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월요일

2013. 10. 13. 오후 11: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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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8주간 월요일.

   다산 정약용이 자신의 두 아들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시는 밥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시를 쓰는가? 시를 쓰면서 자기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세계와 통하면서 삶에 대한 깊이를 깊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시를 통해 내 뜻이 굳세어지고 막혔던 마음이 툭 터지며 시원스런 기상이 깃들게 된다. 그런데 세상 시인들이 시 짓는 것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의 시시콜콜한 잡사를 과장하고 남의 눈을 놀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표현에만 힘쓴다. 기교만 부릴 줄 알지, 그 안에 담아내야 할 깊고 높은 정신에 대해서는 거들떠 보지 않는다.” 하고 나와 있습니다. 전 이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성무일도에 나오는 찬미가와 시편이 떠올랐습니다. 시편 작가들이 언어의 기교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은 경외한 것은 평소의 삶에서 보이는 보화를 찾을 줄 아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러기에 자연스런 찬미의 노래가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사람들이 여전히 뭔가 특별한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라면서 담담하게 써 놓고 있으며, 복음에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다른 것에 눈 돌리지 말고 지금 눈을 크게 뜨고 잘 봐라.’ 하시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미사를 드리며 무엇이 보이십니까?

떼이야르 드 샤르뎅이 쓴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라는 책에 보면 미사에 봉헌되는 빵과 포도주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 노동인 이 빵이 그 자체로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부스러기일 뿐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통인 이 술 역시, 다음 순간에 사라질 하찮은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 없는 물질 덩어리 그 깊이에, 당신께서는 거룩함을 향한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숨겨 두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느낌으로 감지합니다.”  볼 품 없어 빵과 포도주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고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감지해 낼 때, 그 빵과 포도주는 더 이상 가게에서 파는 그런 종류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 미사에 쓰이는 모든 도구가 거룩하게 보입니다. 오늘 하루를 거룩하게 지내시고 싶으시다면 내가 지닌 것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 지 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성화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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