는 짜증나는 일을 해야 하고
센터장은 다음 배차에 그 상품을 보낼 때까지 지역센터와 영업부의 거센 항의와 독촉에 시달려야 한다.
지역센터가 대형이면 거의 매일 배차할 수 있어 다소 덜 하지만 소형 센터는 2~3일 간격이 불가피하여
그대로 영업부 매출 차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업부는 변명과 핑계가 통하지 않으며 거친 욕설을 서슴치 않는 영업사원도 적지 않다.
그리고 장거리 대형 수송차량 운전자들도
대부분 몇 십년 운전 경력의 중년 이상이라 센터장이 젊어 경륜이 약하면 배차업무가 힘들 수 밖에 없다.
센터장은 일상의 업무가 아무리 많고 바빠도 항상 그 같은 여러가지 문제에 신경써야 하며
그러면서 어떤 사정과 상황이든 회사에 이익이 되도록 신중하고 노련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OEM사들이 또 골치 아픈 것은 걸핏하면 본사 마케팅부에 연락하기 때문이다.
마케팅부는 영업부 입장과 달라 OEM사들의 애로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리고 마케팅부에 항의하면 물류본부를 거쳐 센터장에게 돌아와 몰라도 될 사람들이 알아 좋을 게 없다.
가능한 마케팅부에 항의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본부장이 3일 후 퇴직을 요구했을 때 저온중앙센터업무가 만만치 않다고 했지만
당시의 센터업무가 오래 전에 사직서를 던졌을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하여 그만큼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는 틀리지 않았다.
사직여행을 하루도 못하고 그것도 출발하여 가는 도중에 불려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오무렵에 센터에 도착해보니 직원이 말한대로 아무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본부장은 센터 상황과 상관없이 무조건 센터로 오라고 한 것이다.
사표일자까지 근무를 마치고 완전히 퇴직 상태에 들어간 나를 도대체 왜 그처럼 다급하게 부른 것일까.
여하튼 그후 15일을 더 근무했고 퇴직금을 받고 출근하지 않으면서 회사샐활을 끝냈다.
그리고 그 싯점이 본부장의 속샘을 알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였으나
당연히 거부했어야 할 연장 근무 요청에 응한 결과 기회를 또 놓쳤고 퇴직 후의 계획이 틀어지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